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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 Him Jul 13. 2021

8. 두려움을 맞이할 때

사라진 것들

내가 백혈병으로 입원한 첫날

병원 1층 로비의  친구들이 모여주었다.

낯선 공간의 친숙한 사람들이 있어주니

적막한 로비가 그렇게 낯설지는 않았다.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절망과 희망이 섞여

슬픔과 웃음이 오묘하게 공존했던 그 순간 

무거운 현실을 잊으며 우린 웃고 떠들었다

그때처럼




중학교에 입학한 이후부터

가족들보다 더 시간을 많이 보내게 된

친구들이 있다.


부모님이 책임감이라는

갑옷을 입고

현실이라는 전쟁터에서 싸움을 진행하던 중


그것을 알리 없는 

속 편한 철부지 막내는

하나 둘 내 친구들을 우리 집으로 초대해

놀기 시작하여 

우리들은 친구가 되었다. 


젊음의 가장 큰 무기인

열정을 

오로지 PC방에 쏟아붓던

중학교 시절부터 꾸준히 만나


남자들의 의리 테스트 같은 

군 시절까지


서로가 서로에게 추억이 되어준

시간들이 많았다.


그 친구들과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꼽아보자면

각자 다 군대에서 전역하고

각자의 삶을 찾기 직전

용돈 혹은 알바로 번 2만 원씩 가지고 나와

나름 번화가였던 지역에서 

술을 마시며 추억에 젖어가던 

그 시절이 최고로 재밌고 행복했었다.


누구에게나 있는 친구라는 관계지만

내게 친구라는 관계는

나의 단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그 단점까지 안고 가주는 친구들이

참 특별했었다.


각자의 캐릭터가 

개성이 넘쳐

시트콤처럼 주연 없이도 

만나면 항상 웃음이 끊이질 않았던 

만남들이었다.


내가 느낀 것처럼

내 친구들도 행복했던 순간을 

뽑아보라면 같은 순간들을 

뽑을 거라 확신한다.


또한

가장 슬펐던 순간도 

같은 순간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내게 백혈병이 찾아온 날


병원에서의 가족들은 

갑자기 환자가 된 나를 누구보다 빨리 받아들여

부랴부랴 모든 입원 준비와 환자로서의 삶을 

준비해주었다.

심지어 백혈병으로 인한 신체의 변화가 일어나기도 전에 

나를 극심한 환자로 생각하여 당황스러웠던 적도 있었지만 

가족들이 먼저 내 병을 받아들이니

나 스스로 내 병을 받아들이는 시간이 길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가장 말하기 싫었던 가족에게 말하고 나니

내 주변에게 말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으며

나 스스로 짊어졌던 짐을 내려놓고

얼른 위로받고 싶었다.


 사실 내 친구들에게 어떻게 전달했는지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전화로 했었는지

카톡으로 전달했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당장 달려왔던 

친구들의 얼굴은 

내 머릿속 또렷하게 남았다.


믿기지 않지만 믿어야 하는 상황


지금 생각해봤을 때 그때 그 순간을

온전히 받아들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갑자기 믿기지 않는 현실에

슬퍼지다가 괜찮다며 웃어주고 

두려워하는 나를 보며 위로해주었다.


괜찮다며 말은 건네지만 그 누구도 확신은 가질 수 없었고

내가 느끼는 두려움을 조금씩 가져가 주며

나의 눈물을 거두어주었다.

아직도 그때가 고마우면서 미안하다.

내가 그때 느꼈던 생각이지만 

그날은 내 미리 보는 장례식 같았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내게 따뜻한 위로였다.


병원에 입원 처리는 되었지만 병실이 없어

환자복도 입지 않고  

병원 1층 로비에서 친구들과 자리를 잡았다. 


그날은 대한민국 축구경기가 있었으며

환자복도 입지 않고 멀쩡하게 걸어 다니니 

자연스레 이따 로비에서 축구를 보자며

우리들만의 방식으로 그 순간의 재미를 찾았었다.


비록 난 그날 축구를 보지 못한 채 

들어가야 했지만

친구들은 끝까지 남아 

내 자리를 지켜주었다.


그 이후에도 

내가 무균실에 들어가던 날 

친구들은 다 같이 모여

함께 울어주고

함께 웃어주었다.


빡빡머리에 환자복을 입은 나를 보니

오히려 첫 번째 병문안보다

더욱 슬퍼하여 웃음보다는 슬픔이 가득했지만 

친구들이 나를 위해 울어줄 때마다 

너무 고마웠다.


간절히 살고 싶어 졌다.

 

두려움이 나약함이 될 때 

신께 의지하게 되지만

신을 믿지 않았던 나에게

의지할 수 있던 게 그리 많지는 않았다.


그런 내가 불쌍했는지


버틸 수 있게 해 달라는 

무신론자의 기도를 

그날은 들어주셨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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