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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역류

<집수리 마음수리>

by 세공업자

요즘 강추위가 계속되어 한파경보가 발효 중이었으며 추워도 여간 추운 정도가 아니었다. 외부에 잠깐만 나와 있어도 손발이 꽁꽁 얼었고 귀는 찬바람에 금세 아려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의뢰인은 전화상으로 욕실에 환풍기에서 찬바람이 밀려 나온다고 한다. 언젠가 환풍기가 고장이 났었고 아는 지인을 통해 환풍기를 달았다고 한다. 환풍기는 기존 환풍기 설치 홈보다 작았다고 한다. 지인은 친절하게도 타공 홈에 덧대어 사이즈를 줄여 환풍기를 설치해 주었고 별 탈 없이 잘 사용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기온이 영하로 급강하하면서 생기기 시작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찬바람이 환풍기를 통해서 나온다고 했다.


의뢰인은 환풍기에 대해 박식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요즘 웬만해서는 인터넷에 올라온 정보가 많았고 제조사의 홈페이지에도 많은 정보들이 있어 조금만 공부한다면 판매금액과 출장설치비 등 어느 정도의 정보들은 알 수가 있다. 의뢰인도 당장 제품을 구입하여 설치할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알고 있는 지식을 손끝에서 구현시킬 수 있느냐는 것이다. 현장에 나가보면 변수라는 것이 작용한다. 내가 알고 있는 기존의 일반적인 상황이 아닌 현장특유의 변수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환풍기가 설치되어 있는 깔끔한 겉모습 위인 천장안쪽엔 어떤 변수가 작용할지 뜯어보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 사람의 겉모습과 속마음처럼 말이다.

역류방지 댐퍼가 없어 역류 바람에 화장지가 날린다.

전화상으로 의뢰인에게 제조사와 사이즈 등 자세한 점들을 질문했고 타고난 눈썰미와 감각으로 정확한 답변을 해주신다. 그 덕에 방문하여 제품을 확인하는 번거로움 없이 재고로 보유하고 있던 환풍기를 들고 바로 방문할 수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이 문제는 비용이다. 의뢰인은 인터넷에 올라온 제품가격과 설치비용 등을 파악하고 계셨고 매우 민감하셨다. 나는 설치비 이외에 특별한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한 별도 비용을 청구하지 않는다고 했다. 의뢰인도 흔쾌히 수락했고 환풍기와 싱크대 상부장 쇼바를 손봐주기로 하고 오후에 방문약속을 잡았다.


먼저 기존에 지인이 설치해 줬다는 욕실의 환풍기를 살펴보았다. 환풍기는 샤워실 바로 위쪽에 설치되어 있었다. 전원스위치를 켜면 펜이 회전하며 환풍이 되다가 전원을 끄면 펜이 다시 거꾸로 돌아 바람이 역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샤워실 분위기는 들어오는 찬바람에 썰렁했다. 이 환풍기는 중간에 역류되는 바람을 막아주는 댐퍼가 설치되어 있질 않았다. 다른 세대의 욕실에서 나오는 냄새들도 타고 들어왔을 것이다.

일반댐퍼와 전동댐퍼

요즘처럼 한파특보가 발령되어 있는 날씨에 이 환풍기 아래에서 샤워를 한다고 생각만 해도 오돌오돌 한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아파트 층수가 높을수록 역류되는 바람이 강해져 기본댐퍼나 전동댐퍼가 설치되어야 역류되는 바람과 냄새를 막을 수 있다고 의뢰인에게 설명드렸다.

의뢰인은 지금 달려있는 환풍기를 자신이 구입해 왔다고 한다. 비용에 민감한 것으로 보아하니 급한 김에 철물점에 가서 저렴한 제품으로 구입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자동차도 옵션이 추가되면 가격이 올라가듯 환풍기 가격이 저렴하면 옵션을 반드시 확인해 봐야 했었다.


바람이 역류되는 환풍기와 사이즈를 줄이고자 보강되어 있던 자재들을 철거했다. 설치할 환풍기를 그 자리에 달아보니 뚫린 홈이 작아서 추가로 홈을 커팅하여 사이즈를 늘려야 한다. 작업 시간이 늘어나고 추가공임이 생길 수 있는 특별한 경우다. 환풍기를 설치하고 천장 위 전원 콘센트를 찾아보았다. 환풍기의 1.5M 정도 되는 전원선이 짧아 꽂을 수 없게 천장 끝 쪽에 콘센트가 설치되어 있었다. 추가로 콘센트와 플러그, 전기선을 조합하여 전원선을 연장해야 했다. 작업시간은 늘어나고 자재뿐 아니라 공임도 추가될 수 있는 특별한 변수상황이다. 급히 차에 내려가 해당부품들을 찾아 올라와서 전원선을 연장했다. 환풍기가 마무리되고 전원을 켜니 정상적으로 작동되었고 찬바람이 역류되는 현상도 없어졌다.

댐퍼가 있는 환풍기를 설치하고 원활하게 배출되는지 화장지로 테스트하고 있음.

의뢰인은 얼마 전 인테리어 중 마루공사를 하다 하자가 생긴 부분을 보여주신다. 마루 중앙이 쏫아 오르며 하자가 생겨 뜯겨 있는 상황이었지만 해당업체에서 조치가 되고 있지 않는다고 한다. 나더러 할 수 있겠냐는 질문에 시공사와 잘 마무리하는 것이 좋겠다며 싱크대 상부장 쇼바를 먼저 살펴보자고 했다.

의뢰인은 인터넷상에 올라와 있는 싱크대 쇼바 종류와 가격을 상세히 알고 있었다. 내가 제시한 가격이 비싸다고 하여 쇼바를 의뢰인이 구입해 놓으면 공임만 청구하는 것으로 했으나 그것 또한 비싸다고 한다. 결론은 구입해서 설치하다 안 되면 연락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처음 견적인 환풍기 설치비용만 청구하여 그 댁을 나왔다. 특별한 변수에 대한 작업시간과 자재에 대한 추가비용은 청구하지 못했다. 도로는 이미 퇴근 차량들로 가득했다. 꽉 막힌 도로 한가운데서 묘하게 풀리지 않는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해박하게 알고 있는 지식과 다르게 인테리어 하자로 인한 뜯겨있는 마루문제와 환풍기, 싱크대 수리 등 문제를 원활하게 풀어나가지 못하는 상황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나마 환풍기는 제대로 해결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욕실 환풍기를 설치하다 열어놓은 천장 점검구를 안 닫고 온 것이 생각났다. 급하게 의뢰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의뢰인은 웃으며 자신이 닫았다며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고맙습니다.”라며 아들이 샤워를 하며 욕실에 찬바람이 안 들어와 따뜻하다며 벌써 좋아졌다고 기뻐하신다.


아무쪼록 서로가 원하는 적정선을 조율하여 해결되지 않는 부분들이 잘 마무리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기 위해선 서로 간의 신뢰가 필요하다. 인테리어는 업자에게 맡기고 의뢰인은 적당한 비용을 지불하면 될 것이다. 자신의 이익만 챙기려다 보면 뜯겨진 마루의 모습처럼 서로 상처만 남기 마련이다.


어느 상황이든 어느 현장이든 변수는 있기 마련이다. 변수에 슬기롭게 대처하는 것이 프로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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