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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셋째딸 Dec 08. 2020

병원 쇼핑의 나날

일말의 기대와 실망의 반복

근육을 풀겠다는 일념 하나로 병원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남편 친구가 효과를 본 곳, 예전 직장동료가 강력 추천하는 곳, 언니가 TV에서 본 곳 등등 좋다는 병원이 넘쳐났다. 


병원 쇼핑이라는 말이 있다. 흔히 할머니들이 관절 주사 맞으려고 이 병원, 저 병원 돌아다닐 때 쓰는 말이다. 다른 사람 말만 믿고 참을성 없이 병원을 자주 바꾸거나 쓸데없이 병원비를 뿌리고 다니는 상황을 일컫는 다소 냉소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나도 병원 쇼핑을 하고 다녔다. 그러나 그 시절의 나, 그리고 다리를 절뚝이며 병원을 찾아다니는 할머니들을 냉소하고 싶지는 않다. 그건 쇼핑이 아니라 그냥 몸부림이다. 절박한 몸부림. 일말의 기대와 실망의 반복.


처음 간 곳은 집에서 2시간 넘는 거리에 있는 한의원이었다. 예전 직장동료가 엄지를 치켜세운 곳이라 멀어도 가보기로 했다. 승모근에 부항을 떴다. 갈 때마다 피를 뽑았다. 이상스레 근육이 점점 더 딱딱해지는 것 같았는데, 한의사는 피를 더 뽑아야 한다고 했다.


그다음으로 간 곳이 동네 신경외과 의원이다. 그곳에서 근막통증 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우리 신체는 근막으로 이어져 있어서 어느 한 부위에 문제가 생기면 다른 부위까지 아플 수 있단다. 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문제 부위에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했다. 절대로 쉬운 병이 아니며 재발도 쉽다는 것이다. 증후군이라고 하니 뭔가 어려운 병인 건 확실해 보였다. 보통 답이 없는 병에 증후군이라는 표현을 쓰니까. 


불안했지만 근육의 문제라고 하니 내 생각이 맞았구나 싶어 한편으로는 안심도 되었다. 뼈와 신경, 뇌의 문제는 아니니까 다행이라고 위안 삼았다. 근육이야 원래 쉽게 뭉치기도 하니까, 주사 맞고 스트레칭하고 관리하면 곧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주사를 맞고 스트레칭을 해도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근육을 만만히 봤던 것이다. 자려고 누우면 눈이 빠질 것처럼 아파 잠도 잘 안 왔다. 한술 더 떠 조금만 움직여도 근육이 결리고 발바닥이 자주 아프기 시작했다. 통증이 머리 이외 다른 곳에도 생겨나자 점점 초조해졌다. 나는 더욱 ‘한 방’을 찾아 헤맸다. 척추 전문병원에 이어 대학병원 재활의학과 등등 병원 쇼핑은 계속되었다.  


참 다양한 의사들을 만났다. 아주 작은 자극에도 근육이 쉽게 결린다는 말을 하자 믿지 않는 의사도 있었다. 

“거짓말하지 마세요.”

내게 그렇게 핀잔을 준 의사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사람 몸이 순두부도 아니고 무슨 그 정도 자극에 통증이 와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나 스스로도 믿기 힘든 일이었으니 더 할 말이 없었다. 오로지 나만 알고 나만 느끼는 통증을 무슨 수로 증명하겠는가?


또 한 번은 침을 놓자마자 바로 반응을 살피는 한의사를 만났다. 

“어때요? 좀 좋아진 것 같아요?”

남들은 침 한 번에 바로 좋아졌던가 보다. 그러나 나는 아무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잘 모르겠는데요.”

그러자 한 번 더 침을 놓았다. 굵은 바늘로 엄지발가락을 찔렀는데 악 소리가 나도록 아팠다.

“어때요?”

이번에도 별다른 차도는 없었다. 기대 어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한의사에게 쭈뼛거리며 아까와 비슷한 대답을 했다. 괜히 미안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이 놀라웠다. 


“재미가 없네, 재미가 없어. 좋다, 아니다 반응이 있어야지.”

무슨 말을 들은 건지 머릿속에 입력이 되었을 땐, 그는 이미 진료실로 가버린 뒤였다. 돌이켜 보면 그 한의사가 아니라, 아무런 대꾸도 못한 채 침대에 누워 황망하게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던 나 자신에게 화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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