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공업자 Jan 30. 2024

기술이냐 예술이냐

<집수리 마음수리>

일을 의뢰받으면 현장을 방문해서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확인하는 절차가 따른다. 견적을 내러 가는 것이다. 의뢰한 일에 대해 견적을 내고 만약 변수가 클 때는 추가 비용이 들어갈 수 있다고 언급한다. 만약에 발생할 분쟁을 미리 조치하고자 하는 의미가 있겠다. 추가비용은 의뢰인과 조율해서 합당하게 청구하면 될 것이다.   


얼마 전 작은 창고 지붕에 누수가 있다는 의뢰를 받았었다. 아스팔트슁글지붕이라며 빗물이 새지 않도록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우수관 연결 작업과 오래된 전등 리폼도 같이 의뢰받았었다. 의뢰인은 처음부터 잘 좀 해달라고 사정을 해온다. 저렴하게 해 달라는 부탁이다. 

4층건물 옥상에 위치한 보일러실 겸 창고는 건물 끝에 붙어있었다. 지붕방수공사를 위해 작업을 할 경우 추락위험이 있어 조심해야 한다. 

창고지붕은 크기가 작아 캐노피(차양)나 처마지붕자재로 많이 쓰이는  렉산(폴리카보네이트)으로 덮어 주기로 했다.

렉산은 튼튼하고 유연성이 좋으며 잘 깨지지 않는 특성이 있다. 주문한 자재를 받아 의뢰인의 집 4층으로 올라갔다. 슁글 지붕을 다시 확인해 보니 유독 가운데 부위가 심하게 손상되어 있었다. 손상된 부위를 뜯어내려 지붕 위에 올라갔더니 의외의 것을 발견했다. 다름 아니 빗물우수관의 끝자락이 창고 지붕 위에 위치해 있었다. 지난번에 방문했을 때는 보지 못했던 부분이 막상 작업을 하려고 보니 나타났다.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우수관 배출구

지붕슁글이 파손되고 누수가 생긴 원인은 빗물우수관에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었다. 비가 올 때마다 우수관을 통해 흘러나오는 빠른 물살을 슁글 지붕이 견디지 못하고 파손된 것으로 보였다.

빗물 누수를 막기 위해서는 렉산지붕자재를 우수관 아래로 넣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갑자기 예상하지 못한 일이 늘어나는 순간이다.  

이 상황을 의뢰인에게 설명하고 사진으로 찍어서 보여줬다. 의뢰인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이었지만 집구조를 환하게 알고 있는 상황에서 몰랐다는 것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옥상에 올라가면 빗물이 빠져나가는 우수관을 바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예상했던 견적의 작업시간보다 두 배는 더 해야 할 것 같았고 일의 난이도도 매우 높았다.

일이 어렵다는 것을 의뢰인에게 설명했더니 자신이 도와주겠다며 잘 좀 해달라고 부탁해 온다.

석연치 않았지만 파손된 슁글들을 뜯어내고 우수관 밑 부분을 끌과 망치로 두들겨 가며  공간을 만들었다. 렉산이 우수관 배출구 아래로 들어갈 틈을 만들기 위해서다. 그래야 우수관을 통해 흘러나온 빗물이 렉산 위를 타고 원활하게 흐를 수 있어 누수를 막을 수 있다.

지붕난간에 매달려 작업을 하다 놓치기라도 한다면 4층아래로...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경사진 지붕이라 한 손은 난간을 잡고 한 손으로 작업을 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렉산자재를 우수관 아래로 넣고 방수피스로 고정을 해 나갔다. 이 작업도 한 손으로 하다 보니 피스를 여러 개 놓치기도 했다. 놓친 피스못들은 4층 아래로 추락했다. 그 후 방수실리콘으로 틈새들을 모두 막아 나갔다.

이 견적에 이렇게 까지 해가며 작업을 해야 하나 싶었지만 시작한 일은 결을 맺어야 할 것 같았다. 

무사히 일을 마무리하고 나머지 일들도 끝내니 저녁 8시가 넘은 시간이 되었다. 시작은 오후 2시부터였는데 말이다. 3시간이면 끝날 것 같던 일이 배가 된  샘이다. 다행히 무탈하게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갔다.  

집을 나설 때 했던 '여보 다녀올게'라고 했던 말이 새삼 크게 다가왔다. 집을 나왔다 무탈하게 집에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이 느껴졌다.

아내에게는 그냥 일에 변수가 생겨서 늦어졌다고만 했다. 


돌아와서 통장을 확인해 보니 견적 당시의 금액이 입금되어 있었다. 얼마 안 되는 금액을 확인하면서 묘한 느낌이 들었다. 예초에 얼마 안 되는 금액이었지만 혹시나 어려운 작업이 추가된 만큼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았다. 

우수관 주변도 빗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꼼꼼하게 방수 처리 해줘야 함.

꼬질꼬질 꾀죄죄한 내 모습을 보고 아내가 한마디 했다.

'어디 가서 일하고 오라고 했지 예술하고 왔어요?'

뜨끔했다.

'기술을 해요 예술을 하지 말고!'

나는 알았다고 했다.

아내는 받은 만큼만 해주면 된다고 한다. 

아내말은 틀린 말이 없었다. 아내는 항상 옳았다. 


일을 하다 보면 예초의 보다 추가되고 추가되는 경우들이 있다. 일은 추가되는데 견적은 그대로 해달하고 요구하는 경우들이다. 마치 '장화 신은 고양이'의 애처롭고 간절한 눈망울로 부탁해 온다. 차라리 박박 우기는 것이 마음편안 할 때가 있다. 이번건도 비슷한 경우였다. 장화를 신으셨다. 게다가 건강도 좋지 않다고 하신다. 

일을 하다 너무 목이 타 시원한 물 한잔을 부탁했더니 시원한 오렌지 주스를 투명한 유리잔 끝까지 담아다 주신다. 

그래! 이거면 충분했다.

이전 13화 업그레이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