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ars in Review 2017-2019
2020년 1월 31일, 고수리 작가의 강연을 들었다. 그는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사람을 위해 누구나 한 번쯤 써볼 법한 글감 네 개를 소개했다. 유년의 기억, 사무친 순간, 꿈의 기록 그리고 살아있는 말(박준 시인의 산문 참고)이다. 그중 사무친 순간은 주로 아픔, 상처, 고통, 슬픔, 우울 등 어둡고 부정적인 기억을 수반한다고 덧붙였다. 고수리는 강연 중에 이렇게 말했다. “직면하기 어렵겠지만, (사무친 순간에 관해) 한 번쯤은 써보시길 권해요. 기왕이면 공적인 글쓰기를 통해서요.”
내게도 그런 소재가 있다. 스스로에게 솔직해지자면, 그 소재로 글쓰기를 여러 번 시도했지만 상황상 쓸 수 없었다. 어떻게 풀어야 할지도 막막했다. 그럼에도 이 글을 써야 하는 이유는 명확했다. 당시 경험을 털어놓아야 다음 글쓰기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걸 계속 피하다 보니 나의 모든 말과 글이 그 기억 주변을 맴돌거나 반복하고 있었다. 2017년부터 현재까지 느끼고 생각해온 바를 적고자 한다. 평소의 글보다는 담백하지 못함을 미리 밝힌다.
2018년 5월 12일, 나는 양수현과 결혼했다. 지난 3년을 돌이켜보니 나에게 일어난 대부분의 변화 역시 결혼이 원인이었다. 결혼하면서 처음으로 부모에게서 독립했고, 결혼하면서 처음으로 인생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배웠다. “항상 먼저 사과하렴”, “(아내와 다퉈봤자) 이미 전쟁에서 졌으니 전투는 의미 없어. 전투에서 이기려고 발버둥 치지 마”. 부부의 세계로 먼저 건너간 용감한 친구들은 원만한 공존을 위한 팁을 전했다. 성인 두 사람이 갑자기 한 지붕 아래 함께 살아야 하는데, 마찰이 없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 우리 역시 다양한 문제로 티격태격했다.
본 결혼식에 앞서 운경고택에서 ‘청첩’ 행사를 준비할 때는 좌탁 위에 서예용 붓을 몇 개 놓느냐는 문제로 다투기도 했다. 나는 그날 방문할 손님 숫자 중 서예를 동시에 할 법한 인원을 고려해 두 개면 충분하다고 했고, 수현은 네 개를 고집했다. 행사가 당장 내일인데, 준비한 붓이 두 개뿐이라 수현 말대로 하려면 화방에서 두 개를 더 사 와야 했다. 아마도 내가 가야겠지. 나는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나는 건축을, 수현은 미술을 전공했다. 건축과 미술이 추구하는 미감(美感)은 다르다. 건축은 모든 선택에서 논리와 체계를 찾고 때때로 숫자 계산을 요구한다. (학부 때는 건물의 유동 인구를 파악하여 화장실에 몇 대의 변기를 놓는 것이 최적인지 배우기도 했다.) 정해진 예산 내에 튼튼하면서 기능적인 건물을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다음 순위다.
“난 두 명씩 마주 앉아 네 명이 붓글씨를 하는 그림을 상상했어.” 수현의 그림에 공식은 없다. 대신 나름의 원칙이 있었다. 첫째, 미술에서 가성비는 중요하지 않다. 논리보다 미학적인 판단이 앞선다. 둘째, ‘데꼬보꼬(でこぼこ, 凸凹)’가 있어야 한다. 채움과 비움, 모자람과 넘침이 좋은 비례감으로 있어야 한다. 물론 비례감은 수현이 판단한다.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고 나니 어느 순간부터 놀라울 정도로 다툼이 줄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현명하게 문제를 해결해가며 팀워크를 맞춰 나갔다. 참, 그날 행사는 다행히 붓 두 개로 잘 마쳤다. 전날 다투고 화해하느라 붓을 사러 갈 시간을 놓치기도 했고.
‘결혼하기 곤란한 시대’라는 말이 무색하게 함께 살면서 기쁜 순간이 많았다. 어쩌다 보니 수십 번의 집들이를 했고, 수현은 결혼 1주년을 맞아 그간의 살림살이를 정리할 겸 친구와 동네 사람을 초대하는 ‘중고 부부 장터’를 제안했다. 또 행사를 열겠다고? 잠시 고민했지만, 호텔 레스토랑에서 밥 한 끼 먹으며 기념하는 것보다는 여러 사람과 웃음을 나누는 게 더 우리답다고 느껴서 동의했다.
나는 투덜거림이 잦지만, 일단 하기로 정했으면 최선을 다하는 편이다. 우리 둘은 집안 구석구석을 쇼룸으로 바꾸느라 행사 전날 새벽 3시가 넘어서야 잘 수 있었다. 막상 당일에는 시간이 어찌 흘렀는지 모르겠다. 대부분의 물건을 1000원, 2000원 단위로 싸게 팔았는데, 그날 매출을 정산해보니 100만 원이 조금 안 되었다. 우리는 성공적인 마무리를 자축하며 곧장 뻗었다. 곧 결혼 2주년이 다가온다. 수현도 그때 힘들었는지 올해에는 아마도 근사한 레스토랑으로 갈 듯싶다.
신혼집 스타일링을 미술 전공자에게 전적으로 맡긴 덕분에 집 분위기는 아늑하고 화사해졌다. 다양한 미디어와 인터뷰를 했고, 우리가 전셋집에서 벌인 1년 동안의 활동을 발표하는 기회도 있었다. 어쩌면 신혼부부의 소꿉장난처럼 보일 법한 활동인데, 다른 이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까? 인터뷰를 정리한 이현아 에디터의 표현처럼 ‘엄연히 둘 만의 공간이지만 타인에게도 열려 있고, 다양한 이야기가 오가는 집’이 되기를 바랐다. 인터뷰 속에는 갓 결혼한 부부의 보편적 고민도 있었다. 우리는 지금 살고 싶은 집에서 살고 있는 걸까? 우리가 살 곳은 어디에 있을까? 아이는 꼭 낳아야 할까? 그럼 두 사람의 커리어는?
이현아 에디터 첫 독립을 한 두 사람이 꾸린 첫 공간이잖아요. 두 분에게 이 집은 어떤 의미인지, 함께 산 지 반년이 지난 지금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궁금해요.
현 동화책 <두 사람>을 우연히 읽었어요. 마지막 페이지에 이런 글이 있더라고요. “두 사람이 함께 사는 것은 함께여서 더 어렵고 함께여서 더 쉽습니다.” 이 집은 두 사람이 처음으로 함께 산 공간이라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물론 저희 소유의 집이 아니기 때문에 언젠가 이곳을 떠나야겠죠. 그리고 그때는 두 사람이 아니라 세 번째 사람이 생길 수도 있고요. 이제 막 함께 산 지 반년이 지난 수현에게는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적어도 아직은 함께여서 많은 부분이 더 쉽다고 느끼거든요.
- <디렉토리> Issue No.2, ‘둘은 조금 더 쉬운가요?’ 중
<디렉토리>와 인터뷰한 날로부터 이틀 뒤, 그러니까 2018년 11월 27일 화요일 오전. 수현의 임신 사실을 알았다. 임신 테스트 키트에 선명하게 나타난 두 줄을 보며 수현은 감격해 울었다. 우리는 아직 이름도 없는 생명체를 (인터뷰에서 세 번째 사람을 암시한 것처럼) ‘사람’이라 부르며 매일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이대로 산부인과를 다니다 보면 남들처럼 아기를 낳고 자연히 부모가 되는 줄 알았다.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임신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산부인과를 찾았다. (...) 선생님은 씩 웃으면서 “임신이네요”라고 말했다. (...) 초반에는 유산 가능성도 조금 높지만, 열흘만 지나면 안정권에 들어간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임신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다. 커피는 마셔도 되는지, 날 것은 먹어도 되는지, 먹다 만 엽산은 계속 먹어야 하는지, 몇 달 정도 지나야 배가 나오는지. 심지어 예정일을 계산하는 법도 예상과 달랐다. 공부할 게 많아졌다. 병원에서 출력해준 아기집 사진을 들고 병원을 나서는데 걸음이 조심스러워졌다. 코트로 배를 여미고, 현은 나를 감싸 안았다. 현은 회사로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데, 헤어지는 순간 눈이 마주쳤고 울컥했다. 얼마 전까지 우리가 연애하고 결혼한 것도 신기했는데 이제는 엄마 아빠라니. 인연이라는 게 신기한 일 투성이다.
- 2018년 11월 28일 수요일, 수현의 일기 중
슬픔은 준비할 새도 없이 일상을 덮었다. 양가 부모님과 직장 동료에게 임신 소식을 조심스레 알리며 축하 인사를 받은 지 겨우 보름쯤 되었을까. 2018년 12월 14일 금요일 오후 5시 55분, 사무실에서 수현의 전화를 받았다. “오빠, 나 배가 계속 아파. 피도 좀 나오고.” 그 전화를 기점으로 ‘사람’이 우리 곁을 떠나는데 걸린 시간은 단 하루였다. 하루 동안 기억나는 장면이 많아 그때를 떠올리면 여전히 괴롭다. 하물며 이걸 온몸으로 겪은 수현은 어땠는지 감히 상상할 수 없다.
“아직 아기는 무사해요. 심장도 뛰고 있고요.” 의사가 일단 우리를 안심시켰다. 심장 소리도 들려줬다. 아, 다행이네. 안심한 것도 잠시, 의사는 진찰을 마치고 무거운 이야기를 꺼냈다. 어제저녁보다 심장 박동수가 거의 절반가량(138 bpm → 71 bpm) 줄었다고 했다. 안 좋은 경우로 갈 가능성이 높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미였다. 하혈할 때 구체적으로 어떻게 될지도 알려줬다.
예상하지 못한 소식에 모두 말문이 막혔고, 수현과 어머님은 다시 눈물을 흘렸다. 의사는 본인에게 자녀가 둘 있는데 그전에 유산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며 우리를 위로하려 했지만, 딱히 위안이 되지는 않았다. 적어도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긴 했다. 자신의 사례를 들어, 지금의 시련을 잘 극복하고 결국에는 출산까지 잘할 수 있다는 것.
(...) 슬프고, 안타까운 감정은 어쩔 수 없지만, 이 상황을 어떻게든 빨리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집안 공기가 계속 무겁지만 며칠간은 이걸 견뎌야 한다. 그리고 잘 회복해야 할 것 같다. 반찬거리까지 장을 봐주신 어머님과 아버님을 보내고 둘만 남은 집에서 마지막으로 여기까지 글을 정리한다.
- 2018년 12월 15일 토요일, 나의 일기 중
무거운 공기를 견디기 위해 필요한 건 긍정적 마음가짐이나 누군가의 위로가 아니었다. 나는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고 싶었다. “정자와 난자가 수정이 되어도 끝까지 건강히 자랄 수 있다고 판단하지 않으면 스스로 소멸해버려요.” 의사는 이게 자연의 섭리라고 설명하며 임신 초기에 자연 유산할 확률은 15~20%라고 덧붙였다. 자연이 이렇게 냉정하고 무서울 수 있다는 걸 이때 처음 깨달았다.
‘사람’을 떠나보낸 토요일 저녁, 수현을 재우고 홀로 거실에 앉아 ‘자연 유산’, ‘계류 유산’ 등의 단어를 검색했다. 비슷한 경험을 겪은 사람들의 사연이 눈에 들어왔다. 그 사연을 차근차근 읽으며 그날 밤 소리 죽여 눈물을 훔쳤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 기록한 슬픔을 바라보며 처음으로 위안을 받았다. 가장 도움이 된 문장은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유산이 되어도 그 유산에 대해 엄마의 잘못은 없습니다. 미안해하며 몸과 마음이 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몸이 먼저 회복했지만, 마음은 더디게 여물었다. 계절이 두 번 지나고 나서야 우리는 웃음을 찾을 수 있었다. 그때 경험은 내게 몇 가지 교훈을 주었다.
눈물을 참지 말자. ‘슬픔’이라는 감정을 나는 그동안 얼마나 외면해왔을까? 변비에 걸린 것처럼 울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답답한 감정이 몸에 쌓이는 기분이 들었다. 이는 최근 1년 사이 할아버지와 큰아버지의 부고를 접한 뒤에도 마찬가지다. 만약 슬픔이 상대적인 감정이라면, 오열하는 사람 앞에서 나는 감정을 숨기게 되었다. 나라도 평정심을 유지해서 상대를 위로해줘야겠다는 생각에 정작 내 슬픔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 흘릴 뿐이었다.
절망 속에서 믿고 의지할 데는 가족뿐이다. 직접적인 아픔은 처가 식구들과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됐다. 직장을 다니고 있는 장모는 거의 매일같이 손수 끓인 미역국을 가져다주셨다. 묵묵히 딸을 보살피는 어머니의 강인한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수현이 수술실에 있는 동안, 장인어른과 대기실에서 함께 기다리고 있던 순간도 기억한다. 엄해 보이는 인상과 달리 속정 깊은 장인어른은 그날따라 말 한마디 없이 자리를 지켰다.
영적으로 의지할 곳도 필요하다. 2017년 9월 퓨리서치센터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종교 성향은 ‘영성을 믿지만 종교적이진 않음(spiritual but not religious)’이라고 한다. 이 비율은 27%로 미국 성인의 네 명 중 한 명 꼴에 해당한다. 돌이켜보면 우리도 그렇다. 수현과 나는 가톨릭 신앙을 가지고 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성당에 거의 나가지 않았다. 2018년 겨울은 달랐다. 우리는 자기 전마다 손에 잡히는 크기의, 뭉툭하지만 단단한 나무 십자가를 손에 쥐며 주문처럼 기도문을 읊었다. 특정 종교에 대한 직접적인 기대보다는, 그 행위 자체가 주는 효용이 있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영성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일상을 지속하는 일은 중요하다. 부부 관계는 가끔 이인삼각 달리기 같다. 서로 한쪽 발이 묶여 있기 때문에 한 명이 넘어지면 다른 한 명도 같이 넘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상황이 오래 가면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둘 다 무너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일상을 더욱 챙겼다. 수현이 집중적으로 하혈하는 동안 피로 얼룩진 속옷을 하루에도 몇 번씩 손으로 빨았다. 식물을 대하는 관점도 달라졌다. 힘든 겨울을 버티고 새순을 드러내는 식물을 한동안 바라보며 기뻤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
사무친 기억을 글로 쓰자. 비슷한 경험을 겪은 이들의 고백이 아니었으면 나도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들의 사연을 읽으며 두 가지 생각을 했다. ‘우리만 이런 비극을 겪는 건 아니구나’, ‘나처럼 이유를 찾고자 하는 사람을 위해 언젠가 나도 글로 정리해야겠다’. 기록은 우리 부부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글쓰기가 가진 힘을 다시 느꼈다.
마지막으로 의료 시스템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 유감스럽게도 일련의 과정을 겪는 동안 의료 시스템에 대한 불신은 커졌다. 수현이 처음 통증을 호소한 날은 금요일 오후였다. 원래 다니던 서대문역 근처 산부인과에 연락했더니 의사가 기다리겠다며 일단 오라고 했다. 하필 차가 많이 밀렸다. 병원 앞까지 거의 다 온 환자에게 의사는 본인의 세미나 약속 때문에 더는 못 기다리겠다며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나는 여전히 그의 사정을 이해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그 후의 진단과 유산 판정은 각각 다른 병원에서 이뤄졌다.
다른 병원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 병원의 환자가 아니었던 수현은 모든 의사에게 돌아가며 검사를 받았다. 의사를 선택할 권리도 없었고, 예약을 했지만 항상 오래 기다려야 했다. 의료진 입장에서 매 순간이 응급 상황일 수는 없다. 그들 역시 직업인이기에 감정 노동을 요구할 수도 없다.
다른 진료 과목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목격한 산부인과의 의사들에게는 직업윤리가 부족했다. 그들의 부족함이 환자에게는 상처로 남는다. 심지어 수현을 되돌려 보냈던, 처음 다니던 산부인과의 의사에게는 이후 어떻게 됐는지 확인 연락조차 없었다. 몇 개월 뒤 그 병원에서는 의미 없는 예약 알림 문자만 덩그러니 왔다. 임신에서 출산까지 대안이 있을까? 내게도 공부가 필요해 보인다.
의료진은 모든 것을 “전문가에게 맡기”길 원했다. 나는 나의 몸과 아기에게 두고두고 영향을 끼칠 출산에 관련한 모든 결정권을 내려놓아야 했다. 출산이라는 내 삶의 소중하고 매우 의미 있는 사건으로부터 나는 가장 소외받는 대상이 되었다. (p.44)
임산부들은 의료진이 일반적인 내진을 할 때, 진행 상황을 알려 주지 않을 때, 자기들끼리 일상적인 농담을 주고받을 때 불쾌감 혹은 모욕감까지 느낀다고 했다. 한 여성은 산전 진단에 대해 이렇게 언급하기도 했다. “의사에게 나는 한마디로 구멍일 뿐이야, 내가 물건화된다고 할까….” 그러면서 “항상 진료가 끝나면 묘한 상실감을 느낀다”고 했다. 의료화 출산에서 임산부들이 경험하는 신체의 물상화는 임산부들에게 스스로에 대한 연민을 갖게 하거나 임신과 출산 과정 동안 겪은 부당한 대우에 대한 분노를 일깨우기도 한다. (p.69-70)
- 전가일, <여성은 출산에서 어떻게 소외되는가>
드니 빌뇌브 감독의 <컨택트(Arrival)>는 시간의 개념을 뒤집는 SF 영화다. 즉 시간이 과거, 현재, 미래 순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가정 아래, 우리의 기억과 선택에 대해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가령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나’를 알고 있을 때, 현재의 ‘나’는 여전히 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현재와 미래를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지 영화는 묻는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후반부에서 주인공인 루이스와 이안이 나눈 대화가 인상적이었다. 루이스를 사랑하는 이안은 루이스에게 아이를 갖고 싶은지 물었고, 루이스는 (딸 한나가 희귀병으로 인해 죽을 것임을 알면서도) “예스”라고 답한다. 가끔 스스로에게 묻고 한다. 내가 만약 결혼하지 않았다면? 수현을 만나지 않았다면? 삶은 분명 다른 방향으로 흘렀겠지. 나도 내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삼촌 (그리스 여행 사진을 보냄)
나 여긴 가본 적이 없는데, 나중에 가봐야겠어요. 그나저나 10월쯤 수현과 늦은 휴가로 발리에 갈 듯싶어요.
삼촌 자주 여행 다니도록 해. 난 예전에 충분히 그러지 않아서, 딸들에게는 늘 여행을 많이 다니자고 약속하거든.
나 일만 하지 않고, 여행에도 시간을 쓰려고 노력할게요. 쉽진 않겠지만요. (저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에 중독되어 있어요. 이런 면에서는 결혼이 균형을 유지하는 데 꽤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아직 싱글이었다면, 점점 더 많은 양의 일을 하다가 완전히 소진되었을 것 같거든요.
삼촌 혹은 네가 이미 결혼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네가 지닌 가능성으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알고 있지? 그런데 이제는 그만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거야. 우리 모두는 현실과 절충하거든. 그리고 옳은 선택이라고 스스로를 확신시키지.
나 동의해요.
삼촌 쉬운 일은 아니야. 어쨌든 너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가장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할 거야.
- 2019년 3월 29일, 삼촌과의 대화 (영어 대화를 의역했다.)
맨해튼에 있는 삼촌과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나누면서 내 인생이 이미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있음을 느끼기도 했다. 실제로 요즘 가장 관심 있는 주제는 인생, 가족, 사회, 책임, 부, 교육 등이다. 어떻게 하면 부부로서 더 나은 삶을 꾸릴 수 있을지 고민한다. 삼촌의 말처럼 내가 이미 결혼했기 때문에.
내 삶의 또 다른 가치는 자유다. 그동안 결혼 생활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결혼이 내가 추구하는 자유와 충돌하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자유로운 상태라면 인생의 그 어떤 고민이나 마찰도 없을 거라 느꼈다. 하지만 앞서 지난 3년 동안 나에게 일어난 대부분의 변화가 결혼 때문이라고 말한 것처럼,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 결혼을 혼인 계약으로 좁게 볼 수도 있지만, 나에게 결혼은 그 이상을 의미하고 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수현과 함께 하며 그 어느 때보다 삶이 감정적으로 깊어지고 풍성해졌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2019년 봄에는 나에게 극한의 자유를 선물했던 모터사이클을 중고로 팔았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지만 그때의 나와 이제는 사이좋게 이별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결정했다.
분주한 아침이었다. 아침 7시 20분 테니스 레슨을 마치고 서브 연습을 더 했다. 그새 날이 밝아져 테니스 코트의 조명을 껐다. 어제 수선 맡긴 바지를 찾아 다시 집으로 오자마자 2주 동안 쌓인 재활용품을 버렸다. 화분에 물을 주고 거실의 책상과 책장도 정리했다. (이즈음에 수현이 깨어났다.) 샤워를 마치고, 열쇠를 들고 지하 주차장으로 가 한동안 잠들어있던 모터사이클을 깨웠다.
“유라시아까지 함께 한 바이크인데 서운하시겠어요.” 의정부에서 온 1963년생의 남자가 말했다. 잠시 입술을 다물었다. 이 감정을 ‘서운함’이라 말하는 게 맞을까 싶었지만, 어쨌든 슬픈 감정은 맞다. 한편으로는 홀가분하기도 했다. 슬프면서 동시에 기뻤다. 그래, 이제는 새 주인에게 잘 보내주자. 새 주인은 호주를 바이크로 횡단했던 이야기를 책으로 준비 중이라고 덧붙였다. 안전히 그리고 즐겁게 타시라는 인사를 드리고 출근했다.
- 2019년 2월 12일, 인스타그램 포스팅
결국 감정이 전부다. 한때 살고 싶은 대로 살아보면서 내린 결론이었는데, 여전히 내 삶을 지지하는 명제가 될 줄은 몰랐다. 감정이 내 삶을 더욱 풍성히 가꿀 수 있다고 믿는다. 그동안 기쁨을 주로 좇았다. 앞으로는 잔잔한 기쁨을 모두 끌어내릴 만큼의 슬픔도 겪을 것이다. 그 냉정한 사실이 여전히 무섭다. 하지만 이제는 기쁨과 슬픔, 설렘과 아픔 모두 받아들이려 한다. 그때에도 담담하게 시간을 견딜 수 있기를 바란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펄먼 박사가 실연의 아픔을 겪고 있는 아들 엘리오에게 해준 대사는 그래서 더욱 여운이 짙다. 그 대사로 이 글을 마친다.
“우리는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하려고 스스로의 마음을 너무 도려내지. 그러다 서른쯤 되면 감정이 메말라버려서, 새로운 사람과 관계를 시작하려 해도 점점 마음을 열지 않게 될 거야. 하지만 상처 받기 싫어 아무것도 느끼지 않겠다고? 이 얼마나 낭비니! (...) 어떤 삶을 살든 그건 네 마음이다. 다만 너의 몸과 마음이 인생에서 단 한 번만 주어진다는 걸 기억하렴. 섬세한 마음은 어느새 무뎌질 테고, 몸도 마찬가지겠지. 아무도 너를 바라보지도, 가까이하지 않으려는 때가 온단다. 지금의 슬픔. 아픔. 모두 간직하렴. 네가 느낀 기쁨과 함께 말이다.”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중 펄먼 박사의 대사
혹여나 우리와 비슷한 아픔을 겪은 분이 이 글을 읽고 계신다면, 성급히 위로를 건네고 싶지는 않다. 우리도 정말 힘들었으니까. 대신 몇 가지를 전해드리고 싶다.
“햇볕을 많이 쬐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드세요. 그리고 식물을 키워보세요. 빛과 물, 바람만 챙겨주면 어느새 자라나는 식물의 잎새를 보면서 저는 거짓말처럼 기분이 나아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두려워하지도 마세요. 이 문장을 다시 옮깁니다. 유산이 되어도 그 유산에 대해 엄마의 잘못은 없습니다. 미안해하며 몸과 마음이 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부디 지금 이 시간을 잘 견디시길 바랄게요.”
나는 2016년 6월부터 현재까지, 이직하기 전에 한 달 쉰 것 빼고는 계속 급여를 받고 있다. 수현은 2019년 1월부터 뉴닉(NEWNEEK)에 합류해 2인 가구의 월평균 소득을 높이고 있다. 어떻게 하면 근로소득 비중을 줄이고, 재산소득(임대, 이자, 배당, 저작권 사용료 등) 비중을 키울 수 있을지 수시로 고민 중이다. 결국 마흔 즈음에는 자기 사업, 부동산, 주식 등의 투자, 책 집필 등을 꾸준히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큰 지출은 2건 있었다. 2019년 1월 자동차를 샀고, 2020년 3월 집을 샀다. 차 살 때 받은 대출은 금방 갚았는데, 집 살 때 받은 대출은 오래 걸릴 듯싶다. 2053년 3월이 만기다. 그 외에도 적지 않은 지출이 꽤 있는데, 모두 집안 어딘가에 ‘인테리어’란 명목으로 들어가 있다. ‘happy wife, happy life’란 조건에 맞으면 가급적 지출하는 편이다.
2019년에는 회사 차원에서 또는 개인적으로 들어온 거의 모든 제안을 수락했다. 매달 외고를 썼고, 트레바리 클럽장을 두 시즌 진행했고, 회사 책 홍보를 위한 북토크도 했다. 거의 모든 주말을 사이드잡에 반납하여 번 돈이 대략 1000만 원이었다. 연소득이 130만 원이던 백수 시절에 비하면 높다고 볼 수 있으나 ‘겨우 이 정도?’란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2020년부터는 대부분 거절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본업의 생산성과 가치를 높이기 위해 충분히 휴식을 취하거나, 재산소득에 기여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자 한다.
나는 퍼블리(PUBLY)를 떠나 매거진 <B> 편집부에 합류했다. (2018년 10월 8일)
회사에서는 새로운 사업 영역을 기획하고 확장하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2019년에는 카카오 브런치와 협업하여 브런치북 프로젝트 수상작 3종을 출간했고, 비슷한 시기에 직업을 주제로 펴내는 단행본 시리즈 ‘잡스(JOBS)’를 출시했다. ‘잡스’는 현재 세 번째 책까지 나왔다.
수현은 2018년 가을부터 뉴닉의 초기 브랜딩을 돕다가 2019년 1월 정식으로 합류했다. 뉴닉의 첫 번째 직원이자 ‘고슴맘’으로 불린다.
수현도 쉼 없이 일했다. 고슴이 돌잔치를 기획했고, 얼마 전에는 뉴닉의 텀블벅 펀딩 굿즈(실버 버튼 배지, 스티커, 노트, 스노우볼)와 브랜드 신문을 제작했다.
부부 활동 관련 기사 및 인터뷰: 남의집 청첩 행사, <디렉토리(Directory)> Issue No.2 ‘Companion’, 경향신문, 오늘의집 ‘오하우스(O! House)’, 2019 새건축사협의회 건축집담 ‘RBV 모델로 바라본 신혼부부의 1년’, 모 전자회사의 비공개 연구보고서, <어라운드(Around)> 71호 등
수현과 함께 송주원 안무가(일일댄스프로젝트)의 도시공간 무용 프로젝트 ‘풍정.각(風情.刻)’ 시리즈 7(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2017년 8월)과 8(청파동 골목, 2017년 10월)에 참여했다. 결혼 후에는 따로 연습 시간을 내기 어려워 대신 집에서 춤춘다.
서로 흰머리를 뽑아주기 시작했다. 신체 노화가 진행 중이다. 예전만큼 회복이 빠르지 못하다. 테니스 레슨을 받으면 어깨나 허리가 가끔 아픈데, 그렇다고 여기서 레슨을 멈추자니 지금까지 투자한 게 아깝기도 하다. 수현도 2020년 5월부터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주 2회 PT를 받기로 했다. 2020년 하반기에는 자녀 계획을 다시 구상 중이다.
비영리 사회단체 나눔문화에 8년째 후원을 유지하고 있다. 2019년 여름에는 소셜 투자 계모임 ‘디모스(demos)’의 참여를 제안받아 계주로 활동했다. ‘활동’이란 말이 민망할 정도로 사실 돈 낸 것 말고는 딱히 한 게 없다. 관련 글은 여기로. 수현은 닷페이스(.face) 미디어 후원을 시작했다. 이제는 ‘닷페피플(.people)’로 불린다.
인상적인 여행과 영화, 책을 꼽았다. 별도의 언급이 없다면 모두 수현과 함께 했다.
국내여행
성호와 모터사이클 여행(2017.4) / 관련 글
보리와 처음으로 함께 한 남도 여행(2017.9) / 관련 글
정동진 독립 영화제(거의 매해 가는 중) / 2019년에는 정은+형철 커플과 처제도 합류했다.
함양, 지리산(2017.6, 2017.12)
부산 (2017.11, 2019.3)
진해 (2018.4) / 건축과 동기, 후배들과 함께 / 관련 사진
강원도 feat. 월정사 템플스테이 (2018.5) / 관련 글 (결혼 나흘 앞두고 폴란드에서 온 유렉+루시 부부와 여행 간다고 수현에게 혼났음)
제주 (2019.11)
속초 (2020.2)
안동, 속리산, 태안 (2020.5)
국외여행
도쿄(2018.2) / 초반 나흘은 윤이 누나도 함께
밀라노 - 남부 프랑스(마르세유, 엑상프로방스, 아비뇽 등) - 리옹 / 내가 동선을 잘못 짜서 쉴 틈 없이 이동했던 신혼여행! (2018.5)
뉴욕 (2018.9) / 삼촌네서 머무르며 내 친구도 보고, 수현 친구도 보고. 관련 영상
발리 (2019.10) / 강렬한 햇볕에 몸을 바싹 태웠다. 수현이 몽키에 물린 것 빼고는 대체로 다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언젠가 또 가야 할 여행지.
영화
<Arrival>(2017, 국내 개봉 연도)
<Call Me by Your Name>(2018) by Luca Guadagnino
<1917>(2020) by Sam Mendes
책
올리버 색스, <온 더 무브>, 알마, 2016
우치다 타츠루, <곤란한 결혼>, 민들레, 2017
전가일, <여성은 출산에서 어떻게 소외되는가>, 스리체어스, 2017
수신지(신지수), <며느라기>, 귤프레스, 2018
김영민,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어크로스, 2018
프랭클린 포어, <생각을 빼앗긴 세계>, 반비, 2019
김동조, <모두 같은 달을 보지만 서로 다른 꿈을 꾼다>, 아웃사이트, 2020
공연
파크 애비뉴 아모리에서 본 공연 두 개가 모두 좋았다.
Recital Series: the Crossing conducted by Donald Nally (두 번 봤다)
The Six Brandenburg Concertos by Anne Teresa De Keersmaeker
국내 공연은 거의 못 보고 있다. 하나 기억 남는 게 있다면,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 1(NDT 1) 내한 공연(예술의전당, 2018.10)
동생이 결혼했다. (2017.11)
나도 수현과 결혼했다. (2018.5)
동생이 딸을 낳았다. (2018.8)
‘사람’이 떠났다. (2018.12 / 임신 7주차 초기 유산)
할아버지가 향년 94세로 세상을 떠났다. (2019.9)
큰아버지도 세상을 떠났다. (2020.2)
3년 사이 경사와 조사가 많았다. 할아버지와 큰아버지는 모두 화장으로 장례를 진행했다. 고인의 시신에 성수를 뿌리고, 화장하기 직전 고별실에서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는 장면이 여전히 생생하다. 수골실에서 할아버지의 유골을 받아 든 아버지는 “유골함이 생각보다 따뜻하고 무거웠다”라고 말했다. 그즈음 어머니는 일시적으로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아버지는 연초에 백내장 수술을 받았고, 어머니는 자궁경부암을 초기에 진단받아 복강경 수술로 치료했다. 부모님 나이가 어느덧 예순 중반을 넘기고 있다. 두 분 다 아직까지 무탈하셔서 다행이다.
삶과 죽음이 인생의 한 쌍이란 걸 느낀다. 어머니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이 삼사십에 맞이하는 죽음과 오십에 맞이하는 죽음, 육십에 맞이하는 죽음이 다 느낌이 다르더라.” 수현은 한창 아플 때 나에게 말했다. “내 인생은 이제 끝난 걸까? 오빠, 우리 비슷하게 죽자.” 우린 아직 살 날이 한창 더 남았다. 비슷하게 죽으려면 둘 다 건강 관리를 잘해야 한다.
글 손현
감수 양수현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