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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여름 Nov 30. 2017

그래, 아무것도 하지말자

얄개들 1집 그래, 아무것도 하지 말자




그래, 아무것도 하지말자.



오늘은 나에게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이 문장과 관련된 이야기를 짤막하게 써보려 한다.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누군가를 추억하고 특정한 순간을 기억한다. 나의 경우엔 음악이 그랬다. 길을 다니다 문득 흘러나오는 낯익은 멜로디를 듣고 몇 년 전 친구와 함께 버스를 타고 대학교 캠퍼스 투어를 핑계 삼아 서울 여행을 갔던 날을 떠올리기도 했고, 고등학교 시절 친구와 이어폰을 나누어 끼고 옥상에서 따사로운 햇빛을 받으며 행복해 하던 순간을 떠올리기도 했다. 마치 기억에 라벨을 붙여 놓은 것 마냥 음악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머릿 속에 마구 흩어져 있던 기억의 조각들이 하나하나 맞추어지곤 했다.


그래서 다시 서두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그래, 아무것도 하지말자' 라는 문장은 나에게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약 2년 전 나에게는 누군가를 추억하는 문장이자, 음악이었다.


덮어놓고 친해요 라고 말하기엔 조금은 어색하고 그렇다고 그냥 아는 사이 정도로 치부하기는 싫었던 사람이 있었다. 그에 대해 아는 건 몇 되지 않았을 때, 꼭꼭 감추어진 그의 사적인 취향 중 하나로 추측되었던 것이 바로 얄개들의 1집 앨범이었다. 얄개들의 음악이 곧 나에게 그의 이미지가 되었다. 그 사람은 이 앨범을 들으며 무슨 생각을 할까, 이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곡들 중 어떤 곡을 가장 좋아할까,  나는 이 곡이 마음에 드는데, 그의 취향은 나와 비슷할까, 따위의 부질없는 생각들을 하면서 말이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보냈던 날들은 돌이켜 생각해보니 참으로 찌질한 추억이었다. 하지만 이 앨범과 자켓의 이미지, 그리고 '그래, 아무것도 하지 말자'라는 문구가 유독 마음에 남았던 건, 그 시절의 내 찌질함도 낭만으로 보이게 해주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마냥 방바닥을 긁으며 널부러져 있던 이들이 무기력하게 찍은 것 같은 자켓의 이미지가 왠지 청춘같기도 하고 낭만적이기도 한 것 처럼 말이다.


그래서 저 앨범에 수록된 곡들이 이어폰에서 흘러 나오며 화면에 커다랗게 쓰여진 문구가 보일때면 괜히 마음이 요상했다. 아련한 기억에 잠기기도 했다가, 꼭 대학생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기도 했다가.


그렇게 시간이 지나며 저 짧은 문장은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가다가, 우연히 읽은 책의 한 구절로 인해 다시금 생각 났던 거다.

 



여러분, 우리, 그러니까, 오늘부터 파이팅하지 맙시다.



위의 문장은 '망치'라는 책에 소개된 한 대학생의 마지막 스피치 문장이었다. '파이팅 하지 맙시다' 라는 문장을 보고 불현듯 떠오른게 '그래, 아무것도 하지 말자'였다. 이미 문장에 덧씌워진 의미가 벗겨진 채여서인지 저 문장은 또 새로운 느낌으로 와닿았다.


마지막 스피치의 말로 마무리 되기 전의 내용은 이러했다.


오히려 삐딱하고 냉소적인 문장들이 인간미도 넘치고 숨통이 트이면서 위로가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스스로를 매몰차게 채찍질하며 지나치게 긍정적이고자 노력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긴 인생, 살다 보면 긍정적인 날들도 있는 것이고, 부정적인 날들 또한 있기 마련입니다. 긍정의 힘이라고들 말하는데, 사실 긍정 그 자체로는 아무 힘이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힘을 좀 뺐으면 좋겠습니다. 불안하고, 정적이라도, 그냥 그런대로 살면 되는 것 아닐까요? 너무 애쓰지 말고, 우리 내면의 감정들을 솔직하게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더 현명한 것은 아닐까요?

- TBWA 주니어보드 망치 스피치 모음 중 -


책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던 부분이었다. 한국인들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도록 교육 받았고, 열심히 산다. 나 역시도 나름대로 열심히 사는 편인거 같다, 라고 생각하지만 저 문장들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던 건 실은 마음 깊숙한 곳에 있던 '아무것도 하기 싫은 마음'과 '열심히 살기 싫은 마음'이 슬그머니 비집고 올라온 탓이 아니었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쉴 틈 없이 스케쥴을 만들고(인간관계든 취미생활이든 무엇이건간에) 그것들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낀다고 생각했지만,  가끔은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왜 To do list를 지워나가는 사람마냥 이것 저것 하고 있을까, 란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었다. 분명 좋아서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마음'이라는 게 있어서 계획대로 진행이 되지 않으면 괜히 초조해지곤 했다.'마이페이스'를 꾸준히 유지하는 게 안되어서였던 걸수도 있고, '쉬는 것 = 게으른것'이라는 사회의 인식에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 그러다 우연히 읽은 저 문장에 마음이 스르르 내려앉은 것이다.


꼭 매일매일을 성실하고 값지게 보내야만 하는 걸까? 조금은 편하게 지내도 되지 않을까?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는게 좋지 않을까? 란 생각과 함께, '그래, 아무것도 하지 말자.' 그렇게 결심하게 되었다. 뜬금없는 결론같지만 시간을 헛되게 보내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결심과는 다르게 '브런치에 글을 쓰고 싶다'라는 마음이 앞서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만 '해야 한다'에서 출발한게 아니라 '하고 싶어서' 출발한 일이니 다른 성격의 문제라고 생각해본다. (모순인가? 하지만 이 글을 써야겠다 마음먹고서도 쓰는데까지 약 2주 이상이 걸린 듯 하니...)


어찌됐건 그간 해온 것들이 있어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은 꽤 어렵다. 노트북에서 손을 떼고 침대에 앉아있으면 소재만 대충 메모해놓은 글들을 마무리 짓고 싶기도 하고, 새로운 음악을 핸드폰에 넣고 싶기도 하고, 미뤄둔 다이어리를 펼쳐 들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것들도 정말 '하고 싶은 때'까지 한번 미뤄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해 볼 작정이다. 딱 내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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