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3. 사내변호사와 커뮤니케이션하기

-“그래서 하라는 건가요, 말라는 건가요?”

by 송송


법무팀이 전달한 의견서에 대해서 현업으로부터, 자주 들었던 질문 중 하나는 이것입니다.

“그래서 하라는 건가요, 말라는 건가요?”


법무팀에서는 분명 여러 조건과 가능성을 검토해 신중히 작성한 답변이었지만, 현업 부서에서는 오히려 혼란만 가중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단순한 문장 표현의 문제가 아닙니다. 법률가의 언어와 현업의 언어는 그 목적부터 다르기 때문입니다.



변호사들이 회피형 문장을 쓰는 이유


법무팀의 문서는 단순히 정보 전달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책임이 남는 기록입니다.
한 줄의 표현, 한 단어의 선택이 훗날 “왜 이렇게 표현했느냐”는 질문으로 돌아올 수 있고, 심한 경우 그 문장 하나로 인해 회사가 "불법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실행한 것"으로 불리한 해석을 받거나, 원하지 않았던 법적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래서 점점 더 단어 하나에도 신중해지고, 표현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단순히 “가능합니다”라는 표현 대신, 다음과 같은 표현이 사용됩니다. “이러이러한 조건이 모두 충족될 경우, 법적 리스크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는, “법적 책임이 인정될 여지도 있습니다.”

이런 문장들은 법률가에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방식입니다. 하지만 현업 입장에서는 이런 표현들이 모호하고, 회피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변호사들은 왜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을까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리스크가 없습니다”라는 단언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실질적으로 가능성이 5%도 안 된다고 판단되더라도, “0%”라고 표현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리스크는 존재 여부 자체보다 그 발생 가능성과 파급력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예외적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구조라면,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법률가들의 입장입니다.


그 결과, 법무팀의 보고서는 종종 확답을 주지 않는 듯한 인상을 주고, 현업에서는 결정을 위한 정보라기보다는 책임을 회피하려는 답변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현업과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상당한 마찰이 생길수 밖에 없습니다.



현업과 커뮤니케이션 하기


이런 간극을 줄이기 위해서는 “법률적 정밀함”과 “현업의 실행 가능성” 사이의 중간 지점을 찾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커뮤니케이션이 언제나 평행선 일 수 밖에 없습니다.


법적인 정확성과 논리 구조는 유지하되, 현업 부서가 현실적으로 참고하고 실행 가능한 형태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가능하면 항상 결론을 먼저 명확히 제시하고, 그 이후에 논리 구조를 따라가는 방식이 좋습니다.


또, 당장 필요하지 않은 법률적인 표현은 삭제합니다. 변호사들의 직업병 중 하나는 자신도 모르게 법령을 장황하게 인용하는 것입니다. 법령, 시행령, 심사지침에 이르기까지 정확한 표현을 인용해서 사용하고자 하는 것인데, 법령같은 경우는 인용조항이 많습니다.


○○법 제00조 제1항 본문에 따르면, 단, 같은 조 제2항 단서에서는 다르게 정하고 있고,

이는 시행령 제○○조 및 ○○고시의 별표 1에 따라 판단됩니다.


이렇게 이어지는 문장을 보고, 실무 담당자 입장에서 “이게 무슨 말이지?” 싶은 건 당연한 반응입니다.

물론, 법령 인용은 정확성을 높여주지만, 당장 의사결정이 필요한 실무자에게는 정보 과잉이 될 수 있습니다. 쓰고 있는 저 자신조차도 이걸 이해할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법률가로서 정확해야 한다는 욕심을 버리고, 필수적인 조항만 간략히 언급하고, 나머지는 부록이나 참고자료로 돌리는 방식이 실무에 더 적합합니다.



사내 법무팀과 커뮤니케이션 하기


법무팀이 작성한 답변을 받았을 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다시 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상당한 정도" 라면 가능하다는 표현에 대해서는 여기에서 "상당한 정도"는 어느정도를 의미하는 것인가요? 하고 말입니다.


현업에서는 당장의 손해배상이 가능한지가 궁금한데, 법무팀으로 부터는 "이러저러한 조건이 충족되었을 경우에는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합니다." 라는 답변을 듣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이 그 조건이 충족되었는건가요. 우리는 어느정도 선까지 청구가 가능한지, 실질적으로 판례에는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 일반인의 생각과는 다른 법률가의 영역에서는 어떻게 판단되는지 다시 물어보아야 합니다.


최근에는 생성형 AI를 통해 간단한 법률 문답을 해결하려는 시도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GPT는 변호사가 아니며, 틀린 논리와 허위 법령을 생성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법률가의 눈에는 단박에 보이는 오류라도, 일반 사용자는 그 진위를 가려내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AI가 만들어낸 법률 정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보다는, 법무팀에 먼저 의견을 구하고 그 결과를 협상의 근거로 삼는 것이 훨씬 안전하고 효과적입니다.



법무팀은 언제나 무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현업에서는 실무의 효율을, 법무팀은 리스크 관리를 고민합니다. 하지만 결국 같은 목표를 향해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입니다. 법무팀이 항상 직접적인 결정을 내릴 수는 없지만, 현업의 판단이 더 안전하고 강력해지도록 돕는 무기는 언제나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무기를 잘 꺼내 쓰기 위해, 그리고 서로의 언어를 조금 더 잘 이해하기 위해 현업과의 소통의 창을 열어두고, 복잡한 말 대신 명확한 언어로 다가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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