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공업자 Jan 09. 2024

소식이 왔을 때 응해야 하는 간절한 그것

<집수리 마음수리>

계속해서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었다. 연락을 한번 드려야지! 하면서도 시간을 못 맞춰 놓치기를 반복하다 2주가 다 되어간다. 오늘은 기어코 연락을 하리라 마음먹고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지난 크리스마스 연휴가 시작되기 전인 금요일 이른 저녁시간에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화장실 변기에서 물이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나온다는 문의였었다. 연세가 많이 있어 보이시는 목소리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가셨다. 늙은이가 화장실에 자주 가는 것이 중요해서 오늘 어떻게 안 되겠냐는 부탁을 하셨다.  


변기를 지저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생활에 매우 친숙하고 중요한 부분 중에 하나이다.  막히거나 고장 나서 사용을 할 수 없다거나 밖에서 급한 일을 닥쳤을 때 그 간절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절박함은 누구든 수도 없이 경험했고 앞으로도 경험할 것이라고 단연코 예언할 수 있겠다. 언제 어디서든 소식이 왔을 때 응해야 하는 간절한 그것이다.


변기는 참 다양하다. 우리가 흔히 쓰는 물탱크와 용변을 보는 본체가 나눠져 있는 것도 있고 하나로 붙어 있는 것도 있다. 이것을 투피스와 원피스라고 부른다. 또 물탱크가 없이 직수로 쓰는 것들도 있다. 외국에서 온 변기도 있고 국내산 변기도 있다. 안아 들어가는 부품들도 참 다양하다. 어느 것들은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도 있지만 어느 것들은 몇 날 며칠을 기다려야 부품을 받을 수 있는 것들도 있다. 일부는 외국에서 수입을 해야 하는 것들도 있다고 한다. 경험으로 보면 이쁘고 멋진 변기들이 이런 까다로운 경우들이 빈번했다. 인물값을 한다고나 할까!(속마음이 속삭였다)

어르신이 보내온 사진/원피스 양변기

어르신께 사진을 보내달라고 요청드렸다. 변기의 전체적인 모습과 변기 뚜껑을 열고 안에 어떤 부품들이 들어가는지 보여 달라고 했었다. 잠시 후 사진이 도착했다. 도착한 사진을 살펴보니 필밸브는 잘 보이는데 다른 쪽 플러시밸브 부분이 잘 보이지 않아서 전화를 드렸다. 잘 보이지 않는 부분을 찍어 달라고 요청하기 위해서다. 다시 사진이 도착했다. 이번에도 같은 부품을 연속해서 찍어 보내 주셨다. 그러기를 몇 번 반복한 결과 원하는 사진을 받았다. 이 물건은 외국에서 온 제품으로 부품 구하기가 힘들기로 소문난 그 변기였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주소지가 어디인지 여쭤보질 않았었다. 어르신은 공교롭게도 서울 송파라고 말씀하셨다. 경기도 화성에서 서울 송파까지는 거리가 한참 되었다. 그것도 연휴 전 금요일 퇴근시간대라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정체시간이었다. 어르신은 비용은 상관 겠다며 내가 와서 조치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그러나 그 시간엔 갈 수가 없을뿐더러 부품을 구할 매장들은 모두 문을 닫았을 시간이었다. 간다 한들 방법이 없음을 말씀드렸다. 송파나 가까이에 거주하는 분들이 조치해야 할 문제였다.

투피스와 직수형 양변기

서울에 거주하는 제일 먼저 떠오르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울에 거주함에도 자신도 거리가 멀어 도와줄 수 없다며 다른 분을 소개했다. 그 다른 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분 또한 이 시간엔 한참이 걸릴뿐더러 변기부품도 없다며 가기 힘들다고 해서 난감했다.     


순간 송파와 가까운 하남에 거주하는 지인이 생각났다. 전화를 걸어 송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상의했다. 마침 적임자가 있다고 했다.


적임자에게 전화를 걸어 어르신이 변기사용이 절실하다는 것을 설명하고 조치해 달라고 부탁했다. 적임자는 통화해 보겠다고 하여 어르신 연락처를 알려주고서야 늦은 저녁을 먹을 수가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어르신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왜 연락이 없냐는 것이다. 적임자가 전화를 하겠다고 했었는데... 다시 적임자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받는다. 적임자는 어르신께 전화를 드렸으나 받질 않으셨다고 한다. 전화 연결이 서로 어긋난 듯 보였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적임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우리는 어르신과의 통화 내용과 조치한 사항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아니나 다를까, 그 변기는 수입품으로 부품 구하기가 힘들어 전체를 교환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다음날 오전에 국내산 예쁜 제품으로 교체를 도와드리기로 했다고 한다. 어르신의 집에는 그 정도 제품은 들여야 어울리겠다는 이야기를 나눴었다. 연휴가 시작되기 전 문제가 해결되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르신은 내게 문자메시지로 주소를 알려달라고 하셨다. 늙은 할머니 이야기를 잘 들어줘 고맙다고 하시며 몇 번을 말씀하셨지만 나는 주소를 보내지 않았었다. 그래서였을까? 왠지 죄송한 마음도 있었고 그 후 변기는 잘 설치가 되어 잘 사용하고 계시는지 궁금하기도 했었다. 연락을 드려보려 했지만 자꾸만 망설여졌었다. 여러 일이 지나 변기교체 이외의 주변기억들이 잊힐 때쯤 연락을 드려보려 했었다. 오늘 문득 떠올라 문자메시지를 드렸던 것이다. 어르신은 덕분에 변기는 잘 교체되었다며 감사하다는 말씀을 문자메시지로 남기셨다.   


감사합니다^^


이전 10화 꽉 막힌 크리스마스이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