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최근 들어 비슷한 경향을 자주 보여왔지만, 올해 젊은작가상 수상작들은 페미니즘의 어젠다와 더욱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는 듯이 보인다. 우리 소설이 여성의 서사를 발굴하고 재현하는 속도는 실로 놀라운 데가 있다."
문학평론가 신수정 씨가 2021년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실은 심사평의 한 대목입니다. 이미 2022~2025년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었던 저로서는, 적어도 2021년 이후 이 문학상의 페미니즘 경향이 강화됐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최근 몇 년간 휴가 기간 여행을 떠나면서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한 권씩 가져가곤 했는데요. 평소 안 읽는 문학이라는 것을 휴가 때만이라도 접하자는 생각과 책값이 저렴해(보급가 5000원대) 여차하면 현지에 두고 와도 아깝지 않겠다는 현실적인 계산의 결과물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학상의 타이틀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젊음'과 '작가', 그리고 '상'이라는, 아우라를 풍기는 3개의 단어가 조합된 것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최근 5년간의 이 수상작품집을 읽어온 저는 이제 이 작품집을 다르게 정의해도 되겠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페미니스트 글 모음집'.
저로서는 이 표현이 이 작품집의 본질을 더 적확하게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이 작품집의 본래 타이틀 속 '젊은'과 달리 이 작품집은 이 시대의 젊은이들의 생각을 모두 표출하지 못합니다. 적어도 근래 5년간의 이 작품집은 매년 7개의 수상작품 중 5~6개는 직접적으로 페미니즘적 시각에 집중했고, 나머지 작품들도 간접적으로나마 대개 그런 인식이 투영된 작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이 그 정도의 비율로(7명 중 5~6명의 비율로) 페미니즘에 몰입해 있을까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 타이틀 상 '작가'라는 점에 대해서는 'ㅇㅇ들의 글(페미니스트 글)' 정도로 바꿔 불러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라는 표현 자체에서 어떤 권위(문학적으로 뛰어나거나 깊은 통찰력이 있을 것 같다는 기대에 따른)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냥 어떤 생각을 하는 부류들의 글 모음이라고 한다면, 이 작품집에 나온 글들에 대해 보다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상(賞)'이라는 표현 역시 같은 취지에서 이 작품집 타이틀에서 없애 놓고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학동네라는 (문학을 모르는 사람들도 이름은 들어봤을 정도로) 권위 있는 출판사에서 주는 상이라는 인식은 이 작품집에 실린 글들에 대해 일단 수용적인 태도를 갖게끔 유도합니다.
반면 '페미니스트 글 모음집'이라고 한다면, 대중들은 이 작품집에 실린 글들에 어떤 사전적 권위 부여 없이 이 글들을 읽고 평가, 수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21년 수상작품집의 대상(大賞) 작품인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전하영 작가)'는 이 수상작품집의 가치 방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소설은 어린 여자에 집착하는 나이 많은 남자들에 대해 다룹니다. 이 소설에는 여대생들을 겨냥해 "어린 여자를 유혹하는 것은 쉬운 일이에요"라고 평가하고 다니는 30대 후반 유부남 연구원(주인공의 직장 동료)과 학생운동을 거쳐 프랑스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교편을 잡고 21살 여대생 제자를 유혹하는 30대 후반의 영화과 신임 교수(주인공의 대학시절 교수)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를 "서구 백인 남성 지식인이 주조한 조명등"을 체화한 "식민지 남성 지식인들"이 "가상의 뮤즈를 집요하게 찾아다닌다"(강지희 문학평론가 심사평 中)고 해석합니다. 성별에 의한 권력관계, 그리고 이를 자신들의 성욕을 채우기 위해 활용하는 '(성추행도 동반하는) 지질한 나이 많은 남성들'을 그리고, 이에 저항하는 '기록하는 여성들'을 제시합니다.
이 소설 자체는 하이퍼리얼리즘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제 대학 시절 본 30~40대 남자 교수, 강사들을 떠올렸습니다. 군 면제를 받고 유학하고 다녀와 막 교수직을 단 한 젊은 교수는 훤칠한 키와 재력, 젊은 교수라는 점에서 여학생들의 인기를 받고 있었습니다. 몇 년 전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당시에 실제 여학생들과 연애를 많이 했고, 이제 일반적인 혼기를 훨씬 넘었는데도 여전히 20대 여성만 만나려고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소설을 읽은 한참 후, 이 소설 제목에 나오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표현이 '오랜 시간 가스라이팅을 당해 왔다'는 말의 은유가 될 수 있음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피해의식의 발로에서 습관적으로 '그 오빠가 가스라이팅하려 했다'는 식으로 말해왔던 지인도 떠올랐습니다.
이 소설 자체는 현실의 남녀 권력관계와 군상들을 잘 포착해 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에 이은 다른 작품들, △나뭇잎이 마르고(김멜라) △사랑하는 일(김지연)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박서련) △우리의 소원은 과학 소년(한정현) 등 4개 작품도 직접적인 페미니즘 소설이라는 점은 과하다 싶습니다.
총 7개 작품 중 직접적인 페미니즘 소설이 아닌 것은 △목화맨션(김혜진) △0%를 향하여(서이제) 등 2개의 작품뿐입니다(목화맨션은 재건축을 기대하고 낡은 빌라를 산 중장년 집주인 여성과 이 집에 임차한 그보다는 중년 여성 간의 관계를, 0%를 향하여는 한국영화 100주년을 맞았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는 독립영화 주변인들을 그렸습니다).
특정 출판사의 문학상이 페미니즘을 지향하는 것 그 자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한국 사회가 여전히 남성중심적 위계질서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않은 것도 사실이고요.
하지만 세상을 보는 수많은 프리즘 중에 유독 페미니즘이라는 하나의 프리즘에만 골몰하는 현재의 모습에 비춰서는, 이 작품집 타이틀은 이 작품집을 나타내는 적확한 표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세상엔 자본주의의 모순, 인공지능(AI)의 등장 등 질문할 거리가 너무나도 많은데 말이지요.
거칠게 말하자면, 이 작품집은 '젊은작가상'이라는 타이틀이 아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