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것들
무거운 현실을 잊으며 우린 웃고 떠들었다
그때처럼
중학교에 입학한 이후부터
가족들보다 더 시간을 많이 보내게 된
친구들이 있다.
부모님이 책임감이라는
갑옷을 입고
현실이라는 전쟁터에서 싸움을 진행하던 중
그것을 알리 없는
속 편한 철부지 막내는
하나 둘 내 친구들을 우리 집으로 초대해
놀기 시작하여
우리들은 친구가 되었다.
젊음의 가장 큰 무기인
열정을
오로지 PC방에 쏟아붓던
중학교 시절부터 꾸준히 만나
남자들의 의리 테스트 같은
군 시절까지
서로가 서로에게 추억이 되어준
시간들이 많았다.
그 친구들과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꼽아보자면
각자 다 군대에서 전역하고
각자의 삶을 찾기 직전
용돈 혹은 알바로 번 2만 원씩 가지고 나와
나름 번화가였던 지역에서
술을 마시며 추억에 젖어가던
그 시절이 최고로 재밌고 행복했었다.
누구에게나 있는 친구라는 관계지만
내게 친구라는 관계는
나의 단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그 단점까지 안고 가주는 친구들이
참 특별했었다.
각자의 캐릭터가
개성이 넘쳐
시트콤처럼 주연 없이도
만나면 항상 웃음이 끊이질 않았던
만남들이었다.
내가 느낀 것처럼
내 친구들도 행복했던 순간을
뽑아보라면 같은 순간들을
뽑을 거라 확신한다.
또한
가장 슬펐던 순간도
같은 순간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내게 백혈병이 찾아온 날
병원에서의 가족들은
갑자기 환자가 된 나를 누구보다 빨리 받아들여
부랴부랴 모든 입원 준비와 환자로서의 삶을
준비해주었다.
심지어 백혈병으로 인한 신체의 변화가 일어나기도 전에
나를 극심한 환자로 생각하여 당황스러웠던 적도 있었지만
가족들이 먼저 내 병을 받아들이니
나 스스로 내 병을 받아들이는 시간이 길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가장 말하기 싫었던 가족에게 말하고 나니
내 주변에게 말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으며
나 스스로 짊어졌던 짐을 내려놓고
얼른 위로받고 싶었다.
사실 내 친구들에게 어떻게 전달했는지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전화로 했었는지
카톡으로 전달했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당장 달려왔던
친구들의 얼굴은
내 머릿속 또렷하게 남았다.
믿기지 않지만 믿어야 하는 상황
지금 생각해봤을 때 그때 그 순간을
그저 갑자기 믿기지 않는 현실에
내가 느끼는 두려움을 조금씩 가져가 주며
나의 눈물을 거두어주었다.
아직도 그때가 고마우면서 미안하다.
내가 그때 느꼈던 생각이지만
그날은 내 미리 보는 장례식 같았다.
그날은 대한민국 축구경기가 있었으며
환자복도 입지 않고 멀쩡하게 걸어 다니니
자연스레 이따 로비에서 축구를 보자며
우리들만의 방식으로 그 순간의 재미를 찾았었다.
비록 난 그날 축구를 보지 못한 채
들어가야 했지만
친구들은 끝까지 남아
내 자리를 지켜주었다.
그 이후에도
내가 무균실에 들어가던 날
친구들은 다 같이 모여
함께 울어주고
함께 웃어주었다.
빡빡머리에 환자복을 입은 나를 보니
오히려 첫 번째 병문안보다
더욱 슬퍼하여 웃음보다는 슬픔이 가득했지만
친구들이 나를 위해 울어줄 때마다
너무 고마웠다.
간절히 살고 싶어 졌다.
신을 믿지 않았던 나에게
의지할 수 있던 게 그리 많지는 않았다.
그런 내가 불쌍했는지
버틸 수 있게 해 달라는
무신론자의 기도를
그날은 들어주셨던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