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제가 화장실 전등을 갈다가 유리커버 나사가 빠가(나사산이 뭉개짐)가 나서 안 빠지는데 전등 전체를 led로 갈려고 합니다.” “그러세요. 그러면 제가 방문해서 어떤지 확인을 해볼까요?”
“네 그러셔도 됩니다. 그거 말고도 몇 개 더 있습니다.”
전화로 의뢰인은 자신이 원룸 여러 개를 임대하여 쓰고 있으며 방과 욕실에 있는 led등 여러 개를 교체할 예정이라고 한다. 방문견적을 의뢰했고 나는 현재 진행하고 있던 마지막 작업을 끝내는 시간이 저녁 8시 이후라고 했었다. 의뢰인은 그래도 좋다며 방문해 달라고 했다. 의뢰인의 건물은 시내 중심가에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었으며 주차난이 매우 심각한 상태였다. 어디든 주차할 틈이 없었고 식당영업 종료시간이 임박한 터라 식당주차장에 차를 세울 수 있었다. 의뢰인의 건물에 들어서니 복도엔 3개의 자동센서등 중 한 개만 들어와 어둡고 칙칙한 느낌이 들었다.
의뢰인은 나를 자신의 방으로 안내했다. 방등과 욕실등, 환풍기를 교체예정이라고 했고 견적이 얼마나 나올지 말해달라고 한다. 의뢰인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여러 사람들에게 일을 의뢰해 봤지만 그중에는 터무니없는 견적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신도 이 일을 ‘다 할 줄 안다’고 한다. 처음엔 본인이 직접 했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다 보니 사람을 불러 시킨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양심적인 사람이 있는 반면 말도 안 되는 금액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갑자기 내게 욕실 콘센트를 가리키며 교체수리에 얼마면 되겠냐고 물어온다. 나는 평소 견적을 이야기했고 여러 개가 같이 작업되면 좀 더 할인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나는 순간 궁금증이 생겼다. ‘그럼 양심적인 견적으로 일해 주던 사람들은 어찌하고 내게 연락을 했단 말인가?’(속마음이 속삭였다) 나는 이 질문을 의뢰인에게 했고 ‘잘 모르겠다.’는 대답을 들었다. 의뢰인은 자신에게 터무니없는 견적을 제시했던 업자들을 흥분하며 질책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의뢰인은 즉흥적으로 견적을 요구했다. 자신이 잘 아는 건물주분이 계시니 잘해주면 소개도 하겠다고 한다(대부분이 이런 식으로 흥정을 해옴). 그 자리에서 급하게 견적을 내어달라고 한다. 나는 여러 가지가 동시에 진행되는 작업이다 보니 평소보다 30%로, 어떤 것들은 40% 절감된 금액을 제시했고 의뢰인도 좋다고 한다. 이것은 서로 간의 흥정이 아니라 그동안 쌓인 의뢰인의 원한이라도 풀어 주려는 배려도 포함되었다고 해야 할까! 견적이 마무리되고 작업은 다음날 오후에 진행하기로 했다. 의뢰인은 갑자기 복도에 있는 등이 안 들어온다고 한다. 어떤 업자를 불렸는데 못하겠다고 뜯어놓고만 갔다며 흥분한다. 또 어떤 업자는 말 그대로 터무니없는 금액을 요구했다고 한다.
나는 조금 전 1층에서 올라오며 복도에 매달려 있는 3개의 등 중 복도 초입 1개의 등만 밝혀져 있던 어두 칙칙한 복도분위기가 떠올랐다. 의뢰인은 느닷없이 내게 그 작업을 해달라고 한다. 3개의 등이 모두 들어올 수 있도록 조치해 달라고 말이다. 나는 다음날 오후작업이라 시간이 촉박하여 다음에 날짜를 잡아하자고 했다. 대화를 마치고 건물을 나와 집으로 향하려는 순간 의뢰인이 또다시 복도의 등을 들어오게 작업해 달라고 한다. 이번엔 아예 금액을 제시한다. 그 금액은 내가 생각하기엔 말 그대로 터무니없는 금액이었다. 나는 그 금액엔 힘들다고 했고 의뢰인은 막무가내로 해달라고 한다. 앞서 작업하기로 한 일의 연속이니 그 금액에 해달하고 우기기 시작한다. 앞서 진행하기로 한 작업들이 볼모가 된 셈이다. 말문이 막혔다.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생각해 보니 추가로 등이 3개가 더 필요했다. 견적을 내어 보아도 앞서 결정한 작업보다도 더 큰 금액이 되었을 일을, 터무니없는 금액에 해달라니 어이가 없었다. 일단 작업을 준비해서 가고 자재비라도 추가해 달라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오전 일정을 마치고 오후에 아내를 데리고 말도 안 되는 작업장으로 향했다. 일을 한시라도 빨리 끝내기 위해서는 일을 함께 도와줄 일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작업을 시작하면서 허술하기 짝이 없는 곳곳을 열심히 보완하면서 일을 신속히 처리해 나갔다. 드디어 복도의 배선작업이 시작되었다. 1번 등의 살아있는 전기를 2번과 3번 등으로 이어 밝히는 과정이었다. 아내의 도움으로 신속하게 작업해 나가며 그전에 작업해 놓은 분들이 어떻게 일을 이렇게나 허술하게 처리해 놓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깜깜한 저녁시간이 되어서야 일이 마무리되었고 의뢰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추가로 들어간 자재비를 감안하여 결재금액을 요청하였다. 의뢰인은 그 금액마저도 이해가 안 된다며 깎는다. 순간, 왜 양심적인 업자들이 두 번 다시는 일을 맡질 않으려는 지에 대한 의뢰인의 대답인 ‘잘 모르겠다.’의 답을 찾은 듯 했다. 그것은 의뢰인 자신의 ‘다 내 탓이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전 작업자의 허술한 일처리 마감도 말이다.
나는 추가로 들어간 자재비와 인건비 금액을 더 이상 요구하지 않았다. 의뢰인이 떠 안겼던 금액을 있는 그대로 청구했다. 그리곤 그전 업자들처럼 다시는 거래하지 않는 것이 서로에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