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필런 Jul 25. 2019

4차 산업혁명과 벌거벗은 임금님

좋은 아침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무슨 4차 산업혁명이 요술방망이냐?” 

라고 말해주고 싶다. 바로 회사 윗대가리에 있는 인간들에게. 


강 전무는 아직도 회의시간에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말한다. 그게 도대체 몇 년 전이냐...

“요즘은 유튜브 시대라고, 영상 하나만 잘 만들어도 전 세계 사람들 몇억 명이 본다니까? 왜 그런 걸 몰라. 싸이 봐봐 동영상 하나로 세계를 주름잡았잖아”


옛날 방식으로 생각하지 마라, 요즘 트렌드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거 아니냐 등등 그의 일장연설은 또 계속된다. 그가 그렇게 말하는 것에도 이유는 있다. 바로 사장 때문이다. 사장의 관심사는 일편단심 ‘4차 산업혁명’이다. 아 물론 3~4년 전까지는 ‘창조경제’였다. 그 전에는 4대 강이었나? 

실체도 방식도 모호하지만 단어는 그럴싸한 그것들을 쫒는다. 물론 그도 이유가 있겠지. 그 사람보다 위에 있는 사람들이 떠들어 대니까... 


얼마 전 신년 시무식 때 사장이 4차 산업혁명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입니다. 모든 것을 연결하는 이 시대. 새로운 도전과 창의력이 중요합니다. 다들 저처럼 4차 산업혁명에 대해 스터디하세요”


뻔하디 뻔한 저말. 새로운 신조어 하나에 도전과 창의력 새로움 등과 같은 소스를 곁들이면 말하기에도 그럴싸한 무언가가 된다. 정작 우리들은 어떤 것이 뭐가 되길래 도대체 혁명이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 말이다. 그저 시간의 흐름과 기술의 진화에 따라 자연스러운 삶의 변화를 가지고도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가? 

어쨌든, 사회와 회사가 이 지경이니 우리 부서도 이를 피해 갈 수가 없다. IT, 트렌드, 디지털 기술.. 등등 이제는 지겹지만 어쩔 수가 없다. 



회의시간.. 부장이 말한다.

“4차 산업혁명시대잖아. 몰라? 이젠 마케팅 방식을 바꿔야지! SNS를 활용해서 마케팅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란 말이야”


부서원들 표정을 보니 ‘그럼 니 생각은 뭔데? SNS 활용을 어떻게 하고 싶은 건데?‘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찬 듯했지만 누구도 토를 달지 못했다. 어차피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며칠 뒤 부장에게 SNS를 활용한 마케팅 방안에 대한 자료를 보고 한다. 보고서를 이해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한참 읽어본 부장이 말한다. 

“이거 말이야 이거 하면 몇 만 명이 그 뭐야.. 좋아요?? 그거 누르는 거 맞지? 그럼 회사 이미지 좋아지고, 매출로 연결되는 그런 거, 그거 맞는 거지? 그리고 이거 회원가입은 유료인가?” 

그리고 한마디 더 거든다. 

“이런 게 사장님이 관심 가지는 그거 맞지? 4차 그거”


이뿐만 아니다. 자꾸 쓸데없이 신기술을 도입하려 한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미명 하에.. 

도대체 누구의 머릿속에서 나온 아이디어인지는 모르지만 분명 누군가가 그럴싸한 단어로 사장한테 보고했을 것이다. 이렇게 투자해야 한다고, 미래를 내다보는 글로벌 회사는 다 이렇게 한다면서 말이다. 이번에 새롭게 시작하는 프로젝트는 다양한 온라인 데이터를 활용하는 투자라고 한다. 내용과 주제만 봐서는 기존에 있는 것인데 말이다. 회사에서는 이를 위해 부서별로 이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직원을 선발해서 TF를 꾸린다고 한다.


부서장이 또다시 회의를 소집했다. 

“아.. 그러니까 말이야? 이번 회사에서 하는 프로젝트 알지? 디지털이랑 4차 산업혁명... IT 도입해서 데이터로.. 그.. 장사 잘되게 하는 거 그거 말이야” 

역시 그는 이번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역시나 1도 모르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의 말은 이어진다.

“IT 관련이니까 아무래도 공대 출신이 참여하는 게 좋겠어. 김대리?? 김대리가 공대 출신이지? 이번 TF는 김대리가 참여하고, 나한테 중간중간 잘 보고해줘. 회의 끝” 


그가 도망치듯 회의실을 나간다. 부서원들이 프로젝트에 대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질까 봐 미리 내뺀 것이다. 김대리가 남은 직원들에게 울상을 지으며 말한다. 

“저 공대 출신은 맞는데... 저 토목과 출신이에요. 제 논문 주제가 시멘트의 점성에 따른 굳는 정도에 관한 거라고요.. 내가 무슨 IT를 안다고...”

IT는 물론 4차 산업혁명에 관심도 없는 부장은 얼마 전 들어온 신입사원이 e비즈니스학과 출신이라는 것은 알고 있는 걸까? 아마도 모르겠지? 몇 년째 승진에 미끄러지고 있는 그의 머릿속에는 그저 ‘4차’라는 단어만 있을 테니.


어린 시절 읽었던 '벌거벗은 임금님'. 

실체가 없음에도 여러 사람들이 ‘그런가 보다’라고 하니까 우르르 쫓아가는 임원들의 회의시간은 

그저 '벌거벗은 임금님'의 시간이 아닐까?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에 수록된 삽화 <빌헬름 페데르센 作>




https://brunch.co.kr/@ththththth/59

이전 10화 '컵라면'과 '최적'의 눈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