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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모순』 속 문장을 통해 그 사실을 조용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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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
May 15. 2025
오랜만에 소설을 읽었다.
소설은 늘 흥미롭다. 이야기의 끝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미지의 세계가 손을 붙잡아 끌고 간다. 그래서 쉽게 손에서 놓을 수 없고,
어느새 그 세계 속으로 깊이 빨려 들어간다.
그러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하는 순간엔, 마치 연인과의 이별처럼 긴 여운이 남는다. 그것은 이야기의 힘이기도 하지만, 창작자가 견뎌낸 고통과 고된 노동의 결실이라는 생각에 경외심마저 든다.
나도 글을 쓴다.
하지만 내 마음 하나 온전히 표현하기조차 버거워 숨이 막힐 때가 많다. 그래서인지, 소설 속 문장을 읽고 또 읽으며 감탄하게 된다. 문장이 가진 힘이란 이런 걸까.
“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손잡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주리는 정말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 『모순』 p.173
나는 늘 단순하고 반복적인 감정 표현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
‘힘들다’, ‘괴롭다’, ‘좋다’, ‘싫다’...
그런 어휘들 대신, 내 감정을 조각조각 분해해 진짜 마음의 지점을 짚어주는
문장을 만났을 때 느끼는 경이로움이란!
책 속에서, 과거의 내가 보였다.
결혼 전의 나는 안진진의 아버지처럼 살았고, 결혼 후의 나는 그녀의 어머니처럼
살아가고 있다.
“해 질 녘에는 절대 낯선 길에서 헤매면 안 돼.
그러다 하늘 저편에서부터 푸른색으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아프거든...”
— 『모순』 p.94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노을 지던 그 저녁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마음속에 구멍이 난 듯한 그 공허함, 그리하여 술을 마시고, 동네를 몇 바퀴씩 돌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를 바라보는 제3자의 시선으로 서 있다.
‘인생에도 시행착오의 총량이 있는 걸까?’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 들어온 뒤에도 나는 여전히 헛헛함을 버리지 못한 채 살았고, 이제는 '엄마'라는 더 큰 여정 속에서 안진진의 어머니로 진화하는 중이다.
그렇다. 어머니의 삶은 나에게 ‘진화’다.
세상의 숨겨진 비밀을 하나씩 배워가는 과정이고, 매일의 일상 속에서 감정을 발견해내는 모험이다.
이제 나의 사랑은
쇠창살 안에서의 사랑이 아니라,
두 발을 땅에 딛고 좌판을 펼쳐 양말을 파는 사랑이다.
더 단단하고, 더 현실적인 사랑.
안진진의 어머니가 그녀에게 물려준 그 사랑이,
그녀의 삶의 생명력이 되기를.
그리고 나 또한 내 아이에게 그런 유전자를 전해줄 수 있기를.
오지랖 넓은 내 인생이,
이젠 소설 속 주인공의 삶까지 들여다보며 간섭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웃음이 난다.
그래서, 소설은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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