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는 건설업에 종사하신다.
현장 소장이라고 소개하면 "아, 그럼 좀 편하시겠구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닐지 몰라도, 일이 없을 땐 1년 넘도록 일이 없던 적도 있었던 외로운 프리랜서이기도 하다.
부모님은 내가 어릴 때부터 맞벌이를 하셨다. 많은 가정이 그렇듯, 우리 집도 무척 힘든 시기가 있었다.
내가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던 시절, 아빠는 1년 넘도록 일이 없었다. 일이 들어올 것 같다가도 취소되고, 또 들어올 듯하다가 다시 취소되기를 반복했다.
그때 엄마가 느꼈을 막막함을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시간이 지난 이제야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른 아침 출근하는 엄마에게 원래도 차가운 아침바람이 얼마나 더 서늘하게 느껴졌을까.
내가 저녁 6시에 퇴근하고 6시 반쯤 집에 돌아오면, 아빠는 늘 요리를 하고 계셨다. 널린 빨래들, 정갈하게 개어진 세탁물, 깨끗해진 집과 아침과 달라진 청소기의 위치. 그 모든 것이 아빠가 혼자 있던 낮의 풍경을 은근히 보여주고 있었다.
다양한 레시피로 새로운 음식을 도전하던 아빠는 요리가 정말 즐겁다며 웃었다. 맛있게 먹는 우리를 보며 행복해하는 아빠의 모습에 마음이 조금 놓였다. 요리가 아빠의 행복이 되어준 것 같아서.
나도 얼떨결에 어린이 뮤지컬 한 편을 계기로 프리랜서의 길을 걷게 되었고, 꽤 오랫동안 시달렸다. 일이 없을 때의 불안감, 세상에서 나만 도태된 것 같은 느낌. 그 시기를 겪고 나서야 알게 됐다.
아빠는 행복해서 요리한 게 아니라, 뭐라도 붙잡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라는 걸.
이른 아침 찬 바람을 맞으며 외롭게 출근하는 엄마, 그런 엄마를 바라보아야 했던 아빠, 그리고 우리 앞에서 늘 웃어야 했던 아빠. 그 무력함에 매몰되지 않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었다.
분명 행복하다고 말했으면서도,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아빠.
아무리 봐도 부모라는 존재는 세상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포지션이다. 부모에게 가장 큰 슬픔은 자신의 부족함보다도, 그 부족함에 적응해 가는 아이들을 바라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자신을 믿고 결혼해 준 사람을 외롭게 하고 있다는 가장의 외로움은 더 깊지 않을까.
마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마지막 장면에서, 죽음을 앞두고도 아들 조슈아를 위해 장난을 치던 귀도처럼. 요리하는 게 행복하다며 웃던 우리 아빠처럼.
내가 아는 가장 큰 슬픔은, 슬픔을 드러낼 수 없는 슬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