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꿍을 입원 시키고
이사를 하느라 분주했던 열흘 여가 지나갔다. 상황이 이제 조금씩 좋아지기를 기대한 것과 달리 짝꿍의 우울증은 더 심각해졌다.
"Is there any reason that I shouldn't kill myself?"
"I should better kill myself."
새벽에 깨 다시 잠들지 못하는 망가진 수면 뒤에, 늦은 아침까지 뜬 눈으로 침대에 마치 갇힌 것마냥 나오지 못하는 짝꿍은 말 그대로 고통에 몸서리 치고 있었다. 그렇게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힘이 든다. 끊임 없이 고통만 받아야 하고 나아질 희망이 없다면 계속 살아야 할 이유를 알지 못한다 했다.
하늘은 감당할 수 있는 시련과 고통만을 준다 하시지 않았든가? 분명 그렇게 들었던 것 같은데. 개인에게 책임을 묻기엔 너무나 가혹하다. 저러다 곧장 무너져내릴 것만 같은데.
옆에 있어주는 것만이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쨌든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무기력함과 거꾸로 청개구리 짓을 하듯 이상한 몽니를 부려 버리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그러면 안 되는줄 알면서도 더 크게 동요하고 되려 더 어깃장을 부린다. 이내 실수했음을 알지만 때는 이미 늦다.
이사를 하고 환경을 변화시켰으니 조금이나마 좋아진 모습을 기대해서였을까? 아니면 이사 후 사실 할 일이 더 많이 쌓였는데 그것들은 처리하지 못한 채 짝꿍의 무너지는 순간을 바라보고 있어야 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어쩐지 나로 인해 갖게 된 삶의 변화가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책해서일까.
다툰 뒤 사과는 해놓고 어른답지 못하게 계속해서 삐진 상태로 짝꿍을 차갑게 대했다. 그 사이, 그는 견디지 못할 정도로 힘들어 하다가, 결국 자신의 식구들에게 나름의 구조 요청을 보냈다. 스스로에게 못된 짓을 할까봐 두려워 하는 그는 일종의 마지막 카드로 UCLA 정신의학과에 가서 상황을 설명하면 어떨까 고민하고 있던 차였다. 힘들어 하다 자살 계획을 실행해 버리면 더이상 해결책이 소용이 없지 않겠냐는 여동생의 조언에 따라, 무언가 순식간에 UCLA 병원으로 가서 입원을 하자는 결정이 내려졌다. 오가는 대화를 건너 듣던 나는 와중에 이런 한심한 내 모습이 싫어서, 쉽지 않은 결정을 할 수밖에 없는 짝꿍에게 미안해서 울기 시작했다.
저녁 7시. UCLA 응급실로 출발했다.
저녁 8시, 응급실에 도착해 이대로는 목숨을 끊을지도 모르겠다며 극심한 우울증을 호소했다. 그렇게 짝꿍은 기본적인 질문을 비롯, 어느 정도로 자주 자살에 대해 생각하는지, 그럼 구체적인 계획은 있는지, 어떤 계획인지에 대해 답변해야 했다. 총기에 접근 가능한 지도 물었다. 그리고 보안점검을 했다. 혹시 스스로나 타인을 해할 만한 물품을 소지했는지 확인하는 절차다. 신발끈도 위험할 수 있다며 신발까지 가져간다.
모든 절차가 끝난 뒤,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대기했다. 간호사가 와서 묻고, 또 의사가 와서 묻고, 마침내 정신과 의사를 만나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짝꿍은 그때마다 자살에 대해 설명해야 했다. 어떤 구체적인 계획을 가졌는지를 말할 때는, 심장이 꽉 쪼그라드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힘들었다. 옆에서 매번 눈물을 훔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신과 의사는 구체적인 질문들을 더 했다. 오늘 왜 응급실까지 와야 했는지, 자살 충동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 우울증과 그 치료제 관련된 것들, 직업,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무엇을 하는지, 가족관계는 어떠한지 등등, 그리고 의사는 짝꿍이 이렇게 오기까지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는지를 언급하며 고맙다고 했다. 대화를 통해 얻은 정보로 볼 때, 본인에게 의지가 있고 주변 가족들도 의지가 되어주고 있는데다, 그동안 치료제 몇 가지를 시도해 본 것 이외에 별다른 방법들이 시도되지 않았기에 분명히 병원에서의 치료 과정이 상황을 호전시킬 수 있을거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기존에 복용 중인 Paroxetine(파록세틴) 성분인 Paxil(팍실)5mg은 곧장 중단하고, 정신의학과 의사들이 모여서 가장 적합할 만한 약물을 찾아보고 시도하게 될 것이라 했다. 대신 Clonazepam(클로나제팜) 성분인 Klonofin(클로노핀) 1mg은 그대로 복용했다. 보통 이렇게 방문한 위험군의 환자는 보통 72시간 동안 입원시켜 상태를 관찰할 의무 또한 있단다. 그리고 향후 5년간 어떤 종류의 총기든 구매나 접근 권한이 제한된다.
새벽 1시, 정신의학과 상위 결정자와 의논을 마친 정신과 의사가 입원이 수락되었다고 말해주었다. 절차를 밟아 병실로 이동하기까지 두어시간 걸릴 것이라 했다.
새벽 3시. 짝꿍을 병동에 입원시켰다. 출입이 통제되는 4층 병동이었다. 머무는 동안 소지 물품은 안내에 따라 캐비넷에 보관하고 간호사가 열쇠로 잠근다. 방문객도 특히 카메라가 있는 전자기기를 소지할 수 없다. 각종 안내와 환자의 권리 등등을 다 설명 받았다. 간략하게 병동의 편의시설과 스케줄도 안내해 주었다. 손을 꼭 붙들고 내내 다독인 그를 홀로 두고 가야 한다니 너무 안쓰러웠다. 작별 인사를 하며 내일 면회 시간에 다시 보자고 잘 견디고 있으라 하였다.
하루 종일 얼마나 울었는지 무척이나 피곤했다. 로비에 앉아 나를 픽업해 줄 짝꿍의 여동생을 기다리는데 마음이 무거우면서도 한켠 가볍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동안 우울증과 치료제로 인해 너무 힘들어 했는데, 이제 전문의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까. 물론 걱정되고 마음은 무겁지만 한편으로 안심이 되었다.
이튿날, 영어로 복잡한 의료 관련 전화를 받을 자신이 없어 짝꿍 여동생 번호를 남겨두었는데 오전에 그리로 전화가 왔다.
일단 짝꿍이 병원에 있으면서 안전하게 느끼고 있다고 했다. 자살에 대한 끊임없는 생각도 많이 줄었단다. 다만 여전히 여러가지 삶에 안고 있는 문제들로 크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니 최대한 그런 것들에 신경 쓰지 않고 본인의 치료에만 전념할 수 있게끔 가족들의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기존에 10년 가까이 복용하던 Paroxetine, 즉 Paxil이 더이상 긍정적인 효과보다 부정적인 부작용만 나타나고 있는 것 같으니, Fluoxetine(플루옥세틴)인 Prozac(프로작)으로 대체해 보는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가장 오래되고 가장 많은 미국인들이 복용하는 약이며, 상대적으로 부작용의 강도가 낮고, 혈액에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머무는 형태라고 했다. 그동안 짝꿍 본인이 알아본 것에는 좋지 못한 내용이 더 많았던지 시도해 본 적이 없고, 그래서 굉장히 많이 질문을 해왔단다. 하지만 끝에는 Prozac에 동의했다고 했다.
오후에는 담당 사회복지사(Social worker)가 전화를 해와 짝꿍의 상태를 한 번 더 설명했다. 그리고 혹시 자신이 도움줄 수 있는 내용이 있는지 우리에게 물어왔다. 또한 거주지에서 모든 총기를 제거하고 자신에게 알려 달라고 했다. 새로 구매하거나 접근할 수는 없지만, 기존에 있는 것들은 가족들이 찾아 다 없애 달라고.
나와 짝꿍의 여동생은 집으로 가, 옷가지와 필요하다고 한 물품들을 챙겼다. 환자의 권리 중 하나가 환자복 대신 평상복을 입어도 되는 것이다. 외부 음식 반입도 가능해 짝꿍이 좋아할 만한 음식도 준비해 갔다.
저녁 7시경 병동 앞에 도착했다. 면회 가능 시간이 저녁 6-8시인데, 교통 체증에 이것저것 준비하고, 길도 조금 헤매서 늦어진 것이다. 짝꿍이 안 올까봐 불안했는지 병원 전화로 오긴 오는 거냐고 묻는다. 이 앞이라고 지금 들어가려고 호출을 했다고 했다.
간호사가 우리를 안내해 준다. 짝꿍의 이름이 적힌 병실이 보인다. 문이 열리고 그가 보였다. 어찌나 반갑던지. 먼저 들고온 물품에 환자들에게 위해가 될 만한 날카로운 것들, 긴 줄의 형태로 된 것들은 없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모두의 휴대전화를 걷어 캐비넷에 넣고 잠근다. 간호사는 병실에 좋은 시간 보내라며 우리만 남겨둔 뒤 나간다.
그제서야 온전히 인사를 한다. 서로를 안아주며 묻는 안부 인사. 짝꿍의 표정이 한결 편안한 것을 느낀다. 목소리도 밝아졌다. 내가 알던 내 짝꿍의 모습이 많이 엿보여 좋았다. 어쨌든 병원비 내 가며 자신을 케어해 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고, 일단 병원에 있는 동안에는 이런저런 걱정들이 없다고 했다. Prozac도 물론 Klonofin이 이전처럼 부작용을 일부 덮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고, 기존에 먹던 약보다 훨씬 안정적인 것 같다고, 다만 Klonofin 약효가 떨어지는 시점쯤부터 다시 일부 부작용이 돌아오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곧 다시 Klonofin을 복용할 시간이라 아마 괜찮지 않을까 한단다.
일단 하루 동안 병동에서 있었던 일들을 설명하는 짝꿍. 어떤 주제에서는 아직도 두 눈을 붉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때마다 나도 눈물이 핑 돌았지만 꾹 참았다. 무겁지 않고 밝은 이야기만 하도록 유도하려고 애썼다. 밖에 나갈 일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서긴 한다고, 적어도 치료제 복용만 안정적으로 되어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히는 그. 중간중간 간호사가 방문에 달린 창으로 환자를 슬쩍 보고 간다. 주기적으로 밤낮 없이 환자가 안전하게 있는지 보고 가는 것이란다.
재잘재잘 대화를 하는 동안, 휴대전화도 없고 방 안에 시계도 없어 어떻게 시간이 간지 몰랐다. 그때 밖에서 문을 두드린다. 면회 마감 시간이라고. 또다시 작별 인사를 하지만, 곧 주말에는 면회 가능 시간이 한 세션 더 늘어난다. 내일 또 보러 오겠다고 하며 또 뭐 먹고 싶은 건 없는지 필요한 건 없는지 물어봤다.
너무나 극적으로 전개되었지만 조금 안정된 모습의 짝꿍을 보니 너무 좋았다. 더이상 출구가 없게 느껴져 절박했던 그가 한 줄기 희망을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삶의 의미를 묻고, 더이상 인간 사회에 희망이 없다고 품은 생각은 온전히 가시지 않는 것 같지만. 차츰 안정을 더 회복하면 내가 알던 똑똑하고, 강단 있고, 꿈 많던 짝꿍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이제 겨우 하루가 지났지만 이따금 웃기조차 하는 짝꿍을 보며, 어제 하루 종일 펑펑 울던 나도 안심이 된다. 어디든 길이 있지 않겠는가. 더 잘하고 싶고, 더 좋아지고 싶었기에 현재의 고통이 더 크지 않았을까.
오늘도 곧 짝꿍을 만나러 가야지. 힘을 줘야지. 살아가야지, 우리,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