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결 May 10. 2021

17.

피부가 희고 두꺼운 사내가 나를 3층으로 데려갔다.

“주황색도 괜찮아요. 보라색보다는 훨씬 낫잖아.”

문이 열렸고 주황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가득한 로비가 나타났다. 어항 속의 금붕어처럼 주황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뭐라고 입을 뻐끔거리며 쉴 새 없이 움직거렸다. 

나를 3층으로 데려다 준 사람은 내 운동화 끈을 풀어서 손가락에 둘둘 말았다.

“적응하면 괜찮아요. 이건 압수.”

“배가 고파요.”

“20분만 있으면 점심시간이에요.”

“기다릴 수 있으면 배가 고프지 않지요.”

“기다리면 밥을 먹을 수 있고 그러면 배가 고프지 않아요.”

“조금 뒤에 밥을 먹을 거라면 이를 닦을래요.”

나는 2층에 있던 짐을 올려달라고 부탁했다. 짐은 25분이 지나서야 도착했다. 나는 양치 컵을 들고 이를 닦으러 갔다. 칫솔을 가져가지 않았다는 걸 알았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화장실에 홀로 들어가 양치컵을 깨트렸다. 싸구려 플라스틱은 종유석 모양의 균열을 내며 와장창 깨어졌다. 나는 종유석 하나를 집어 들고 배 위에 그었다. 처음부터 잘 되지는 않았다. 

그림을 그려 보기로 했다. 순환하는 물고기를 그렸다. 순환하는 물고기란 침몰할 줄 모르는 물고기를 말한다. 침몰할 줄 모르는 물고기는 8모양으로 누워 수면 위에 눕는다. 물고기가 누운 것은 더 이상 그가 살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8모양으로 누운 물고기가 떠오르자 난파한 배에서는 붉은 피가 나왔다.

나를 발견한 주황색 옷을 입은 사람이 누군가에게 이르러 갔다.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왔고 잠시 후 간호사와 보호사가 도착했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밖에 나가고 싶지 않으세요?”

“배 속에 뭐가 들었는지 궁금해서요.”

내 배는 갈라지지 않았고 노란 옷은 주황색이 되었다.

이전 17화 1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