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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현 May 22. 2020

아침 동경

In Praise of the Morning

이 글을 읽는 분들께 두 가지를 먼저 알리고 싶다. 첫째, 아래 이어질 글의 내용은 자기 계발 성격이 강하다. 평소 느긋하고 게으른 내 모습을 잘 알고 있는, 특히 아내의 경우 거부 반응을 일으킬 수 있으니 주의할 것. 둘째, 나는 아침형 인간이 아니다. 며칠 전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수면 의학 전문가인 마이클 브로이스 박사의 수면 유형 테스트를 진행했는데, 37점을 기록했다. 37점이면 ‘곰형’으로 분류된다. 내가 곰이라니. 어쨌든 곰형의 가장 능률적인 시간대는 오전 10시부터 정오까지라고 한다. 덧붙이자면 사자형(19~32점)이 진정한 아침형 인간이다. 곰이라도 돼서 그나마 다행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건 너무 힘들다. 심지어 해뜨기 직전의 새벽 공기가 가장 춥다. 이쯤 되면 속 편하게 고백해도 되겠다. 나는 아침형 인간이 아니고, 일찍 일어나는 새를 논할 자격도 없다. 그런데 일찍 일어나는 새가 되고 싶어 한다. 늘 일찍 일어나려 하지만 실패한다. 욕망과 현실의 차이 때문에 가끔은 스스로도 인생이 곤란하다고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의 중요한 변화는 모두 아침에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아침을 성실히 보내던 때가 있었다. 가장 먼 기억을 더듬어보니 서울 광화문 근처의 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양복을 입고 어설프게 앉아 있던 모습이 떠오른다. 2010년대 초반, 정유화학 공장을 설계하는 회사에 다닐 때다. 공짜로 밥을 주고 좋은 이야기도 들려준다길래 직장 동료와 함께 신청했는데 동료가 늦잠을 자는 바람에 나 혼자 갔다. 외국 CEO의 오전 7시 조찬 강연으로 기억한다. 그 시각에 넥타이를 매거나 투피스 차림의 사람들로 가득 찬 그랜드볼룸에 함께 앉아있는 건 생경한 경험이었다. ‘다들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을 떠는 건 아니겠지?’ 그때 호텔에서 준 따끈하고 바삭한 크로와상과 시원한 오렌지 주스 맛이 가끔 생각난다. 그날 받은 자극으로 한동안 30분에서 1시간씩 일찍 출근해, 휴게실에서 신문을 읽곤 했다. (당시 포스팅) 바깥세상이 굴러가는 소식 정도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침 나는 적성에 맞지 않는 업무로 퇴사를 고민하고 있었고, 석유화학 경기가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걸 핑계 삼아 회사를 나와 모터사이클 여행을 계획했다.


모터사이클로 여행하는 동안 아침의 소중함을 몸으로 느꼈다. 이유는 단순했다. 일찍 출발해야 자동차로 꽉 막힌 도로를 피할 수 있었고, 목표 거리만큼 이동하려면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이는 게 안전했다. 특히 러시아처럼 땅이 어마어마하게 커서 도시 간 거리가 먼 곳은 밤이 더 일찍 찾아왔다. 모든 고속도로에 조명을 일일이 설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노르웨이처럼 위도가 높은 지역도 백야(白夜)를 제외하고 해가 짧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때 쓴 일기를 살펴보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생산적이고 건강하다. 주로 오전 7시 전후로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고 공원을 산책하거나 달렸다. 때때로 오믈렛이나 시리얼로 아침 식사를 해결했다. 수영이나 독서를 하거나 정비소에 들른 때도 있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면서 바이크로 여행한다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다. 아침을 잘 보내면 반복되는 하루를 온전히 내 힘으로 시작한다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


새로운 일터로 복귀하며 만난 직업인 중에도 아침을 잘 활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철인 3종 경기에 흠뻑 빠진 지인은 한동안 새벽 운동을 권했다. “아침 6시면 이른 시간 같죠? 의외로 일찍부터 운동하는 사람이 많아요. 특히 40~50대에 본인 사업체를 운영하는 분들은 건강 관리도 하고, 맑은 정신으로 집중할 겸 아침을 잘게 쪼개서 활용하더군요.” 테니스 코치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평일 레슨은 오전 6시부터 7시 사이가 가장 예약 잡기 어렵다고. 이런 사자형 인간들. 앞서 밝혔듯이 난 곰형 인간이다. 새벽 운동이라니, 새벽 기상도 힘들다.


요즘은 매거진 <B> 편집부에서 일하며, 직업을 주제로 하는 단행본 시리즈 ‘잡스(JOBS)’를 만들고 있다. 각자의 영역에서 성과를 거둔 직업인을 만날 때마다 공통적으로 묻는 질문이 있다. “평소 하루를 어떻게 보내나요?” 물론 각자 상황에 따라 그날의 일정과 잠에 들고 깨는 시간 모두 다르다. 한편 비슷한 점도 있다. 매일이 똑같이 반복된다는 점. 그리고 루틴을 잘 유지하기 위해 다들 노력한다는 점. 취재를 진행하는 동안 어쩌면 여기에 직업적 성공의 비결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루 중 어느 때를 내 시간으로 가질 것인가는 선택의 문제다. 밤에 일하고 낮에 쉬는 사람도 많다. 꼭 직업적 성공을 바라지 않더라도, 나는 여전히 아침을 동경한다. 만물이 고요한 때, 조용히 삶의 변화를 준비하며 아침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던 경험을 해봤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실패할 걸 알면서도 도전하고 싶다. 내 인생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려면 방법은 하나다. 아침을 내 편으로 만들 것.


2020년 3월 31일 <Achim> 매거진에 보낸 글입니다. <Achim>은 '아침'을 바탕으로 매호 다른 주제를 다룹니다. 윤진 발행인(@clairejinyoun)이 이번에 '일(Work)'을 주제로 한 에세이를 의뢰했을 때, 분량이 적어 부담 없이 쓰겠다고 했는데 나중에 결과물을 받아 들고 나서야 이게 귀한 지면임을 알았습니다. 타블로이드 판형으로 한 장의 종이로 모두 펼칠 수 있는 구조인데, 뒷면에는 에세이 하나만 실리더군요. '시원한 오렌지 주스 맛'이 생각날 정도로 상큼한 사진과 함께 실린 실물은 여기에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참, 그는 소문한 시리얼 애호가이기도 합니다. <Achim>을 만들고 아침마다 시리얼을 먹는 두 자매(윤샘, 윤진)의 인터뷰는 여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제목은 테크 분야의 독보적인 애널리스트, 베네딕트 에반스가 2016년에 쓴 '실패에 대한 찬가'에서 따왔습니다.


글 | 손현(@thsgus)


Achim Vol.13 Work


윤진 발행인과의 메시지 / small talk with the person familiar with the situation (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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