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내내 저질 체력으로 고생했던 탓에 하반기는 체력을 다지기로 결심했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요가원을 3개월치 등록하고 걷기 좋은 운동화도 구매했다. 신발이 걷기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다. 사실 이 신발을 만나기까지 몇 개월이 걸렸다. 내 발에 꼭 맞고 편한 운동화를 3년째 신었더니 민망한 수준으로 낡았길래 새로 사려고 보니 단종이 됐단다. 비슷한 라인으로라도 빨리 샀어야 하는데 뭉그적거리며 괜히 유행이거나 유튜버들이 추천하는 운동화를 구경하며 구매를 미뤘더니 그동안 걷기도 미루게 됐다. 이쁘고, 편하고, 어느 옷에나 잘 어울리고, 가격도 괜찮은 운동화는 없다. 다른 물건들도 마찬가지다. 필요한 부분에 우선순위를 두고 선택을 잘하는 능력도 나이가 들 수록 늘겠지.
그렇게 산 운동화를 신고 요가원에 가는 중에 회사 직원분에게 연락이 왔다. 드라마 회식을 오고 있는 중이냐고 물었고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놀라는 직원분께 어제 넌지시 가지 않아도 괜찮냐고 말했던 게 가지 않겠다는 뜻이었다고 어물쩡 말했다. 고기도 술도 안 먹는데 여의도까지 가서 된장찌개를 먹으며 앉아있고 싶지 않다는 이유도 말했다. 물론 직원분은 나의 의사를 존중했지만 애써 숨기는 아쉬움에 나도 덩달아 아쉬워졌다.
'갔었어야 하나' 새신을 신고 걷는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지금이라도 발을 돌려서 요가원이 아닌 여의도로 출발해야 하는 것인지, 나의 건강 보단 내 사회생활을 위한 쪽으로 가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며 걷다 보니 요가원에 도착했다. 매트 위에 앉아 명상을 시작하니 다시 생각이 떠올랐다. '갈 걸 그랬나' 하지만 이내 김숙 언니가 생각났다. 프로 회식 불참러에 자칭 회식 극혐자인 언니는 2020년 KBS 연예 대상을 받았다. 뜬금없이 이게 무슨 연관이 있나 싶겠지만, 인간관계가 중요한 연예계에서 대상까지 가는 길에 숙언니는 회식을 필수 코스로 집어넣지 않았다는 사실은 나에게 큰 위로였다. 쉽지 않았을 텐데, 경외감까지 들었다. 마음이 편해졌다. 나도 나의 배우 인생에 회식을 필수 코스로 넣지 않아도 되겠지. 이 날은 머리 서기를 3분 넘게 했다. 온몸에 힘을 빼고 깊은 휴식에 집중하는 송장 자세는 특히나 더 편했다.
살다 보면 작은 문제에 마음을 빼앗겨 생각이 나를 잠식시키는 일이 다반사다. 그럴 때마다 외우는 주문들이 있는데 요즘은 '그럴 수도 있지, 오히려 좋아'이다. 이마저도 통하지 않으면 기도를 한다. 나의 생각과 나의 욕심에 마음을 빼앗기는 일은 사람을 작고, 밉게 만든다. 그런 생각을 버리고 지혜를 얻을 수 있도록, 나의 힘이 필요한 곳에 힘을 쓸 수 있도록, 지금 마음을 빼앗는 일보다 더 기쁘고 사랑이 있는 쪽을 바라볼 수 있도록. 다음 회식은 회를 먹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