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절기 감기를 겪는 것처럼 가을이 올 때면 밀려드는 우울함이 있다.
흔히들 가을 탄다,라고 표현하는 바로 그것이 내게도 있었다. 그저 익숙했던 날씨가 변하고, 그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져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었다. 그런데 어째 시간이 지날수록-나이를 먹을수록, 이라고 읽는- 더 심해졌다. 가을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우울감은 조금씩 길어졌고 잦아졌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단순히 날씨의 탓으로 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것들이 나의 우울을 깊어지게 했다. 가끔은 사회 속에서 공허하게 존재하는 나의 모습 때문이기도 했고, 공기처럼 늘 나를 휘감은 상념들이기도 했으며, 관계의 끝맺음에서 오는 우울이기도 했다.
참 이상하게도 우울이 깊어질 때면 나는 매번 나를 의심하곤 했다. 마치 우울감에 젖어들기 전의 나의 모습 모든 것이 전부 거짓이었던 것처럼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고, 그 모습으로 맺어온 모든 관계들이 부질없고 연약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가을만 되면 그랬다. 내가 존재하기 시작한 그 계절을 만날 때면 끊임없이 의심하고 존재를 부정하기도 했다. 그렇게 힘든 계절을 반복하기가 몇 번이었을까, 우연히 클릭한 인터넷 기사에서 조금 생소한 단어 하나를 발견했다.
계절성 우울(seasonal affective disorder)
참 생소한 단어였다. 계절성정동장애 또는 SAD라고도 부르는 이 단어는 '계절적인 흐름을 타는 우울증의 일종'이라고 정의되고 있었다.
특히나 가을, 겨울에 우울증상과 무기력증이 나타나고, 증상이 악화되다가 봄과 여름이 되면 증상이 나아진단다. 놀랍게도 환자의 83%가 여성이라고 했다.
그제야 계절이 바뀌고 가을이 돌아올 때마다 느꼈던 싱숭생숭하고 낯설었던 감정들이 이해가 갔다. 그리고 이 말을 알고부터는 묘하게 마음이 갔다. 한글로 적어 놓아도 동글동글한 발음이라 좋고, 영어로 길게 늘어 적어도 어쩐지 마음을 울리는 모양이다. 변명으로 쓰기에도 참 좋다. 괜히 코 끝이 시리고 울적해지는 날이면 으레 해오던 '원인 찾기'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저 '계절성 우울증이 또 도졌나 보다.' 하면 되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가을의 문턱을 지나 겨울로 향하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머릿속을 맴도는 각종 우울들과 함께 하고 있다. 그래도 이젠 그러려니 한다. 봄이 오면 또다시 괜찮아질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