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만드는 일상
어느 날 화분이 둘 생겼다. 프로그램 개편으로 헤어지게 된 피디와 게스트의 작별 선물이었다. 이번만큼은 잘 키워보고 싶었다. 그렇지 못할 확률이 ‘경험상’ 더 높았지만, 이번엔 다르기를, 가끔 ‘얘, 잘 지내고 있어요!’하고 그들에게 안부를 전할 수 있기를 바랐다.
꽃기린과 문샤인 산세베리아. 다행히 둘 다 관리가 아주 까다로운 식물들은 아니랬다. 베란다에 두고 볕이 드는 곳으로 옮겨 가며 꼬박꼬박 물 줘 가며 한동안 기르는 재미가 꽤 쏠쏠했다. 마치 보답이라도 하듯 그들도 쑥쑥 자라주는 통에 더 신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일이 몰리며 바빠지고 출장과 휴가로 집을 비우는 시간이 늘어나자 식물들은 점차 안중에서 멀어졌다. 뒤늦게 생각이 나 부리나케 들여다봤을 땐 꽃기린은 이미 누렇게 색이 바랜 후였다. 손가락을 가까이 대자 마른 잎이 우수수 힘없이 떨어졌다.
미안해 몸 둘 바를 몰랐다. 사실 바쁜 건 핑계나 다름없었다. 빨래를 널고 걷고 하느라 수시로 베란다를 드나들었으니 이 지경이 된 건 그들에게 시선을 주지 않은 명백한 내 잘못이었다. 생명을 돌보는 건 재미 따위로 하는 게 아닌데, 그건 책임인데 말이다.
할 수 있다면 살리고 싶었다. 바싹 말라붙은 이파리를 정리하고 물을 듬뿍 주었다. 매일 아침 흙을 만져보고 해줄 게 없는지 관찰했다. 하지만 너무 늦어버린 걸까. 며칠이 지나도 소생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역시, 나는 식물을 기르면 안 되는 사람이야.
오늘 아침에도 어김없이 두 화분을 살펴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산세베리아는 그나마 윤기가 회복되는 듯도 하다. 좀 더 지켜볼 일이다. 하지만 꽃기린은 전날과 다름없이 주변에 낙엽들이 어지럽혀 있었다. 손으로 쓸어 담고 잔여물을 일일이 주워 올렸다. 그런데…
낙엽을 싹 치우자 눈에 들어왔다. 아주 조그맣게, 가지에서 연둣빛 새잎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이! 조심스레 줄기를 쓰다듬어 보니 어제까지의 거칠고 깔끄러운 촉감이 아니었다. 수분이 얼마간 느껴지는 촉촉한 살결이었다. 그 기분이란! 순간 긴장이 툭- 하고 풀렸다.
나는 왜 이토록 화분에 집착했던 걸까? 누군가의 마음 담긴 선물이라서? 물론 그런 점도 없지 않을 테다. 하지만 궁극에는 다르게 살고 싶은 기대가 자리했던 것 같다. 눈앞에 닥친 일에 급급해 소중한 것들을 돌보지 못한 지난 삶에 대한 안녕을 진정 고하고 싶었던 것이다.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 아침에 일어나 초록색 식물의 안부를 챙기는 루틴을 지속하고 싶다. 그렇게 하루하루 싱그럽게 채워가고 싶다. 건강한 일상을 위해 정성을 다하고 싶다. 성공하는 삶이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고 싶다.
다시 식물을 키웁니다. 다시는 식물 키우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