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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공업자 Jan 23. 2024

업그레이드

<집수리 마음수리>

파이거나 뜯기거나 손상되어 있는 벽면을 매끈하게 복원하기 위해서는 평탄작업을 하게 된다. 손쉽게 쓸 수 있는 재료는 흔히  빠데라고 하는 퍼티로 채워주면 된다. 퍼티로 벽면에 상처 난 부위를 메우고 고르게 하기 위해선 헤라로 퍼티를  퍼내어 상처 난 곳에 얹고 쓸어가며 평탄작업을 해준다. 헤라질로 평탄작업을 잘해준다고 해도 울퉁불퉁한 곳이 있기 마련이다. 이 부분은 퍼티가 잘 건조된 후 사포로 연마해 주면 된다. 사포질에 퍼티는 잘 갈려나가며 표면이 매끈하게 살아난다.

수리하기 전 벽상태

문제는 먼지가 심하게 날린다는 점이다. 표면이 고은만큼 먼지도 고와져 방진마스크를 꼭 착용해야 한다. 사포작업을 하다 보면 온몸은 먼지로 하얗게 뒤 덮이게 된다. 뭐 하나 쉽게 되는 것이 하나 없다. 완성된 벽은 칠판이 걸릴 수도 있고 그림이 걸릴 수도 있고 누군가 아늑한 소파를 놓고 휴식을 하거나 또 누군가는 기대어 휴식을 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퍼티로 상처난 면을 고르게 만들어 준다

상처 나기는 쉬워도 다시 복원하기 위해서는 몇 배의 정성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았다. 꼭 사람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몸과 마음과 정신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다시 회복하기엔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았다. 특히 보이지 않는 마음과 정신은 더 그렇다. 쉽게 회복되질 않는다. 

마무리가 된 상태

몇 배의 정성과 노력을 들여 벽면을 복원하듯 사람마음도 잘 메우고 잘 바르고 잘 다듬어 치유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을 닦고 그 위에 예쁘게 칠을 해서 원하는 마음을 만들어 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새롭게 업그레이드된 마음은 더 자유롭게 더 크게 쓰일 수 있게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퍼티 작업을 한 벽면에 페인트작업을 한창하고 있을 때쯤 한통의 전화가 왔다. 다급한 중년여성의 목소리는 A기사집수리가 A성을 가진 분이 맞느냐고 물어 온다. 그렇다고 했더니 자신의 남편도 흔치 않은 A성을 가졌다며 눈에 띄어 전화를 했다고 한다.

문 수리 전문가냐고 물어온다. 문은 많이 고쳐 봤지만 상황을 봐야 고칠 수 있을지 알 수 있겠다고 했다. 중년여성은 자신의 집을 세놓아야 하는데 베란다 문이 안 닫혀 계약서에 도장을 못 찍고 있다고 했다. 마침 칠하던 벽이 완성되어 갈 때쯤이라 바로 방문하겠다고 했다.


공인중개사의 안내에 따라 아파트 안으로 들어섰다. 안방 파우더룸을 통해 베란다로 나가는 터닝도어가 열려 있었다. 중개인은 문을 닫았다 놓았다를 반복했지만 문은 닫히질 않고 다시 열렸다. 이게 문제라고 했다. 고칠 수 있겠냐고 물어온다. 이 문 때문에 임차인이 부동산에 있는 계약서에 도장을 안 찍고 있다고 했다. 중개인은 얼른 새로운 문으로 갈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며 수리하러 왔다는 나를 반기지 않는 기색이다. 

요즘, 부동산 비수기인 추운 겨울이기도 했지만 더욱 경기가 안 좋다 보니 임대인도 임차인도 중개인도 기회를 놓치지 않고 거래가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한 듯했다. 

문이 안닫히고 있음

나는 큰돈을 들여 문을 통째로 갈면 좋겠지만 먼저 수리를 해보고 나서 결정해도 좋겠다고 했었다. 수리가 안 되면 비용을 안 받고 그냥 돌아가겠다고 했다. 중개인은 전 임차인이 여름에는 문이 닫히는데 겨울에만 안 닫힌다고 했단다. 

‘문은 여름에 열리고 겨울에 닫혀야 더 좋은 것이 아닌가! 문이 거꾸로 계절을 타다니! 참 신기했다(속마음이 속삭였다)’


중개인이 돌아가고 문을 살펴보았다. 문은 전체적으로 문손잡이 쪽으로 기울고 벌어져 문을 걸어주는 걸쇠가 문틀 스트라이커(걸쇠 홈)에 걸리질 않고 계속해서 열렸다. 

1월, 이 추운 날씨에 이 문은 계속해서 열려있었을까? 그전 임차인은 어떻게 고정해 놓았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베란다에는 결로로 곰팡이가 심하게 피어 있었다. 문 열림과 연관이 있을 것이란 추측을 해본다.


터닝도어는 무게가 상당했다. 문의 경첩들은 오랜 세월 이 문을 붙들고 있었기에 어찌 보면 처지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마음도 그렇지 않았을까? 문의 무게는 줄일 수 없지만 마음은 내려놓아야 할 것은 내려놓아야 버터 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첩부위를 조절하여 최대한 당길 수 있는 여유를 확보해야 한다. 서로 붙들고 있는 피스들이 망가지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해서 조절해 조화점을 찾아 주어야 한다. 여의치 않으면 무언가 단단한 물체를 덧대어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문은 수리하는 손끝의 세세한 감각이 중요하다. 한참의 씨름 끝에 문의 틀어진 부분이 바로 잡히고 문을 닫으니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닫혔다.

때마침 중개인이 왔고 문이 닫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었다. 다른 부분에도 문제가 있으면 연락을 하겠다며 명함을 달라고 한다.

수리 후 잘 닫혀 있는 문

임대인과 통화를 해서 수리된 부분을 안내했다. 임대인도 매우 기뻐한다. 무엇보다 급하게 요청한 일을 신속하게 조치해 준 것이 고맙다고 했다. 

적절한 순간 문이 잘 수리되어 계약이 성사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문을 잘 닫아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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