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은 사소하다.
종이 재질이 좋은, 그러니까 필기감이 좋은 메모지나 다이어리에 내가 좋아하는 볼펜으로 끄적이는 것을 좋아한다. 비가 오는 날이면 집 안에 향초를 켜둔 채로 약간의 바람만 통할 정도로 창문을 열어 둔 채 빗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가끔 집으로 내려가기 전에 일찍 도착한 터미널의 작은 카페에 들어가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는 것도 좋아하고, 창가자리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좋아한다.
나의 '좋아함'은 이렇듯 대단하지 않고 내가 열정을 다해 좋아한다고 큰 소리로 떠들만큼의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사소한 행위들을 좋아한다.
그래서 가끔 사람들이 "뭘 좋아해요?" 하고 물으면 머릿 속이 새하얘지곤 한다. 나는 이런 것도 좋아하고, 저런 것도 좋아해요. 그렇게 말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주관이 없는 사람 혹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사람 정도로 여기는 표정으로 되묻는다.
그런거 말고 진짜로 좋아하는 거요.
아니 나는 진짜로 이러한 것을 좋아한다니까요? 그런데 믿지 않는다. 왜 다들 이름을 대면 다들 알 만한 무언가를 말해야만 좋아한다고 '인정'해주는 것일까. 애초에 그러한 '인정'은 왜 자신들이 판단하는 걸까.
그리고, '좋아하는 것'과 '그 사람'을 동일시 하는 것도 터무니 없다.
요즘은 자기 PR 시대라 그런지 개인의 취향마저도 그 사람에 대한 판단 기준이 되는 듯 하다. 취향마저도 나를 포장하는 하나의 도구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런 시대에 소소한 취향을 가진 나같은 사람에게 좋아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참 어려운 미션이다. 좋아하는 것의 바운더리가 넓어, 하나만 콕 집어 이야기 하기가 어려운데, 그런 것을 이야기해도 '인정'을 해주지 않으니 참 어렵다.
이런 이야기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또 있다. 분명 좋아하는 것이 한 가지는 아닐텐데, 그런 다양하고 입체적인 사람의 '취향' 혹은 '생각'을 하나의 문장과 단어로 뭉그러뜨리는 것이 어렵다. 문장 하나로 뱉어내면 그것으로 특정이 되어버린 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이런 사소한 질문도 괜스레 어렵게 느껴진다. 쓸데없는 생각이 너무 많은 탓에 가벼운 질문을 피곤하게 받아들이는 걸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내가 뱉은 문장 하나로 나의 취향을 정의 당하는 게 싫어서 남들에게는 보이지도 않는 의미 없는 발버둥과 같은 괜한 반항을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가끔 이런 질문을 듣고 위와 같은 반응을 듣고나면 괜히 뭔가 잘못된 대답을 한 것 마냥 주눅 들 때가 있었다. 그런데, 사실이 그러한 걸 어떡하나. 이게 나인데. 요즘은 그렇다. 굳이 열변을 토해서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도 하고.
그래서 앞으로는 그냥 '사소한 걸 좋아하는 데 그게 왜요?' 라고 해보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