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그럴 의도'를 증명하라
어떤 사람이 아예 작정을 하고 “사실은 내가 해외 유명 재벌가의 후계자라 곧 막대한 투자금을 받을 텐데, 그걸로 사업 확장도 해 주겠다” 같은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했거나, “00대학 교무처장에게 부탁해서 정직원으로 채용시켜 주겠다”는 터무니없는 약속으로 돈을 받아 챙겼다면, 그리고 그 사실을 스스로 인정한다면 사기죄(형법 제347조: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가 성립되는 데 별다른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내 돈을 가져간 상대방이 과연 “당시부터 돈을 갚을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라고 솔직히 인정할 가능성이 클까? 오히려 “돈을 갚을 의사는 있었지만, 예상과 달리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쪽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상대방이 “당신도 내가 당시 어떻게 살고 있었고, 빚이 얼마인지 대략 알고 있었으면서 위험을 감수하고 빌려준 것 아니냐”고 반박한다면, 혹은 “원금도 절반 가까이 갚았고, 이자도 1년 넘게 성실히 지급했다”고 주장한다면 이야기는 또 달라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사기죄의 주관적 구성 요건인 편취의 범의는 피고인이 자백하지 않는 이상, 범행 전후의 피고인의 재력·환경·범행 내용·거래의 이행과정 등 객관적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판결문이 있다. 즉, 고소를 하더라도 기망 행위가 분명했는지,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빌린 돈을 떼어먹을 마음이 있었는지를 입증하는 게 여간 쉽지 않다. 횡령죄 역시 유용의 의사를 증명하기가 만만치 않다. 예컨대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쓴 게 아니라, 업무상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는 식으로 변명하면 배임 혐의에서도 “경영상 판단일 뿐 사적 이익을 추구한 건 아니다”라고 우길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결국 속인 사실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는다거나 속은 정황이 명확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대부분의 사건이 불기소 처분으로 끝난다는 게 현실이다. 개인 간 금전 거래가 사기죄가 아니라 민사 문제로만 처리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법적으로 보면, ‘처음부터 돈을 갚을 의사가 없었다’는 사실을 엄격히 증명해야 사기죄가 성립하기 때문에, 단순히 돈을 떼였다고 해서 곧장 형사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사람들은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기억을 재구성하거나, 불리한 정보를 축소·왜곡하기도 한다. 이런 심리 메커니즘 때문에 “원래 갚으려고 했는데 상황이 안 돼서 어쩔 수 없었다”라는 주장은 제법 그럴듯하게 들릴 수 있다.
오늘날처럼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시대에는, 당장 사기다, 아니다를 법으로 가릴 뿐 아니라, 왜 이런 문제들이 자꾸만 일어나는지 근본적인 심리와 사회 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돈과 관련된 일은 인간관계 전반에 커다란 균열을 일으키곤 한다. 그래서 거래나 투자를 할 때는 서로의 상황과 의도를 좀 더 투명하게 드러내고, 신뢰가 단순히 감각적 ‘느낌’이 아닌 실질적인 자료와 기반 위에 세워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한편으로는 얼마나 확실히 빌려주고, 확실히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쉽게 빠지는 심리적 함정을 깨닫고 경계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다만, 법이 관여할 수 있는 범위는 사람의 숨은 의도와 심리를 완전히 드러내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결국, 개인의 책임감과 투명성, 그리고 신뢰를 쌓기 위한 상호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제아무리 법의 잣대를 들이댄다 해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기 어렵다.
사기냐 아니냐를 떠나, 우리가 진정 고민해야 할 지점은 거짓과 속임수의 위험을 알면서도 왜 쉽게 넘어가는가, 그리고 왜 다시금 같은 상황을 반복하는지 그 심리적 동인을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욕망과 두려움, 안일한 믿음과 절박함이 얽힌 인간 심리의 복잡한 양상이 법적 공방 뒤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지금보다 성숙해지려면, 결국 본능적 욕망과 불안이라는 심리적 함정을 의식적으로 경계하고, 서로의 약속에 조금 더 신중해져야 한다. 법은 어디까지나 사회의 최소한을 지키는 울타리에 불과하다. 그 너머의 신뢰와 관계는 결국 우리가 직접 만들어 가야 할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