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것들
밤이 좋았다.
어두운 하늘에 밝게 빛나는 것들을 볼 수 있어서
하지만 그날의 밤은
어둡고 별 볼일 없어진 내 인생 같았다.
그 단호한 전화를 받은 그날 밤은 생각보다 잠이 오지 않았다.
휴가를 오랜만에 길게 나와 설레서 잠이 오지 않는 느낌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불면이었다.
어김없이 매일 보던 네이버 스포츠와 카카오톡 친구들의 프사들을 다 훑어도 전혀 졸리지 않았다.
그리고 마음 한구석에서 찾아오는 나도 모를 은근한 불안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사실 이때부터 나는 내가 겪어보지 못한
불안함 속 무언가가 있다고 확신했다.
치질 수술 전 모든 부작용들을 찾아
내가 불안해하는 모든 경우의 수를 확인했다.
그리고 항상 그 어떤 고난에도 별거 아닌 것처럼 넘어갔던
나의 인생들을 떠올리니 별일 아니겠지 싶은 안도감에
병원 가기 위해 켜놓은 알람 시간이 울리기 전 그나마 깊은 잠에 들었다.
신은 그렇게 가혹하지 않을 것 같았다.
인생에서 기대하는 순간들이 꽂아진
삶의 멀티탭을 한순간에 꺼버릴 수 있을 만큼
신은 가혹할까 싶었다.
새벽과 아침 사이 푸른빛 도는 하늘이 보일 때
맞춰 놓은 알람이 울렸다.
나는 벌떡 일어나 휴가 나가기 전의 모습처럼 어느 때보다 깨끗하게 씻었다.
난 사실 씻으면 불안감이 해소될 줄 알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샤워하는 모습을 본 엄마는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냐고 하면서 군인정신이 아직 남아 있다는
장난을 쳤지만 난 그 어떤 장난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엄마에게 따스한 말 한마디 못한 채
병원으로 향했다.
우리 엄마는 나에 대한 걱정이 많은 편이고
항상 걱정하는 만큼 내게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었다.
엄마에게 말하면 항상 별일 아닌 일도 큰일처럼 느껴졌다.
초등학교 시절 학원으로 가는 길
횡단보도에서 칠성사이다 배송차량이
사이드미러로 내 어깨를 치고 간 적이 있었다.
난 생각보다 괜찮았고 엄마에게 내가 이렇게 튼튼하다고
자랑하듯이 이 얘기를 했다가 엄마가 급히 나를 태우고
동네병원 응급실로 가 엑스레이를 찍고 나의 몸상태를 살폈다.
난 내가 튼튼하고 괜찮다 하면 모든 게 끝날 줄 알았지만
모든 부모님 마음이 그렇듯이 자식들을 항상 걱정인 것 같았다.
그래서 26살 먹고 이제 곧 전역을 앞둔 난
더 이상 엄마에게 그 어떤 걱정도 드리고 싶지 않았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져도 나 스스로 해결하며
주저 않지 않겠다고 다짐한 적이 많았다.
사실 이런 나와의 다짐들로 힘든 군생활도 버틸 수 있었다.
그 조그마한 경험에서 다져진 용기들이 모여
치질 수술받아봤자 별일 있겠냐 생각하며
지난밤에 걱정했던 모든 생각들을 잊은 채
호기롭게 병원을 들어 간 다음
난 그나마 가지고 갔던 용기들은 잃어버린 채
생각지도 못한 감정들을 가지고 병원을 나왔다.
단지 기억나는 순간은 집에 돌아오는 버스에서 혼자 마스크를 쓴 채 울기 시작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