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1. 계약 검토, 어디까지 보면 되는걸까

— 법무팀을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

by 송송

이 시리즈를 처음 시작할 때, 저는 ‘사내변호사’라는 직무가 조직 안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다 보니, 더 본질적인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법무팀은 회사에 어떻게 기여해야 할까?

그리고 그보다 실질적인 질문도 있었습니다. 담당자는 법무팀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지?


많은 조직에서 법무팀은 ‘계약서에 빨간 줄을 긋는 부서’, ‘뭔가를 자꾸 막는 사람들’로 인식됩니다.
저 역시 실무 초년생 시절엔 “법무는 뭐든 안 된다고만 하더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습니다.


그런데 진짜 중요한 건 ‘된다, 안 된다’의 이분법이 아니라, 어디까지 감수할 수 있는가, 무엇을 우선순위로 둘 것인가를 함께 논의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계약 검토의 본질은 ‘경계선’을 그어주는 일입니다


계약 검토는 단순히 계약서 문장을 고치고 법조문을 들여다보는 작업이 아닙니다.
그 계약이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떤 리스크를 동반하며, 그 리스크를 어디까지 수용할 수 있을지를 판단하는 과정입니다.


즉, 계약 검토는 회사의 리스크 수용 범위를 그어주는 일, 경계선을 설정하는 작업인 것이죠.

하지만 현실에서는 모든 위험 요소를 제거하려는 방향으로 계약 검토가 흘러가곤 합니다. 누구나 불리한 조항은 줄이고 싶고, 책임은 최소화하고 싶으니까요.


그러나 그렇게 되면 협상은 길어지고, 계약 상대방은 불쾌해지고, 결국 현업에서는 “법무 때문에 계약이 늦어진다”는 인식이 생깁니다.



계약 검토는 법적 오류를 찾는 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착각합니다. 법무팀은 ‘계약서에 법적 문제가 없는지’를 찾아내고 지적하는 사람이라고 말입니.

하지만 법률 리스크는 대부분 명백한 불법보다 '불확실성의 영역'에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계약을 파기했을 때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한가? 납기지연이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할 수 있는가? 계약 위반 시 해지를 쉽게 할 수 있는가?


이건 조항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그 조항이 사업 전체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파악하는 일입니다.


즉, 사내변호사는 법조문을 해석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업의 설계도 위에 위험 신호를 표시해주는 사람'입니다.



무조건 다 고치면 협업이 무너진다


사내변호사가 초기에 가장 많이 저지르는 실수는 "이 조항은 리스크가 크니 무조건 수정해야한다" 고 의견을 꺽지 않는 것입니다. 맞는 말이지만, 실상 늘 통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업은 대부분 불완전한 정보, 빠듯한 일정 속에서 진행됩니다. 완벽한 계약서가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면, 현실적인 타협이 필요합니다.


이때 필요한 건 단순한 ‘수정 제안’이 아니라, 어디까지는 받아들이고, 어디서부터는 줄을 그을지를 정해주는 일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리스크의 경계선이라고 부릅니다.



사내변호사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조직은 사내변호사를 감시자처럼 대하기보다는, ‘선 긋기 전문가’로 활용해야 합니다. 법무팀은 모든 리스크를 제거해줄 수는 없지만, “이걸 넘으면 안 됩니다”라는 경계선을 제시해주는 역할은 할 수 있습니다. 그걸 알면, 현업도 훨씬 자유롭고 빠르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 조항은 협상 가능하지만, 이 조항까지는 절대 양보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상대방과는 계약 기간보다 해지 조건을 더 신경 써야 합니다.

보증 조항이 있다면, 추가로 내부 재무팀과 체크해보는 게 좋습니다.


이런 조언이야말로 ‘법률적 조언’을 넘어선 비즈니스 파트너로서의 조율과 통찰입니다.



법무팀을 잘 쓰는 조직은 리스크를 컨트롤할 줄 아는 조직이다


조직에서 법무팀을 잘 활용하는 팀은 계약서를 보내기 전에 이렇게 접근합니다.


이 계약에서 우리팀에서 꼭 지켜야 하는 건 이 조항이예요.

상대방이 이 조건을 절대 못 받아들일 것 같은데, 우리가 물러설 수 있는 부분이 어딘지 같이 고민해 주세요.

리스크가 있다면, 우리가 사업적으로 감수할 수 있는지 판단하고 싶어요.


이런 식의 접근은 법무를 ‘판단의 기준을 제공하는 파트너’로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이제는 ‘판단의 기준’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AI가 계약서를 훑고 리스크를 표시해주는 시대가 왔습니다. 앞으로 법무의 역할은 더 이상 단순히 틀린 부분을 찾아내는 ‘감별사’는 아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계약에서 무엇을 지켜야 하고, 무엇은 감수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조직이 스스로 답할 수 있도록 기준을 만들어주는 사람, 그것이 이제 법무가 해야 할 역할입니다.



사내변호사와 조직, 서로의 시선을 바꾸자


사내변호사는 ‘계약서에 밑줄 긋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업이 안전하게 굴러가게 하는 ‘안전 레일’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법무팀이 실무의 부담을 줄여줄 수 있으려면, 현업도 법무를 ‘함께 판단하는 파트너’로 대하는 시선 전환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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