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흔한 두통일 뿐이니까
힘들었던 직장 생활을 마감한 지 한 달쯤 지났을 무렵이다. 흔히 퇴사하고 한 달이면 실컷 놀고 먹고 자면서 지낼 텐데, 나는 좀 유별났던 것 같다. 오히려 잠을 더 안 잤다. 다음날 늦잠 자면 되니까 거의 매일 새벽까지 깨어 있었다.
새벽까지 뭐 했냐고?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앞으로 뭐 하고 살지 궁리하고 계획을 세웠다. 이 문장을 쓰는데 웃음이 난다. 얼마나 거창한 인생을 살려고 그리도 열심히 계획표를 만들었는지.
본래 어떤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는 엑셀에 시간대별로 모든 일정을 정리해 두어야 안심이 되는 타입이었다. 하물며 퇴사 후의 삶인데, 한 치의 빈틈도 없이 계획표를 정리해야 했다. 처음으로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삶을 산다는 게 걱정되었다. 게을러지지 않으려면 나 자신을 바짝 긴장시켜야 했다. 게다가 그때는 회사 생활로 누적된 피로가 미처 풀리지도 않았고, 여러 번의 술자리 때문에 컨디션이 회복되지도 않았을 시기다.
이 모든 악조건의 조합으로 두통이 시작되었다. 새벽 2시 무렵, 오른쪽 관자놀이에 찡-하는 감각을 느꼈다. 처음에는 며칠 푹 자면 괜찮아지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 두통은 사라지지 않았고, 급기야 왼쪽, 오른쪽이 모두 아픈 지경에 이르렀다.
이상했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약을 먹으면, 스트레칭을 하면, 주사를 맞으면 곧 괜찮아질 거라고 믿었다. 그냥 흔한 두통일 뿐이니까, 별것 아니니까. 그런데 별것이었다.
미친 듯이 검색해서 알아낸 정보를 조합해 보니 내 두통은 긴장성 두통 같았다. 근육의 긴장으로 발생하는 두통이란다. 3개월 전쯤, 왼쪽 목 아래 근육이 불편하고 아팠던 일이 생각났다. 일상생활이 가능한 수준, 참을 만한 수준의 두통이라는 점도 내 증상과 비슷했다. 결론은 나왔다. 나의 문제는 목 근육의 긴장에 있고, 이 근육을 풀기만 하면 된다, 이것이 나의 결론이었다.
그때의 나에게 ‘풀 근육이나 있냐’라고 묻고 싶다. 나중에 만난 어떤 물리치료사는 내 목과 등을 보면서 이렇게 혼잣말을 하기도 했었다.
“근육이 하나도 없네. 나도 이런가?”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근육이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초창기에는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저 단단해진 근육을 이완시켜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을 때였다.
나쁜 습관의 결정체인 근육의 길이가 하루아침에 그리 쉽게 늘어날까?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가랑이가 찢어진다고 했지, 늘어난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무의미한 찢기를 매일 반복했다.
근육은 강하게 늘어나면 그보다 더 강하게 수축하려는 성질이 생기는 법이다. 그래서 스트레칭도 적당한 범위 안에서 해야지, 당장 발레리나라로 거듭나기라도 할 것처럼 무리해서는 곤란하다. 그러나 근육에 대한 이해가 전무했던 나는 아파도 참으면서 찢고 또 찢었다. 불쌍한 나의 육포 쪼가리들은 점점 더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