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눈에 비친 세상의 색을 사랑하는 것과 같다.

초록의 너와 하얀 내가 만나 연두 근처에서 입 맞추는 거라고

by 강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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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의 눈이 포착한 세계의 모습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 또한 그녀에게, 내 눈이 포착한 세계의 모습을 조금씩 얘기할 수 있게 되었다'


- 태엽 감는 새(무라카미 하루키)


책이 아름다운 이유는,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그것을 수사하는 언어의 방식이 전혀 다르다는 데 있다. 그건 같은 곳을 보면서도 그 안에서는 전혀 다른 세계를 보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나 역시 언젠가 그런 말을 했던 적이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그 사람 눈에 비친 세상의 색을 사랑하는 것과 같다고. 그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나도 모르게 포획되는 것이라고. 그 사람의 말투를 따라 해 보게 되고, 그 사람이 듣는 음악을 들어보기도 하고, 그 사람이 좋아하는 영화를 혼자서 보기도 한다. 그렇게 그 사람이 바라보는 세상에 나도 하나의 풍경이 되어보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그 사람이 보는 것을 볼 수 없다. 그 사람이 보고 있다고 믿는 곳에 다다르고자 노력할 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누군가의 의 근처에 서서 '아 이 사람은 이걸 보고 있었구나'라고 되뇌며 충실히 오해하는 일뿐이다.

영원히 오해일 수밖에 없는 어딘가의 지점에서 발견한 것들로 내 세계를 넓혀 나가는 일이다.


나는 너의 세계에, 너는 나의 세계에 영원히 들어올 수 없지만, 맞닿지 않은 채로도 공명할 수 있다.

공명은 나와 너 사이의 영원한 거리 속에서도 가능하다.


이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곳에 발걸음을 옮겨보게 된다.

늘 내 세계만을 배회하던, 그 무겁고 보수적이던 내 발걸음을 새로운 세계로 향하게 만들었던 건 언제나 무언가로부터의 강력한 끌림이다.

누군가의 세계로부터 온 초대장이다.


그 끌림은 나만의 세계를 벗어나게 만들고, 그 사람의 세계라고 착각하는 곳에 나를 데려다준다.

나의 세계도, 그 사람의 세계도 아닌 그곳에서 나는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게 되고, 그것은 내 세계의 확장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완전히 같은 곳에 설 수는 없겠지만, 서로의 향기를, 서로의 소리로 온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곳에 있다면 그 정도로 충분하다. 우리는 그저 '근처'에 머물 수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 어쩜 사랑이란 건
초록의 너와 하얀 내가 만나
연두 근처에서 입 맞추는 거라고

심현보 - 스며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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