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토요일로 귀환하면서 가장 오랫동안 찾은 사람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당연히 식판을 바퀴달린 다단 수레에 끼워 넣거나 목욕실에서 개인 소지가 금지된 빨래판을 이용해 누르께해진 러닝셔츠를 빨거나 신문을 읽다 말고 고함을 지르며 바닥에 드러눕거나 수맥이 흐르는 곳을 알려 준다며 노란옷을 입은 사람의 손바닥 위에 추를 올려놓는 보호사의 멱살을 잡고 그래 내가 태음인이라 비습하다, 고 한방 먹일 각오로 손바닥을 펼치고는 소음인이라고요? 예예, 그래서 제가 이렇게 공손하군요, 예예, 저는 평생 다림질만 하며 살고 싶었어요. 다림질은 소음인의 일이 아니라고요? 예예, 다음에 한 번만 더 봐 주세요, 라며 물러서거나 그대 그러니 사라지지 말아라, 그대 그러니 사라지지 말아라, 하고 간식비에서 제해서 산 룰드 볼란트에 시귀를 마구 적어넣거나, 안경 위에 도화지를 오려붙인 덮개를 달고 다니다가 볼썽사나운 구석을 마주치면 덮개를 내리거나, 역할극 시간에 하기 싫은데요? 라고 말해서 주치의의 친절과 호의를 위태로움으로 몰고 가거나……하는 사람들 중에 있을 줄로 알았다.
그런데 아버지는 숨바꼭질을 좋아했다. 내가 중앙 로비에 놓인 러닝머신에서 “이 사람 안 내려와요.”, “혼자만 계속 한다니까”라며 찰거머리처럼 성가신 말을 늘어놓는 사람들 틈에서 시속 5.8킬로의 속도로 달릴 듯이 걷고 있을 때, “그만 가라. 토요일로 왔으니 그만 가.”라며 귓가에 속삭이거나, 급식 메뉴에 가장 싫어하는 생선 튀김이 나와 먹기도 싫지만 먹지 않을 수도 없어서 타르타르 소스를 푹 찍은 생선 튀김을 아욱된장국에 푹 담가 그것이 샤스데이지처럼 풀어지는 역겨운 모습을 바라볼 때에 “너 그럴 거면 나가라, 토요일에서 나가라”라며 훈육을 하거나 아빌리파이, 올란자핀, 렉사프로 및 레메론, 아티반 및 슬리반, 라믹탈, 젤독스, 리튬 및 데파코트, 스틸녹스 및 쿼티아핀 등의 서방정과 캅셀 및 캡슐 들이 뒤죽박죽 섞인 한 다스의 알약을 손바닥에 고스란히 쏟아붓는 간호사의 귓바퀴에서 “혀뿌리에 숨겨라”라고 귀띔해 주어서 “아, 엘.”이라고 따라하라 말하는 간호사의 말에 따라 “아, 엘”이라고 하였어도 발각되지 않도록 원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혀뿌리에 숨긴 것은 잠시 후 고스란히 삼켜졌기에 아 엘 아 엘하고 눈초리를 빛내는 이들 앞에서 더는 숨길 것이 없는 떳떳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여러모로 유용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 생전에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는, 아버지의 이름 뒤에 숨어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정말로 장례식 전, 병실에서 본 아버지의 모습, 그것이 마지막이었으며 이제는 그 모습마저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계속 말한다. 아버지의 발 없는 말을 타고 나는 시간 여행을 한다.
“너, 토요일을 왜 파란색으로 칠하는지 알아?”
그 말을 들을 때 나는 아주 어렸다. 얼마나 어렸느냐면 한 다스의 나이를 이제 막 먹고 있었다. 그런데도 여덟 달이 지나면 초경이 시작될 것이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아버지는 내게 질문을 던졌고, 그 겨울에 아버지가 내게 던진 질문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토요일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대답할 것을 요구받지는 않았다. 아버지도 내가 대답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질문이 떨어지면, 나는 뒤따라 올 아버지의 답변을 지겹게 기다리곤 했다.
“우울한 사람이 많이 살기 때문이야.”
그렇다고 했다. 하기는 아버지만 해도 우울하고 의기소침한 늙은이에 속했다.
나는 요구받지도 허락받지도 않은 의견을 말했다.
“하지만 푸른색은 희망을 말하기도 해요.”
학교를 다니고 있었으므로 푸름에 대해서라면 나도 아는 것이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별로 혼내지 않았다.
“그러니까 우울한 거지. 바라는 게 없었으면 우울할 일도 없었겠지.”
“멍 같은 거군요.”
“그래, 멍! 멍! 멍!”
아버지가 짖었다. 나는 잠깐 가졌던 아버지에 대한 희망이 좌절되는 것을 실감했다. 그 낙차만큼 아버지는 푸르러졌다.
푸른 아버지를 내가 찾은 것은 잡초가 웃자란 텃밭에서였다.
내가 그렇게 피가 난 밭에서 피땀 흘려 피를 뽑아야 했던 것은, 토요일에서는 누구나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토요일은 부지런한 세계이기도 했던 것이다. 일을 하는 동안에는 나는 아버지와 시시한 말을 타고 시간 여행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연극도 하고 청소도 했다. 산책도 하고 배드민턴을 치기도 했다. 손톱과 발톱을 깎기도 하고 불량하게 분리수거된 품목들을 새로 분리해 내는 일을 했다. 어떤 것은 일이 아닌 것만 같다. 하지만 그 일로 생계를 유지하는 일이 토요일 너머에서는 얼마든지 일어난다는 것을 안다. 내가 가장 몰두하는 일은 분리수거다. 요새는 순수한 종이가 잘 없다. 포장지의 유광 코팅은 기본이고, 무광 코팅된 종이가 그냥 종이인 양 의뭉스레 어깨를 움츠리고 있다. 그러면 나는 꼭 그런 것들만 어깨를 툭툭 다독여가며, 비닐을 벗겨냈다. 야만스러운 일을 할 때야 나는 비로소 일다운 일을 했다는 만족감이 들었다. 정서가 지성의 진보를 따라잡지 못한 예는 많다. 괴테나 나는 회반죽 차를 좋아한다.
아버지를 만나게 해 준 일은 작업치료라 불리는 것이었다. 그냥 흙이 든 화분에 준비된 식물을 꽂는 일이었지만, 그렇게 불렀다.
“곧 일요일로 갈 사람들은 운동화를 신고 이리로 오세요.”
운동화는 노란색 옷을 입은 사람들 중에 몇몇에게만 허락된 것이었다.
“그런데 토요일을 나가면 어디로 가는 거지?”
“일요일로 가는 거지 뭐.”
“아, 그렇다면 다행이네. 일요일에는 잠만 자도 되잖아.”
“토요일도 그렇지.”
우리는 그런 바보 같은 대화를 하며 바깥으로 나갔다. 능숙한 작업치료자로 분류된 사람들은, 이제 로비가 아닌 텃밭에서 운동화를 신고 서 있었다.
“이번엔 무얼 심을까?”
“사과나무를 심겠지.”
“사과나무는 너무 오래 걸리잖아.”
“우리가 따 먹지 못하게 하려고.”
우리는 사과나무를 언제 줄까, 관리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뜻밖에도 그들이 우리에게 지시한 내용은 텃밭에 난 잡초를 모두 뽑으라는 거였다.
“무엇이 잡초이고 무엇이 작물인지 헷갈리시면 언제든 물어보세요. 명심하세요. 잡초만 뽑으셔야 합니다.”
하지만 그럴 수 있을 턱이 없었다. 우리는 마구 뽑았다. 달래, 냉이, 씀바귀……는 없는 계절이었다. 우리는 코스모스를 꺾었다. 나는 코스모스가 안 되어서 옆 덤불의 국화도 꺾어 코스모스 앞에 뉘어 놓았다.
“미친 사람처럼 굴지 마.”
운동화를 신고 노란 옷을 입은 토요일의 사람이 내게 말했다.
“나는 나다운 일을 했을 뿐이야.”
하지만 나는 국화마저 꺾은 것이 마음에 쓰였다. 아버지의 음성이 들린 것은 그때였다.
“저런, 누구 하나 또 죽어나가겠구나.”
목소리를 듣고서야 푸르른 작업 점퍼를 입고 풀만 뽑고 있던 사람이 아버지라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께 다가가 국화를 내밀었다.
“미친 사람처럼 왜 저러는지.”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마침내 찾은 아버지에게 조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아버지를 찾았고 자동적으로 내가 술래였다.
“왔구나.”
아버지는 마치 목요일이 온 것처럼 나를 맞이했다.
“하지만 슬퍼할 일이 생겼으니 이제 어찌할꼬?”
아버지는 돌아보지 않고 계속해서 풀을 뽑았다.
그날밤 나는 꿈을 꾸었는데, 내가 수요일의 방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꿈이었다. 아버지는 수요일의 문지기였다. 모두들 동전을 내밀고 수건 하나를 받아 수요일의 방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내게는 동전이 없었다. 아버지는 물끄러미 내 빈손을 바라보더니 국화 한 송이를 내려놓았다.
나는 꿈에서 깨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