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앞에서 염소는 쓰러졌다. 수레는 전복되었고 수레꾼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나는 그의 입을 벌리고 그의 입속에서 금니를 빼냈다. 고양이가 가르랑거렸다. 토요일에는 회색 건물이 서 있었다. 나는 버려진 수레를 끌고 건물 쪽으로 갔다. 고개를 들어 건물에 적힌 글자를 읽었다. 성 토요일 메모리얼 센터. 토요일의 랜드마크인 것 같았다. 출입문 앞에서 제복을 입은 남자가 졸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내가 가까이 다가갔지만 남자는 세상모르고 단잠을 이어갔다. 남자의 희고 두꺼운 얼굴에는 갈색 점이 드문드문 박혀 있었다. 귀밑에 난 수염에서 흰빛이 반짝였다. 뻣뻣한 머리칼에도 희끗한 흰머리가 섞여 있었다. 검은 머리가 더 많았다.
으흠.
나는 헛기침을 했다. 허공을 향해 발을 내딛는 듯 이미 물러선 꿈을 향해 팔을 허우적대며 남자는 깨어났다.
“스읍, 오셨구나?”
남자는 입가에 흐른 침을 닦으며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누렇게 뜬 그의 흰자위에서 약간의 원망을 읽을 수 있었다. 제복을 입은 남자는 허리춤에서 꺼낸 열쇠로 철문을 열었다. 사방이 조용했다. 내가 끄는 수레 소리가 덜그덕, 덜그덕덕, 8분의 6박자로 딸꾹거렸다. 흰 벽면에 햇빛이 비쳐 들어오는 모퉁이를 향해 남자가 방향을 꺾었다. 문이 하나 있었다. 남자는 문을 열고 문 안에 있는 사람을 향해 무어라 말을 했다. 잠시 후 남자가 나를 보고 들어가라고 했다. 나는 수레를 어찌해야 할지 몰라 쭈뼛거렸다. 그는 자기가 맡아 줄 테니 선생님을 만나 보라고 했다. 잡지꽂이에서 영어로 된 신문을 꺼낸 남자가 문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나는 남자가 신문을 펼치는 것을 보며 안으로 들어갔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토요일이요.”
“오늘이 며칠인가요?”
“토요일이요.”
“오늘이 몇 년인지 아세요?”
“토요일입니다.”
“이상한 감각 같은 건 없으세요? 팔다리에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다든가.”
“기어 다녀요.”
“그게 뭐죠?”
“남자친구가 남긴 오점이 밤낮으로 내 몸을 기어 다녀요. 죽일 수가 없는 벌레예요.”
“소리 같은 건 안 들리세요?”
아버지의 음성이 들렸지만 나는 말하지 않았다. 아버지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리가 안 들린다면, 눈에 이상한 게 보이지는 않습니까?”
이 방에서 나를 보고 말하는 그가 가장 이상하다면 이상했다.
“됐어요. 나가 보시고, 보호사님을 불러 주세요.”
나를 이 방으로 데려다 준 제복 입은 남자를 말하는 듯했다. 내가 방문을 열고 나가자 보호사의 얼굴은 영어로 뒤덮여있었다.
“보호사님.”
그는 다시 잠에서 깼다. 코리언 헤럴드가 얼굴에서 빗겨 흘렀다. 이번에 그는 희미하게 욕을 내뱉는 것 같았다.
“방에서 들어오라시는데요.”
보호사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수레를 잡으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수레는 돌아가고 없었다. 아마 토요일의 길목으로 갔을 것이다. 이번에 나는 조금 슬펐다.
보호사라는 사람이 나와 내게 고갯짓을 하며 따라오라고 했다.
“노란색이라네.”
나는 그를 따라갔다.
“노란색이면 괜찮아.”
그는 돌아보며 말했다. 입꼬리를 힘주어 올려 웃는 모습이, 내게 ‘노란색은 괜찮다’라는 명제를 심어주려는 노력으로 읽혔다. 혹은, 아까 욕했지만 괜찮잖아, 노란색이잖아, 라는 것도 같았다.
“노란색이면 괜찮지. 주황색보다는 훨씬 낫잖아.”
그는 이번에는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나는 노란색이 될 것이었다.
“노란색이었다가 주황색으로 올라가는 사람들도 많지만. 뭐 그렇게 되라는 법은 없잖아.”
그렇다면 나는 주황색도 될 것이었다.
보호사는 엘리베이터를 두 개 타고 달력의 위층으로 올라갔다.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돌아갔다. 아마도 2월은 아닌 성싶었다. 이렇게 복잡한 경로라면 서른한 개의 구획으로 나뉜 10월이나 8월은 되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아우구스티누스 황제를 지지하지 않았다. 그는 변절자이다. 그는 차별주의자이다. 그는 8월을 10월로 밀어낸 자이다. 나는 보호사를 따라 시간에 순응하고 때로는 거역하는 이 경로가 10월이기를 바랐다. 바란다는 것은 의미가 있었다. 바라는 것만으로 그렇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주황색이기를 바랐다.
이윽고 보호사가 철문 앞에 다다랐다. 허리춤에서 열쇠를 쩔렁거리며 꺼냈다. 둥근 열쇠 꾸러미는 귀고리로 써도 퍽 맵시날 것 같았다. 또 묻지도 않았는데,
“2층이에요. 3층은 주황색.”
그랬다. 도대체 주황색은 뭐란 말인가. 뭐 얼마나 대단한 색이란 말인가. 그 대단한 곳을 두고 나는 겨우 노란색이 되어 이 철문을 뛰어넘는가? 나는 겨우 노란색이나 되려고 여기에 왔는가?
문이 열리자 구역 안을 가득 채운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노란 옷을 입고 있었다.
선을 넘어서자 간호사가 나에게 이리로 오라고 했다. 나는 그를 따라 처치실이라는 글자가 적힌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노란색이니까. 노란색은 앞서 가는 사람의 말에 순종하는 법이다.
“짹짹.”
“뭐라고요?”
“참새.”
“...옷 벗으세요.”
노란색에게 옷 벗으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수상한 사람이다. 나는 옷을 벗었다. 나는 수상한 사람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내가 옷을 벗는데 그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다. 그리고 팬티와 브래지어 속에 손을 넣어 더듬어 보기도 했다. 노란색에게 이러는 건 정말로 위험한 행동 같았다. 그래서 나는 노란색이 이 정도로 타락했다면 주황은 과연 어떨 것인가를 생각하며 질에서 분비물을 조금 흘려보냈다. 다행히 그는 아래쪽까지 더듬어 보지는 않았다.
옷을 다 갈아입자 그는 내가 머물 칸을 안내해 주었다.
“음력으로는 14일이요. 나는 인크리징문이 좋거든요. 하지만 풀문이 가까우면 치안이 걱정이에요. 인간이 늑대가 되고, 여자는 마녀가 되니까요. 하지만 나는 음력 14일쯤의 방이 좋겠어요. 그곳으로 안내해 주실 거죠?”
“여기가 노아님 병실이에요.”
나를 노아라고 부르는 사람은 구세주가 아니다. 나는 병실문을 닫으며 마음의 문을 쾅 닫았다. 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2114. 2층의 2월의 첫째 주 음력 14일의 방이라는 의미였다. 나는 내가 영주하게 된 토요일의 세계, 2114에 머물게 된 것이 자랑스러웠다. 방 안에는 뚱뚱한 사람과 앞니가 빠진 사람이 있었다. 누워서 자는 사람과 무릎을 구부리고 바닥을 닦는 사람이 있었다. 돼지, 소, 토끼와 뱀. 나는 그런 동물들을 상상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너는 뱀이구나, 너는 돼지새끼같아. 아니야 쥐새끼.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사실을 듣는 것을 인간은 제일의 상처로 느끼기 때문이었다.
세 밤이 지나자 토요일의 푸른빛은 먹빛을 띠었다. 변사자 같은 화요일을 서성거릴 때에 미우가 왔다. 미우는 면회실이라는 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였네. 쏘얼드6이 인도한 곳이 여기였어.”
미우가 닭튀김을 내게로 밀어주며 말했다. 미우는 과자가 잔뜩 든 커다란 비닐봉투도 주었다. 면회실 바깥에서 닭튀김을 얻어먹으려는 노란색들이 기웃거렸다. 창밖이 노란색으로 어른거렸다.
“아빠가 안 왔어.”
미우가 나를 주려고 가져 온 닭튀김을, 그것도 닭다리를 집으며 질문을 받은 것처럼 대답했다.
“하지만 곧 오실 거야. 그러면 우리는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갈 거야.”
기껏해야 카레라이스를 먹을 것이다.
“나를 불쌍하다고 여겨서 말을 아낄 것 없어. 나는 잡초 같은 사람이거든.”
잡초 같은 사람이 등장하는 유튜브 영상을 얼마 전에 본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미우가 내미는 닭의 날개를 받아 들고 한입 뜯어 먹어 보았다. 그리고 미우에게 당부했다.
“너 다음에 올 때는 초코파이 같은 걸 사 와라.”
미우는 고갯짓을 했다. 비닐봉투 안에는 과연 초코파이 상자가 들어 있었다.
“여기에는 기껏해야 초코파이가 들었을 것 아니야.”
“초코파이 상자니까 초코파이가 들어 있지.”
“초코파이 상자의 옆을 갈라서 담배를 차곡차곡 넣어서 보내. 그 전에 초코파이는 모조리 빼 내야겠지. 그런 다음 옆을 본드로 붙이면 감쪽같을 거야.”
“여기서 담배를 피울 수 있어?”
“피울 수 있는 요일도 있다고 들었어.”
“언니는 무슨 요일에 피우는데?”
“나는 피울 줄 몰라. 하지만 담배는 필요할 것 같아서.”
담배를 얻으러 다니는 쥐, 소, 호랑이, 염소 들이 많았다. 말하자면 담배는 금괴 같은 뇌물이었다.
“필요한 거라면 마련해 두는 게 좋겠지. 원하는 거라면 안 가져다 주려고 했어. 알았어. 다음번엔 담배를 넣어서 가져다줄게.”
그렇게 미우는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