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마음휠체어를 타는 사람 2>
"사람이 잠을 못 자게 하면 어떻게 해!
꿈도청을 계속하면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형은 잠을 제대로 못 자서 힘들다고 화를 내고 있는 중이다. 잠에서 깨어 누워있다, 선잠을 자다, 꿈을 꾸다, 깨다를 반복했다며 밤새 꿈도청을 당했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형의 일상은 더욱 힘들어지기 시작한다. 일반적인 사람들 같으면 밤에 잠을 못 잤다고 해서 자신의 일상적인 생활을 포기하고 일과시간에 잠을 청하진 않을 것이다. 몸이 피곤하고 힘들어도 자신의 일상을 지키고 사회생활을 하고 나서야 취침시간에 꿀 같은 단잠에 들것이다.
형은 피곤함을 참지 못한다. 밤에 잠을 자지 못했다면 일과시간에라도 잠자는 시간을 채워야 안도한다. 사람이 평균 8시간은 자야 질병 없이 장수한다는 신념이 있고 그 신념을 지키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또 밤에 깊은 잠에 들지 못하고 뒤척이게 된다. 형은 이 현상을 꿈도청이라고 한다. 자신을 감시하는 인물들이 자신의 꿈을 도청하여 괴롭히고 있다고 믿는다. 이 믿음은 현실이 되어 환청에 시달리게 되고 이 문제로 약은 계속해서 늘어나게 된다.
형은 약의 개수가 늘어나는 것에 대해 불안해한다. 불안해지는 것은 형뿐만이 아니다. 형이 건강하게 생활하기를 바라는 내게도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일과시간에 형을 어떻게 해서라도 움직이게 해서 정상적인 일상을 찾게 해주고 싶은 마음은 내게도 차고 넘친다. 형과 함께 인천에 있는 병원진료를 받고 형을 태우고 동탄으로 향했다. 이사를 앞둔 빈집 수리를 맡은 것이 있어 형이 뭐라도 할 수 있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집에 혼자 있는다면 힘들다고 누워있을 테고 그렇게 되면 밤에 깊은 잠을 잘 수 없게 되어 꿈도청에 시달리게 될 테니 말이다.
형에게 동탄에 가서 간단한 일이라도 해보자고 했더니 싫다고 한다. 싫은 이유를 물으니 혼자 지하철 타고 오다 도청을 당하게 된다는 이유다. 이따 밤에 차로 태워다 주겠다고 하니 그제야 마지못해 응한다. 현장에 도착하여 형을 쉬게 했다. 한참 후 우리는 욕실의 지저분해진 실리콘을 제거하고 깔끔하게 실리콘을 도포하는 작업을 할 것이라고 설명을 했다. 형에게 세면대에 있는 실리콘을 벗겨보자고 하곤 나도 나머지 전체적인 부분의 작업을 시작했다. 작업을 오늘 중으로 마무리를 해야 했으나 형과 함께 오전에 병원에 다녀오다 보니 나의 손놀림이 바빠졌다. 오염된 실리콘을 벗겨내고 새롭게 실리콘을 도포하며 한참을 작업하다 보니 세면대를 붙들고 있던 형이 보이질 않는다.
형은 세면대 실리콘 하나 제대로 벗겨내지 못했다. 그리곤 어디로 간 것일까! 작업하던 욕실을 나와 형을 찾으니 거실의 베란다 문을 활짝 열곤 그 앞에 앉아 있었다. 형에게 뭐 하고 있냐고 물으니 형은 냄새가 심하게 나서 신선한 공기를 맡고 있다고 했다. 어떤 냄새가 심하게 나느냐고 물으니 실리콘에서 냄새가 심하게 나서 머리가 아프다고 한다. 실리콘에서 어떤 냄새가 나느냐고 물으니 시큼한 냄새가 나지 않느냐고 묻는다.
오래전 실리콘에선 시큼한 초산냄새가 심했다. 그런 냄새가 나지 않는 비초산 실리콘이 나온 지가 한참이 되었다. 형은 예전에 맡았던 실리콘냄새가 난다며 신선한 공기를 맡고 있는 중이다.
나는 형에게 냄새가 많이 나느냐고 물었다. 형은 그렇다고 한다. 형에게 작업한 것을 잠깐 한번 보자고 했다. 형은 마지못해 욕실로 왔고 나는 실리콘 작업을 한 것을 설명해 줬다. 형은 이렇게 깔끔하게 해주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서도 작업이 잘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실리콘 작업을 형에게 설명하다 아직도 시큼한 냄새가 나느냐고 물었다. 형은 그제야 잊었던 냄새에 대한 기억이 났는지 정지된 상태로 있다가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형은 이해가 느리고 기억력이 오래가지 못하는 편이다. 일반적으로 경계성지능장애라고 하기도 한다. 형이 뚜렷하게 기억하는 것들이 있는데 힘들고 안 좋았던 일들이 대부분이다. 시큼한 실리콘냄새가 몸에 해로울 거라는 생각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 비슷한 경우가 생기면 그럴 것이라 단정 짓는 경우들이 있다. 그런 기억은 잘 지워지지 않는 것 같다. 그런 기억들도 자신이 생각하는 방식대로 왜곡해서 기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걸 바로 잡겠다고 강요하면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형과 조화롭고 순조롭게 지내는 방법은 기다림이다. 그리고 눈높이에 맞는 설명이다. 그렇다고 다 통하는 것은 아니다. 형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단발성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일들을 꾸준히 반복할 수 있는 인내심을 키워나가야 한다.
저녁에 와이프와 함께 주변 맛집인 뼈다귀해장국집을 찾았다. 형은 뼈다귀해장국이 입맛에 맞는지 뼈다귀를 손으로 들고 뜯기 시작했다. 맛있냐고 물으니 "먹을만하다"라고 한다. '먹을만하다'는 대답은 형이 할 수 있는 '아주 맛있다'는 표현중 하나다. 모처럼 단란한 시간을 갖고 형을 인천에 데려다주었다. 며칠 후 형에게 지하철을 타고 근처로 와서 지난번에 맛있게 먹었던 뼈다귀해장국을 같이 먹자고 했다. 형은 뼈다귀해장국을 언제 먹었냐고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