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8.22
[ 복잡한 추억의 도시 ]
한바탕 비가 내리고 난 이튿날의 새벽 공기는 후덥지근한 열기가 증발된 채, 모처럼 선선한 바람을 보내왔다. 둘째 여동생이 운전하는 자동차엔 나와 엄마, 첫째 여동생이 타고 있었다. 회사 휴무일에 갑자기 추진된 당일치기 여행의 목적지, 대전은 우리 가족이 살았던 세 번째 도시이자 막내 남동생이 태어난 곳이다. 내게는 초등학교 2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를 보내며, 비교적 생생한 유년의 기억을 가족들과 공유하게 된 분기점이 되는 도시다.
숫기가 없던 얌전한 학생이던 내가 크고 작은 학급임원을 맡아 교단 앞으로 나서야 했고, 걸스카우트와 기자단, 오케스트라라는 벅찬 준거집단 활동으로 역할충돌을 경험하기도 했다. 드디어 출산을 마감한 엄마의 취미활동이 활발해지며 같은 학교에 저학년으로 입학한 첫째 동생과 유치원을 다니던 둘째 동생의 하굣길을 챙겨보기도 했다. 단짝 친구와 자물쇠가 달린 비밀일기를 교환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연예인의 브로마이드를 나누기도 했다. 꽤 오랜 기간 겨울이면 꽁꽁 얼어붙던 갑천에서 나무썰매를 탔고, 이따금 줄줄이 사탕처럼 연결된 우리의 썰매들을 아빠가 맨 앞에서 끌어주시기도 했다. 그러다 혀가 데일 정도로 따끈한 국화빵을 얼어버린 두 손에 꼭 쥐고 호호 불면서 먹곤 했다.
그렇게 나의 실질적인 시작이었던 대전을 아버지의 회사 이동이 있던 중학교 2학년의 봄에 떠났다. 그 시절 싸이월드에 잘 적응했더라면 대전의 친구들과 소식을 이을 수 있었을 텐데, 그때도 지금도 나는 SNS와 친해지지 못했다. 그러다 연고도 아닌, 한화 이글스의 뚝심 있는 팬이었던 그 사람이 이직 후의 삶을 가꿔가는 곳이 된 대전을 20대에 다시 찾았다. 내게 익숙했던 도시의 낯선 동네를 밟아보며 새로운 정을 키워보던 어느 날, 우린 다신 돌아보지 않게 되었고 그는 어엿한 시민이, 나는 외지인이 돼버린 대전에 더는 쉽게 발걸음을 하지 못했다.
[ 내가 알았던, 몰랐던, 새로운 대전 ]
새벽 6시 15분, 우리가 내린 곳은 롯데백화점 대전점 1층의 성심당. '무화과 시루 케이크'를 오픈런하려면 은행동 본점이 아닌 이 지점이 더 유리하다는 동생의 사전조사 후 결정이었다. 이미 입구에서 'ㄴ'자로 꺾어진 대열에 뒤를 이어 한 시간쯤 기다리니 직원분께서 오늘의 날짜가 적힌 대기표를 나눠주셨다. 그로부터 다시 한 시간이 조금 지나지 않아 오전 8시, 드디어 우리는 매장에 입성했다. 다시 카운터까지 줄을 서서 마침내 무화과 시루와 몇 가지 빵들을 펼쳐 아침으로 먹게 된 것은 8시 30분, 대전에 온 지 2시간 만이었다. 무려 홀 케이크이었지만 그새 지쳤던 건지 탐스럽게 쌓아진 무화과 성을 금세 무너뜨려 버렸다. 언제나 다채로운 빵 종류와 큼지막한 인심의 토핑들이 기대 이상 인 곳이지만 몇 해 전, 과일시루 케이크를 먼저 접했던 까닭에 케이크는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1차 빵투어를 마치고 향한 곳은 대전시립미술관으로 바로 옆에 이응노 미술관이 함께 나란히 있었다. 정부대전청사 단지와 이어지며 규모감 있는 한밭수목원 인근에 위치한 이곳은 우리 가족에겐 처음이었다. 우리가 대전을 떠났던 바로 그 해에 개관한 곳이기 때문이다. 분수 공원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시립미술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천경우 작가의 '가사 없는 노래 1'라는 퍼포먼스 설치작이었다. 아무래도 평일이라 투어 참여 인원이 좀처럼 모이지 않자 도슨트 님께서 직접 관람객들을 찾아가며 작품 해설을 도와주셨는데, 이 작품은 직접 관람객들의 참여로 완성된다는 말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작품 안내에 따라 언어 장애가 있는 16분께서 작곡한 짧은 음악의 악보를 골라, 계단 위에 매달린 다른 크기와 번호의 종들로 직접 연주해 보았다. 내가 고른 것은 '엄마를 생각하며'라는 부재가 달린 '나의 피난처'라는 음악이었는데, 악보를 자세히 보니 같은 번호에 색깔과 크기가 다른 원들이 매칭되어 있어 조금 당황스러웠다. 다시 작품 안내를 읽어보니, 그 다름에 대한 관람객의 상상과 해석을 동원하여 연주가 완성되도록 의도된 것이었다. 이어서 방문한 이응노 미술관은 상대적으로 아담한 규모였는데 정원의 풍광을 살린 건축물 자체가 아름다웠고, 동양화로서 프랑스에서 남다른 예술혼을 불태운 작가의 결단을 느낄 수 있었다.
감상을 마치고 우리가 찾은 곳은 내 유년기의 팔 할을 채운 소울푸드, 두부 두루치기와 손칼국수 집이었다. 사실 대전을 떠나 성인이 되고 나서야, '두부 두루치기'라는 음식의 비범함과 그것을 칼국수와 함께 먹는다는 개념의 생소함을 깨닫게 되었다. 나로서는 가족들과 함께 가장 빈번히 찾았던 음식이라 너무나 당연한 메뉴라고 생각했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던 가게가 이층까지 개조되고 다시, 신발을 신고 들어가는 구조로 변경되는 과정에서도 여전히 같은 이름의, 같은 메뉴를 선보이며 성업하는 곳이었다. 아는 맛이지만 역시 몰입해서 먹게 만드는 변함없는 감동의 재현, 이것이야말로 우리 가족의 추억을 되짚는 일종의 성지순례였다.
지친 기색 없이 엑스포에 위치한 성심당에서 2차 빵투어를 진행했다. 동행하지 못한 아빠와 남동생을 위한 빵들을 포장하고, 팥빙수를 먹었다. 대전의 효자로 등극한 푸근한 감성의 성심당, 그러나 나와 동생의 기억 속 모습은 조금 달랐다. 당시에 살던 동네에서 가까웠던 지점은, 조금 특별할 때 가던 롯데리아보다 더 트렌디하고 비싼, 함박 스테이크와 스파게티 같은 경양식, 표면에 크림이 보이지 않는 커다란 스펀지 케이크를 팔던 모던하고 깔끔한 인테리어의 새로운 공간이었다. 그랬던 빵집이 완전히 달라진 콘셉트로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곳 중 하나로 더욱 사랑받게 되니 기쁘면서도, 그 시절 우리가 알던 그곳은 사라진 느낌이라 왠지 모를 섭섭함이 들었다.
다음으로 2021년에 새로 생긴 신세계 백화점과 현대 프리미엄 아웃렛을 찾았다. '백화점' 또한 대전에서 처음 접한 도시의 문화였다. 지역 백화점인 지금은 사라진 한신코아, 세이백화점에서 엄마가 쇼핑하는 동안 나와 동생은 KFC의 징거버거에 놀라고 백화점의 문화공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러다 1998년 동양백화점으로 먼저 개점했던 갤러리아 타임월드의 위용에 압도당하며 맥도널드의 치즈버거를 배웠다. 전통의 강자를 물리치고 새로운 왕좌를 차지한 신세계 백화점의 스타벅스에서 도도히 흐르는 갑천이 담긴 풍경은 왠지 낯설었다. 완전한 몰의 구조로 실내외 환경의 공을 들인 현대 아웃렛도 대전 시민들의 주말을 위한 또 하나의 옵션이 될 것 같았다.
마지막 코스는 우리의 피와 살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음식인 한우곰탕이었다. 여러 부위가 끓면서 뿜어져 나오는 풍미는 사실 어려서는 썩 좋아하지 않았던 어른의 맛이었다. 고기와 야채가 가득한 한 대접의 전골을 비우고 난 뒤 누룽지가 지도록 완성된 볶음밥을 가장 기다리던 나는 이제 없었다. 그땐 어리숙했던 입맛이 지금은 완전히 자리를 잡아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즐길 수 있었다. 거의 구조의 변화도 없이, 이름도 메뉴 그대로인 질박한 매력의 이곳은 여전히 많은 이들의 식사와 안주로 사랑받고 있었다.
[ 되돌아보며 ]
추억의 공간들과 새로운 장소들을 돌아보던 길에 발견한 대덕문화센터는 황량했다. 유년시절의 거의 모든 영화와 뮤지컬 같은 제대로 된 공연 문화를 접할 수 있었던 곳이었다. 이제는 너무 흔해져 버린 대형 시네마와 서울과 다른 대도시와의 접근성이 개선된 영향일까. 아담했던 지역 백화점 한신코아, 세이백화점과 함께 이제는 가려진 시간 속에 잠들고 있었다. 사라진 곳들, 여전한 곳들, 새롭게 생겨난 곳들을 같은 추억을 기억하는 가족들과 함께 둘러보니 그저 맛보고 구경하는 단순함 속에서도 여러 감상들이 피어났다. 마냥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었지만 다신 돌아갈 수 없기에 아련해지는 그날들을 이어주는 소중한 음식들이 있기에, 더욱 화려하게 멋져진 대전에서도 우리는 길을 잃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