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보다 고달픈 노동에 가까웠던 그날들을 회고하며
내가 골퍼라니
12회 750불. 내 생애 첫 골프 레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코로나 발발 후 처음으로 한 달간 강도 높게 시행된 도시 봉쇄 끝의 주말이었다. 막연히 생각만 하고 있다간 언제 또 도시의 문이 닫힐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서둘러 계좌이체를 마쳤다. 골프를 치지 않으면 베트남 3대 바보 중 하나라는 농담이 유쾌하지 않았던 나였다. 이곳에 산다면 응당 가사도우미를 쓰고 골프도 열심히 쳐야 한다는 그 당연한 기대를 배반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 농담이 통용되는 '베트남에 사는 한국인', 더 정확히는 '기혼 남성 중심의' 주재원이란 집단으로부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 했다. 그러다 문득 전형성의 탈피라는 이유로 정작 잘 알지도 못하는 '골프'의 세계를 들여다보지도 않는 게 더 한심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보에게 무난할 거라는 직장 동료들의 추천에 따라 캐주얼한 골프화와 장갑을 챙겨 연습장으로 향했다. 둔감한 내 운동신경을 알기에 디테일한 코칭을 기대하며 여자 프로님을 찾아 집에서 왕복 1시간 반 거리의 이곳을 정했다.
베트남어가 유창하셨던 어머님 연배의 프로님께 골프클럽을 빌려 기본 스윙을 배워나갔다. 7번, 8번, 9번 아이언을 오가며 손에 힘을 빼고 그립을 한 뒤 팔과 겨드랑이, 몸통과 클럽 간의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하고, 시선은 시종일관 공에 고정하며, 하체는 단단히 힘을 주어 팔이 아닌 몸통으로 회전하되 오른발에서 왼발로 확실한 체중을 이동시켜 힘이 제대로 실린 순간에 공을 쳐야 했다. 그저 몇 가지의 원리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 모든 사항을 동시에 수행하려니 갑자기 몸의 각 부분들이 독립운동을 일으킨 듯 통제가 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있는 공을 맞췄다는 것만으로도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던 프로님의 인내심도 빠르게 지쳐가는 것 같았다. 비슷한 시기에 레슨을 시작한 다른 회원들의 사례를 들며 뒤쳐지고 있는 내 현황을 일러주시고 정말 어머니처럼 답답해하시다가 갑작스러운 첫 라운딩을 제안하셨다. 입문한 지 겨우 2달이 좀 넘은 시점이었다. 게임의 룰에 대해서는 부모님이 즐겨보시던 프로 경기를 어깨너머로 본 게 전부였고 아이언 외에 다른 클럽의 이름조차 헷갈리는 상황이었다. 도저히 실현 불가한 그 목표를 위해 하노이의 가장 더운 계절 야외 연습장에서 땡볕의 곡괭이질이 시작되었다. 몸살이 날 지경으로 과장된 몸짓의 스윙 걸음마에 지칠 때면 내 앞에 빼곡히 일렬로 늘어선 에너자이저의 대열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마침내 생애 첫 라운딩의 날이 되었다. 한창 태양이 뜨거운 7월, 오전 중 20여 명의 단체 라운딩을 마치기 위해 새벽에 우리는 떠났다. 곧 이별할 것이 분명한 로스트볼들을 대량 구매하고 홍삼에 의지한 채 공복의 첫 홀을 마주했다. 점수는 없는 경험을 위한 라운딩이라지만 경기는 경기였다. 낯선 시선들의 압박과 뒤따르는 카트들의 재촉을 견디고 그 와중의 인증샷을 남기며 열기 속에 흐미해져 가는 정신줄을 냉수마찰하면서 그저 내가 공에 맞지 위한 서바이벌 라운딩을 마쳤다. 옷은 어떻게 입을 것이며 가방 안에 간식은 어떤 걸 챙길지 따위의 고민을 호기롭게 나눴던 골프 동기는 전쟁 같은 5시간의 라운딩 끝에 생존의 여정을 함께 한 전우가 되어 있었다. 내 돈 내산의 경험인데도 낯선 사람들 속에서 한껏 의기소침해지는 라운딩을 마냥 즐길 순 없었다. 이 그룹 라운딩을 통해 알게 된 또래들과 두 번째, 세 번째 라운딩을 함께 하면서 좀 더 편안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내게 골프 라운딩은 너무 거창하고 부담스러운 행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Control yourself
입문 반년차에 접어들 무렵, 투여해야 하는 시간과 돈 대비 시원치 않던 재미와 보람을 저울질하다 휴식기에 들어갔다. 이 정도 경험했으면 됐다며 스스로를 단념한 채 부산하고 피곤했던 주말 아침의 여유를 즐겼다. 침대와 혼연일체 되어 유튜브만 바라보다 잡념에 쌓여 시계를 보면 어느새 하루는 저녁을 향해가고 있었다. 골프 없이 잘 살아보겠다는 다짐이 나태와 방종이 되어버렸다. 다소 기괴하고 엉망인 스윙일지라도 영영 못하게 되는 것보단 낫겠다 싶어 이불을 박차고 새로운 연습장을 찾아보기로 했다. 호수의 도시답게 여러 곳 눈에 띄었던 수상 연습장에서 일렁이는 야경 속으로 사라지는 공의 비행을 즐겼다. 더 이상 100m, 150m 표시선을 넘겼는지가 큰 문제로 다가오지 않았다. 신규 주거단지 내 프라이빗한 연습장도 가 보았다. 좀 더 여유로운 타석 간의 간격과 시설은 마음에 들었지만 폭이 좁은 인공호수 속으로 공을 보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집에서 약 30분 거리의 골프장 안에 있던 연습장이 생각났다. 국가에서 관리하는 공영 골프장으로 새 건물은 아니었지만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었고 정작 라운딩 때는 즐길 겨를이 없었던 열대식물이 가득한 골프장의 풍경을 가까이 볼 수 있었다.
매번 1층만 고수하다 2층에서 드넓은 전경을 바라보며 천천히 내게만 집중해보는 시간이 점점 좋아졌다. 그러나 아직 혼자 연습해보고 있는 스윙이 맞게 되고 있는 것인지, 공은 왜 이리 우측으로만 가다가 이젠 좌측으로만 가는 것인지, 드라이버는 언제까지 버겁기만 할 것인지 고민스러웠다. 이번엔 단기로 한번 더 레슨을 받아보기로 마음먹었고 이 연습장에서 활동하고 있던 호주에서 온 장신의 프로님을 만났다. 이제는 포인트 레슨이 어느 정도 가능하지 않을까 착각한 채 공은 그럭저럭 맞지만 이런저런 부분이 어려우니 도와달라 요청했다. 내 스윙을 몇 번 보더니 그가 내린 결론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스윙 과정을 끊어가며 연습하는 것이었다. 내 몸과 클럽 간의 어색한 밀착감을 간파한 그는 야구를 해봤냐며 클럽이 아닌 배트를 휘두르는 느낌으로 공을 쳐보라고 했다. 물론 잡아본 적도 없는 야구 배트였기에 그 느낌을 바로 따라가지 못하자, 그는 연습장에 있던 기둥 앞에 서서 스윙을 연습하며 궤도 속에서 몸과 클럽이 뒤로 어디까지 가는 건지 한계를 익히게 했고 테이블을 활용하여 왼쪽 다리를 밀착해 버티다가 회전의 순간에 떼어내는 범위를 이해하게 했다. 그저 남의 스윙만 보고 설명만 들어서는 모호하던 매 동작의 가동 거리를 주변의 사물을 이용하여 구체적으로 납득할 수 있었다. 물론 신체 조건의 차이로 그의 시범을 나의 규격으로 조율해나가는 요령이 필요했지만 비로소 복잡하고 어렵던 스윙 주의사항들이 단순화되고 명료해지는 변화를 체험했다. 여전히 한 부분이 좋아지는가 싶으면 한 부분이 문제가 되는 초보의 좌충우돌은 계속되었지만, 레슨에 대한 무언의 압박 없이 인내심 있게 지켜봐 주고 지쳐있을 때면 유쾌한 장난을 걸어주던 두 번째 스승 덕에 끝내 골프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그가 고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주말엔 야외 연습장을, 주중엔 레지던스에 있던 2타석 규모의 스크린 연습실을 오가며 최소 2-3일 간격으로 연습에 집중했다. 여러 규칙들을 한 번에 오차 없이 지키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가장 문제가 되는 한 부분만 집중 공략하여 해결이 되면 그다음 부분으로 넘어가는 전략을 세웠다. 머리가 움직이고 겨드랑이가 벌어지고 회전 속도감이 엉성해지는 각종 문제들 속에서 가장 근본적인 언제나의 원인은 내 중심이, 코어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럴 때면 복부와 하체에 힘을 집중하여 회전 중의 균형을 잡고 상체와 손은 최대한 힘을 빼서 부드럽게 회전하자는 기본 전제를 되뇌었다. 아주 드물게 기막힌 스윙을 하고 나서는 속으로 유레카를 외치며 미세하게 바꿨던 그립과 팔의 간격과 높이 감을 휴대폰에 메모했다. 아무리 훌륭한 스승에게 사사를 받더라도 결국 스스로 온전히 몰입하는 연습과 깨달음의 반복 속에서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스윙을 만들 수 있었다.
솔로 라운딩의 추억
골프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한 동료의 파란만장한 연습 에피소드를 듣다가 '솔로 라운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창 의욕이 불타오르던 시절 남들과 함께 해야 하는 라운딩에서 미처 집중할 수 없었던 본인의 게임에 충실하고자 몇 차례 1인 게임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순간 귀가 솔깃했다. 아무리 골프 연습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 좋은 놀이라 할지라도 그 궁극적 목적은 라운딩이고 게임이자 사교였다. 필드 경험을 쌓으려면 잘 모르는 사람과도 어떻게든 짝을 맞춰 차를 빌려 이동하고 서로의 게임을 지켜봐 주다가 경기 후에 밥과 술까지 나눠야 했는데 그것이 내겐 도저히 즐거움이 되지 않았다.
남의 시선에 주눅 들 필요 없이 혼자 조용히 매 샷에 집중하여 18홀을 완주해보고 싶었다. 간혹 1인은 예약을 받아주지 않는다거나 하더라도 다른 팀과 강제로 조인하게 되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다는 말은 들었다. 그러나 다행히 홀로 떠나볼 참이던 여행지 푸꾸옥에 아름답기로 유명한 골프장을 예약할 수 있었다. 비성수기에 다소 흐린 날씨 때문인지 골프장 전체에 경기 중인 팀이 손에 꼽힐 것 같은 여유로움이 만연했다. 여전히 점수를 내기 민망한 자유로운 스윙들이 범람했지만 나를 전담하는 캐디의 운전과 코칭을 받으며 '이건 이렇게 해야겠구나' 깨달아 가면서 연습 같은 실전을 경험했다. 그동안의 라운딩에서 돌아볼 겨를이 없던 조경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곳곳에 멈춰서 마음껏 사진도 찍었다. 마냥 신날 줄 알았던 첫 솔로 라운딩의 소감은 지켜보는 사람이 없으니 편안하고 자유로웠으나 호응 또한 없어서 재미나 집중력이 상실된 듯한 허무함이 컸다.
한 번으로 족했을 이 경험을 다시금 고민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몇 달 뒤였다. 친구들과 함께 떠나게 된 다낭의 주요 호텔 인근에 훨씬 접근성이 좋은 여러 골프장이 위치한 것을 확인했다. 골프를 치지 않는 친구들과 풍요로운 골프 환경을 저울질하다 비행시간을 달리하여 하루 먼저 다낭에 도착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리고 이번엔도 시와 다른 풍광을 보며 차분히 연습만 해보자는 생각으로 게임을 예약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유명 골프장의 한적함을 놓칠 수 없어 지금 바로 혼자 게임을 할 수 있을지 문의했고 코로나 이후 첫겨울의 다낭에선 그게 가능했다. 한번 더 해보라는 일종의 계시라 믿고 시작한 게임은 기대와 달리 공이 제대로 뜨지도 못하는 망샷의 연속이었다. 그날따라 시크하던 캐디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한 엉망징 창의 홀들을 간신히 넘은 끝에 마침내 바다 전망의 홀이 등장했다. 바다를 등지고 머리를 휘달리며 경기에 집중하는 콘셉트의 사진만을 몇 컷 남긴 채 후회스러운 두 번째 라운딩을 마쳤다. 이제 골프장 탐사와 게임에 친숙해지기 위한 솔로 라운딩은 충분한 것 같았다. 결국 지름길은 없었다. 게임을 유지할 수 있는 멘털과 체력을 키워 서로 지켜봐 주는 어울림의 스포츠가 지난 1년간 내가 만난 골프의 정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