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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 클레어 Mar 27. 2023

어른이란 이름의 기억법

「소망 없는 불행」ㅣ 페터 한트케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어머니의 자살. 이제 막 도착한 미지에서 어린아이는 얼어붙는다. 쏟아지는 경악의 폭우를 지나 스스로를 찌르는 무한 루프의 반추를 거쳐 잠시 의식이 방을 비웠을 때, 비로소 회상의 시간이다. 극도의 침착이 그려내는 낯선 서사. 문장을 만드는 기계가 되겠다는 아이는 어른이란 모자를 쓰고 있다. '가족은 건드리지 말자'. Hype하고 cool하고 싶은 씨티보이와 걸들에게도 가족은 어디로 튈지 모를 감정의 도화선, 금단의 영역이다. 부단히 정제된 거리감으로 공포에 떨고 있는 나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나. '관객 모독'의 작가가 건네는 이 모독 같은 생경함은 무엇일까. 왜곡과 망각의 전쟁 속에서 끝내 '기억'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어머니의 삶을 바라보는 아들의 시선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냉소와 관조를 오가며 어머니를 힘껏 옹호하지도, 이해하려 들지도, 비난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아들은 화가, 어머니는 모델로 평행선을 달리던 구도는 어느 순간 물아일체의 ‘그림’으로 일체 된다. 아들로서 체험하지 못한 어머니의 거의 모든 순간을 화가로서 목격하기 위해, 그는 그녀를 관찰함을 넘어 그녀가 된다.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은 어머니를 그리기 위해 아들은 깊이 간직했던 그녀의 말들을 곱씹어 보고, 사소했던 행동들을 들춰보며, 그녀의 입과 눈과 손과 발이 돼보았다가 마침내 마음이 되었다. 그의 펜 끝에서 살아 숨 쉬던 어머니의 그림은 과연 그일까, 어머니일까. 다시 그림에서 화가로 돌아온 그는, 그녀의 시체와 단둘이 머무는 순간에는 감정을 실지 않는다. 다만 장례식에 온 사람들의 홀가분한 표정을 경멸했고, 묘지가 있던 숲의 지나친 무성함에 분노했다. 연극의 한 장면 같고 엽서의 한순간 같던 분절된 기억들이 그녀의 관을 덮는 꽃잎처럼 흩날릴 뿐이다.


 자기 안의 오롯이 빛나는 열정을 직시했던 소녀는 타인과 시대가 요구하는 역할에 잠식된 채 점차 '그 여자'가 되었다. 고단한 아내와 어머니의 시간 속에서 틈틈히 책과 정치를 통해 소녀의 기억을 조금씩 회복했지만 결국 소용돌이 같은 가족의 족쇄 속으로 휘말려 들어갔다. 몸과 정신의 자유를 잃어버린 채, 소망 없는 불행의 '사람'으로 살기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다시 '그 여자'였다. 온전히 고유한 한 인간으로 살고자 했던 분투의 시간들은 그렇게 막을 내린다.


 기억은 무엇일까. 잊을 것을, 잊은 것을 인간은 왜 다시 기억해내는가. 소멸을 향해가는 인간의 끝에서 기다릴 무언가의 거의 전부가 어쩌면 기억이 아닐까. 애써 냉정한 척 하지 말고 처참하게 찌질하도록 뜨겁게 사랑하며 대상이 아닌 주체로서의 자신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페터 한트케라는 어른이 내게 알려준 또 하나의 기억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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