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 선생님과 결혼한 제자

니체가 말하는 사랑

by 강준혁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이 이야기를 보게 됐고, 흥미가 생겨 바로 인간극장 정주행을 시작했다.

난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아주 잘 알아본다고 생각하는데, 이번에도 역시 그런 느낌이 들었다.


"국혜민 : 쟤네는 돈도 없고 남편은 군대도 안 갔다 왔고 직장도 없었고 학생이었고 그런 상황들만 보면 '고생하겠다' 이런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갈구하고 있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인정해 주고 내 존재가치를 알아주는 사람 그 사랑을 받으면서 살면 얼마나 행복한지를 우리가 좀 보여주자"


"남편을 만날 때 저를 옭아맸었던 사회적인 편견이나 시선들을 다 버리고 좀 자유롭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선택하자 이렇게 생각했어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 같았다.


"I don't believe that anybody feels the way I do about you now

And all the roads we have to walk are winding

And all the lights that lead us there are blinding

There are many things that I would like to say to you, but I don't know how

'Cause maybe

You're gonna be the one that saves me

And after all, you're my wonderwall."


— Oasis - Wonderwall


내가 너에게 느끼는 감정은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거야.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은 굽어져 있고,

우리를 인도하는 듯한 빛은 오히려 우리의 눈을 멀게 해.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은데, 말로 정리가 잘 안 돼.

왜냐하면 네가 날 구원할 유일한 사람 같거든.

그래, 결국은 네가 나의 Wonderwall이야.


내 주관이 담긴 해석은 이렇다.

특히 "And all the roads we have to walk are winding And all the lights that lead us there are blinding" 이 부분이 참 좋은데, 우리가 추구하는 성공과 명예는 때로는 우리를 열정적으로 만들고,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주변의 소중한 것들을 놓치게 만든다.

우리 삶의 순간순간이, 마치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당연히 희생되어야 할 시간들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이러한 현실은 많은 유명인이나 부유한 사람들이 마약 중독이나 자살로 삶을 마무리하는 모습,

혹은 자신의 권력을 타인을 착취하거나 억압하는 데만 사용하며 스스로를 소모하는 모습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축적의 끝에는 행복이 없으며 권력의 폭력적 사용은 결국 자신의 공허함을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방식으로 표출할 뿐이다. 우리는 관성적으로 '사회적 성공'을 좇지만, 이분은 인생에 있어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알고 계신 듯했다. 그리고 역시나 '선택'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분이었다.

인문학적, 그리고 인격적으로 성숙해진다는 것은 이해의 폭과 깊이가 성장하는 데 있다.

세상을 더 넓고 깊게 바라볼 수 있게 되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더 넓고 깊어지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타인을 품을 수 있다. 성숙한 사람들은 혼자 있을 때도, 타인과 함께할 때도 늘 자연스럽다. 그리고 너무나 매력적이다. 문득,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나를 아는 사람'이라는 노래가 떠오르는 장면.


"'당연히 어떻게 선생님인 내가 제자였던 사람이랑 만나겠어, 미쳤어?' 그러면서 저 자신에게 '너 미쳤니?' 이렇게 생각하면서 '내가 떼어내야겠다 이 사람은 나를 계속 좋아할 것 같으니까 내가 좀 밀어내야겠다'라고 생각해서 만나지 말자고 했었죠"


"'그냥 선생님 당신이라서 당신의 존재가 너무 좋다'라는 느낌을 제가 받았어요. 그래서 그거에 너무 감동을 받고 '내가 언제 이런 사람을 만나 보겠나' 생각을 했고, 제가 꿈꾸던 이상형이 자신의 꿈을 말할 때 뭔가 반짝반짝 눈이 빛나는 사람이 좋았거든요"




훌륭한 사람이라고 느껴지는 이들을 볼 때면, 그들은 마치 내가 글로 적어놓았던 가치들을 실제로 지니고 사는 듯한 느낌이 든다. 제자와 연애를, 또 더 나아가 결혼까지 해냈다.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린 국혜민 선생님.

내 생각에 선생님은 대단한 용기를 가진 게 아니다. 그와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이 용기보다 더 클 뿐이다.

내 감정에 솔직하기 위해, 용기는 자연스럽게 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언어로 정리해 조리 있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조차 희소한 시대에,

그런 깊이까지 갖춘 사람이라니!


국혜민 선생님은 분위기를 밝게 만드는 기분 좋은 에너지와 깊이를 함께 지닌, 희소한 사람들 중에서도 더욱 귀한 존재로 느껴진다.

밝음과 깊음을 동시에 갖춘 사람을 찾아보기는 정말 어려우니까.


세상의 여러 풍파를 겪으면서도 그 밝음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 사람이 얼마나 강한지를 증명한다.

사람들의 시선을 이겨내고, 통장 잔고에 천 원도 없던 제자 출신의 남성과 결혼할 수 있었다니.

이것은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않으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을 만큼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그것이 옳다는 걸 깨달을 만큼 현명한 사람이어야만 한다. 바디우의 말처럼, 사랑은 오로지 둘의 무대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시선이 개입되는 순간, 사랑은 변형되고 만다. 그것은 더 이상 둘의 무대가 아니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용 네트워크 같은 혼잡하고 혼탁한 감정에 불과하다. 겁이 많을수록, 사람들은 타협이란 이름 아래 둘의 무대를 침범당한다. 성숙하고 강해져야만, 둘의 무대를 지켜낼 수 있다.



니체의 선악의 저편에 나오는 두 구절이 떠오른다.

진정으로 위대한 시기는 우리 자신이 악이라고 칭하던 것이 사실은 최선이었다고 고쳐 부를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될 때 찾아온다.

- 선악의 저편(니체) 116절



사랑에 의해 행해지는 일은 언제나 선악을 초월한다.

- 선악의 저편(니체) 153절


사람들은 "그러면 안 돼." "그건 나쁜 거야." "어떻게 선생이랑 제자가 만나?"라고 말하며, 마치 사랑에도 선과 악이 있는 것처럼 선을 긋는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에 어떻게 경계를 그을 수 있단 말인가?

사랑뿐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온갖 것들에 가치의 잣대를 들이댄다. 꿈을 좇는 이들에게는 현실을 모르는 어린아이로 치부하며, 매니악하거나 소수의 취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왜 그런 걸 좋아해?"라고 묻는다.

그렇게 사람들의 시선이 모여 정답이라는 이름의 선을 만들어내고,

그 선을 이탈하려는 이들에게는 수많은 화살이 쏟아진다. 그 시선들 속에서 우리는 점점 내 욕망을 지켜낼 수 없게 된다. 타인의 시선이 만든 틀을 벗어날 용기를 잃게 되는 것이다.

그 틀은 곧 내 행동을 부자연스럽게 만드는 자기 검열의 굴레로 작동한다.


하지만 정말 좋아하는 무언가를 만났을 때, 우리는 드디어 지긋지긋한 검열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다.

음악이 너무 좋다면 부모가 뜯어말려도 연습실로 가게 되는 것처럼,

통금에 쫓기던 아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기 위해 통금 시간을 기어이 어기게 되는 것처럼.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할 때, 사람들이 그어놓은 가치의 잣대는 더 이상 내 의식 속에 들어설 자리가 없다.

사람들이 아무리 선과 악을 나누어 놓아도,

사랑에 의해 행해지는 일은 언제나 선악을 초월하는 법이니까.

우리는 그렇게, 사랑과 욕망이 선과 악의 경계를 초월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며 살아간다.



국혜민 " 당신이 지금까지 되게 잘해왔잖아 아내 입장에서 보면 당신이 남편으로서, 아들로서, 사위로서 그리고 지금 선생님으로서 되게 백조같이 유지를 하고 있지만 나는 알잖아 당신이 얼마나 발을 구르고 있다는 걸 나는 그런 걸 보면서 당신이 위태로울까 봐 걱정이 돼"


박민혁 : 내가 생각을 해서 '혜민이한테 잘해야지' 이게 아니라 혜민이한테 이렇게 해주면 혜민이도 행복하고 나도 행복하다. 그래서 하는 거야

국혜민 : 근데 그건 또 당신을 희생하는 거잖아


박민혁 : 정말 내가 즐거워서 요리를 해주고 내가 한 요리를 당신이 맛있게 먹어줘 그런 모습을 보는 게 행복하잖아. 그거를'희생'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는 거지 내 말은. 오히려 나한테 그런 요리를 할 수 있게 해 줘서 고맙다. 그게 차라리 더 맞는 거지 '희생'이라는 것보다는.


국혜민 : '희생'보다는 '봉사' 어때요?


박민혁 : '사랑' 사랑밖에 더 있어요? 그런 걸 '사랑'이라고 하는 거예요.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싸움을 보며 자란 내게, "저런 대화를 나누는 부모를 보며 자란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라는 생각을 선물해 준 사람들이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인격적으로 성숙하다는 것은 세상을, 나를, 그리고 타인을 명료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과 같다. 그런 시선을 갖추지 못할수록 유아적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욕망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생각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자신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 유아적인 태도다.

결국 우리의 목적은 ‘나’로서 타자와 공존하는 것에 있다.

이 두 사람의 대화를 보면,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내는 너무 많은 것들을 짊어지고 있는 남편이 안쓰럽고,

남편은 "그 역시 나에게 행복으로 환산되기 때문에 결국은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라고 말한다.



이타심은 곧 이기심이다. 그러나 이기심은 이타심이 아니다.

- 황지우


내가 저 사람에게 잘해주는 이유는, 그 사람 또한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는 저 사람이 행복하면, 나까지 덩달아 행복해진다. 결국, 그것이 나의 행복으로 환산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타심의 기저엔 이기심이 서 있지만, 받기만 원하는 이기적인 사람은 절대 이타적일 수 없다.

마치 일은 하지 않으면서 월급만 받겠다는 심보와 같다. 사랑받기만을 원하는 유아적인 사람은 절대 사랑을 할 수 없다. 며칠 전에 썼던 이 글의 의미를, 20대의 남편은 이미 온전히 이해하고 있었다.

성숙함은 역시 나이와 비례하는 것이 아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아내를 위해 밥을 짓는 것은, 아침밥을 하는 게 너무 행복해서가 아니라 아내가 조금이라도 더 자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고, 그가 밥을 먹으며 행복해하는 모습이 내게 더 큰 행복이 되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사랑이란, 결국 비효율을 기꺼이 감수하는 두 사람에게

효율적으로 쌓이는 그 무엇이다.


두 사람을 보며 좋은 의미의 유유상종이 떠올랐다.





'이제는 진심으로 주변을 경계하고 주의했으며, 자신들의 이런 움직임에서 어두운 즐거움을 느꼈다. 스토너는 어두워진 뒤에만 그녀의 집을 찾았다. 그때라면 그가 그녀의 집에 들어가는 것을 아무도 볼 수 없을 터였다. 낮의 공강시간에는 캐서린이 커피숍에서 일부러 젊은 남자 강사들과 어울렸다. 두 사람 모두 단호하게 마음을 다잡고 있었기 때문에 함께 보내는 시간은 한결 더 강렬해졌다. 두 사람은 그 어느 때보다 서로에게 가까워졌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속으로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이 말이 사실임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사실은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꺼낸 말이 단순한 위로의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덕분에 두 사람은 더욱 가까워질 수 있었으며, 서로에게 진심을 다하는 것이 필연적인 일이 되었다.

두 사람은 빛이 절반밖에 들지 않는 세상에 살면서 자신들의 좋은 점들을 드러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사람들이 살고 있는 바깥세상, 변화와 지속적인 움직임이 있는 그 세상이 비현실적인 거짓 세상처럼 보였다. 두 사람의 삶은 이 두 세계에 철저하게 나눠져 있었다. 이렇게 분열된 삶을 사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았다. 바깥세상이 점점 조여 들어오는 동안 두 사람은 그 세상의 존재를 덜 의식하게 되었다. 함께 느끼는 행복이 너무 커서 바깥세상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다.'

- 스토너


바디우의 말을 빌리자면 사랑은 우연적인 만남으로 시작해 ‘하나가 아닌 둘의 무대’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다.

무대에 선 것이 둘이라면 이 무대의 주인공은 오로지 두 사람뿐이다. 외부의 소리는 이 극의 진행을 결코 방해할 수 없다.



강신주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정신적인 사랑? 완전한 사랑? 진정한 사랑? 이 이야기가 과거적이지 않아야 돼요. 사랑은 미래도 아니고 과거도 아니고 지금이에요. 사랑은 꽃을 피우겠다거나 꽃이 피었었다는 게 아니라 '지금' 꽃을 피우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사랑에 목말라하는 거고요. 사랑을 하면 현재에 살죠. 오늘이 행복하죠. 이게 사랑이라고요. 진정한 사랑, 영원한 사랑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에요. 제대로 연주가 됐느냐 되지 않았느냐의 문제예요. 영원히 울려 퍼지는 피아노 소나타가 좋을까요? 딱 40분일지라도 전혀 들어 보지 못했던 소나타가 나를 울린다면 우린 그걸 사랑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꽃은 피면 지는 거예요. 중요한 건 '폈느냐'예요. 꽃이 핀다는 건, '폈었다'는 것도 아니고 '필 것이다'라는 것도 아니에요."


미래를 불안으로, 과거를 후회로 물들이고 있는 나를, 내 앞에 펼쳐진 현재를 바라보지 못하는 나를

오로지 현재에 살게 해주는 것. 그것이 사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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