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옷보다 필요한 것

지름신을 잠재운 브런치

by 온기

계절이 바뀌고 있다.

바람의 결이 다르다.

아직은 에어컨이 필요한 이 시기는

냉방병에 걸리기 쉬운 날씨다.

가을 옷이 필요하다. 카디건도 필요하고

니트조끼라도 하나 있어야 한다는

강력한 동기가 시작된다.

옷은 이미 넘치게 충분한데 왜 이런

강력한 동기는 다시 샘솟는 것일까?

나는 왜 옷이 사고 싶을까?

사회적 동물인 나는 더 예쁘게 더 멋지게

옷을 통해 나를 표현하고 싶은 것일까?

그렇다면 옷은 정말 멋진 나를

만들어주는 것일까?

옷장은 이미 가득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기준은 늘 흔들린다.

더 잘 보이고 싶은 욕망은 결국 끝이 없고,

어느새 옷은 쌓여 헌 옷이 되고,

‘충분하다’는 말은 모호한 채로 남는다.

헌 옷은 기부 상자에 들어가거나

중고 시장에 흘러가지만,

대부분은 소각되거나 땅에 묻힌다.

한때 나를 반짝이게 했던 천 조각이,

언젠가는 지구를 짓누르는 짐이 되어 돌아온다.

옷을 사고 싶은 마음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욕망을 어떤 방식으로 충족하느냐는 우리의 선택이다.

필요한 만큼만 사기, 오래 입기, 수선하기.

결국 멋진 나를 만들고 싶은 욕망은

옷으로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

이 작은 태도의 전환이, 지구를 위한

최소한의 예의일지 모른다.

“나는 어떤 옷을 입은 사람으로 기억될까?”

보다는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가

나에겐 더 중요하다.

어쩌면 진짜 멋진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다.

건강한 몸, 운동을 하는 나를 칭찬할 때의 기쁨, 계절이 바뀔 때만

보이는 푸르고 푸른 하늘,

여름 끝자락의 새벽 공기

옷들은 낡아 사라지지만,

내가 건넨 따뜻한 말, 지켜낸 믿음,

함께한 시간은

욕망보다 뜨겁고 충만하리라.

글을 쓰고 나니 소비의 욕구가 사그라들었다.

그래. 나는 이미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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