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집 II

호흡.

by HUN

빨래를 한지 얼마 안 된 하얀색 커튼이 다우니 향을 머금고 열어놓은 창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 너풀거리듯 내 코 끝에 스쳤다.


「흐음...」


이제 서른 언저리,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뤘고 운 좋게 낡은 주택을 하나 샀다.

1년여 시간 동안, 짬짬이 내 손으로 리모델링을 했고 1년 하고도 39일 만에 이 낡은 집을 전부 보수할 수 있었다.


밝은 갈색의 나무 책상과, 여기로 이사 오기 전 이케아에서 큰 맘먹고 사온 검은색 스툴, 얼마 전 열풍처럼 불어온 스탠딩 데스크 덕분에 나도 앉아서 일하는 것보다 일어서서 업무를 보는 것이 습관 되었고 가끔 앉아서 작업을 할 때는 종종 그 스툴에 앉아 일을 하였다.


직업은 소설가, 굵직한 작품은 없다. 발간된 책도 2권이 전부, 생각해 놓은 아이디어는 많지만, 그것을 정리할 때는 아직 이르다 생각했다, 순수한 연애소설을 쓰는 것도 좋지만, 공감이 가는 글을 적는 것은 더 좋다고 생각한 나는 차기작으로 일상생활에 대한 고찰론을 작성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 과는 다른 방향으로 난항을 겪었고 3개월 만에 슬럼프가 왔다.


'뭔가가 필요할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한 나는 스툴에서 일어나 AV에 리모컨을 누르고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얀빛이 감도는 베이지색 벽지와 고급진 타일로 마감된 바닥, 나는 그것을 "건축적 산책로"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 산책로를 가로지르며 도착한 곳은 부엌.


[지이잉-]


그와 동시에 거실 소파 옆 테이블 위에 있던, 대략 4년 전에 골동품 가게에서 사 온 진공관 앰프가 "테리 콜리어의 - Ordinary joe"의 피아노 전주를 잔잔하게 흘려주고 있었다. 고가의 가격으로 사 온 녀석의 음량은 이질적이지만 매력적인 음색을 내었다.


가만 생각하면 내 안목은 정확하다.


피아노 전주가 끝나고 테리 콜리어의 목소리가 나올 때쯤에 소파 너머로 부엌에 놓인 냉장고를 툭- 열어 어제 사온 조각 케이크를 꺼내 접시에 옮겨 담는다.


새하얀 접시 위에 올라간 하얀 생크림 케이크, 그 누구의 생일도 아니었지만, 어제저녁 장을 보고 오다가 근처 빵집에 있던 그 녀석을 데리고 왔다. 하얀 생크림 위에 올라간 빨간 체리.


어제도 그랬지만, 그 강렬한 색체에 참을 수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체리의 꼭지 부분을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가만 보면 나도 참을성이라고는 1g도 없는 것 같군.'


「합...」


케이크가 든 그릇을 들고 다시 산책로를 걸어 내 자리로 돌아와 노트북을 열었다. 포크를 들고 끄트머리 부분부터 베어 한입 크게 담으며 띄워진 화면을 봤다.


소설, 작은 글들이 모여 하나의 문장이 되고, 그 문장들이 문맥들이 이뤄져 하나의 장면이 되는 것, 물론 매 순간 마감에 쫓겨 원고를 겨우 탈고하는 수준이었지만, 그 문맥들이 거대한 장면을 이룰 때 나는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게 좋아서 글을 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지금은 '슬럼프'라는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내가 이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는 것 인가 조차 생각이 나지 않았다.


보통 소설을 쓴다는 것은 등장인물 개개인에게 숨을 불어넣는 것과 다름없다. 만약 그것을 간과하고 쓴다면, 나는 대중에게 하찮은 글 나부랭이를 쓰는 삼류 작가로 인식될 것이다.

그것이 죽기보다도 싫은 나는 거의 편집증에 가까운 교정 때문에 슬럼프가 오지 않았나 생각했다.


두 번째 포크를 입에 가져갔다.


「합..」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나는 이런저런 궤변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다가 책상 위에 놓인 달력을 봤다. 오늘 쓸 분량의 4분의 1을 거의 넘겼다. 이 정도 속도라면 대충 잡아도 기한만 늘어날 뿐 진전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짤랑-]


나는 케이크를 떠먹던 포크를 책상에 내려놓고 바람이라도 쐬고 올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괜찮은 생각일까,

다우니 향이 가득 불어오는 창밖을 바라보니 나가고 싶기도 한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나가면 안 될 것 같다.

그런 생각을 집어넣고 노트북을 열어 자판을 두드렸다.


[... 나의 발은 힘을 잃어갔지만, 나는 속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한 발자국 딛기조차도 어렵고 힘겹긴 했지만 멈출 수 없었다. 네가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아서…….


이윽고, 우리가 헤어진 그 장소로 다가갔을 때,

거기 그곳엔
fin.]


커서가 깜빡거린다. 동시에 내 눈도 깜빡거린다. 두 사람은 분명 좋게 만났을까? 생각을 해본다. 과연 여기서 끝내는 게 좋은 것인가? 둘이 만났다면 아마 역경을 이겨내고 다시 사귀었을 것이다. 둘이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 그사람은 쓸쓸히 자신의 뒤를 돌아봤겠지. 열린 결말로 끝내는 것이, 다음 글을 썼을 때의 표현력이 극대화될 것 같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열중해서 글을 쓰는 도중, 어느새 창밖에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내 이마를 탁 때렸다.


하루 원고 할당량을 다 끝내고 오버페이스를 하는 중이었다. 길고 긴 슬럼프를 끝으로 오늘은 꽤 많은 분량을 썼다. 하루 원고의 4배. 이 정도 속도가 계속 와준다면 나는 쾌속으로 마감을 끝내고 잠시 바람이라도 쐴 겸 여행지에 들어가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기분 좋게 노트북을 닫았다. 눈이 감긴다.


'조금 자야겠어.'


눈을 스르르 감아본다.


나는 글을 쓴다. 다음엔, 특별한 사람에 대한 사랑을 그려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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