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다.
인간은 B(Birth 탄생)와 D(Death 죽음)사이의 C(Choice 선택)라는 무한궤도 속에서 놓여져 있다. 알다시피 우리는 살아가며 매 순간 선택을 해야 한다. 선택에 따라 좌우되는 감정은 천차만별이다. 선택의 결과가 만족스럽다면 좋은 감정에 사로잡히지만, 매 순간 선택의 결과가 만족스러울 수 있을까? 선택의 결과에 의해 후회 그리고 더 암울한 상황이 초래되기도 한다. 선택의 결과가 좋지 않다면 선택이 불러올 후폭풍에 불안해할 것이다. 이유는 갈등이 생긴다는 사실 때문이다. 갈등은 하루 전체를 불안의 구렁으로 나를 밀어낸다. 선택을 회피하고 싶은 욕망을 잔뜩 품은 마음은 다시 맞이할 선택의 순간에 기다렸단 듯이 위축된다. 불안한 하루를 보내고 맞이하는 선택의 순간들이 반복된다면 어떨까. 아마 불안한 날들을 버티며 살아가거나 회피하는 것 아닐까.
아니다. 불안의 요소를 제거하는 것은 어떨까.
위의 글은 나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어느 정도의 기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돌발적인 상황에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선택이 잦았다. 선택에는 비용이 발생한다. 좋은 선택에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 불합리적일 것이다. 돌발적인 상황이 불합리함을 품어줄 순 없다. 좋지 않은 선택보다 나은 선택이 있을까? 누군가는 차선책으로라도 좋지 않은 선택을 해야 한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글을 적어 내려 가며 나는 다짐을 한다. 맛집으로 알려진 집들의 운영방식과 닮았다. 좋은 재료가 없어 자신들의 맛을 구현해낼 수 없다면 장사를 하지 않는다. 어느 곱창집에서는 양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날이면 소금구이로만 하루 장사를 한다.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인 셈이다. 그래서 오늘부로 좋은 선택이 아닌 경우에는 선택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이 고용주의 선택과 같았다. "주고 욕먹을 거면 안 주는 게 낫다.".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으나 실천에 옮기지 못해 불안했던 날을 몇 차례 보내왔다. 불안한 상태로 허송세월 했던 지난날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다.
선택하지 않는 것만이 불안을 제거하는 방법일까? 아니다. 선택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불안이 없을 것이다. 선택에 대한 확신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선택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다. 선택의 기준은 검증의 과정을 거치고 자신의 상황에 맞게 세워져야 한다. 기준에 충족했다고 확신을 가지고 하는 선택은 섣부를 수 있다. 기준에 맞더라도 위험요소에 대한 분석과 대비가 필요하다. 위험요소는 각자의 상황에 맞게 설정하고 이에 대비할 수 있는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다면 선택의 실패를 줄일 수 있다. 그리고 선택에 있어서 감정을 배제하는 것도 논리적인 이유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이다. 모든 선택에 감정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감정이 배제될 수 있는 선택의 상황에서는 배제함으로써 냉철한 분석에 이를 수 있다. 그리고 난 뒤 논리적인 선택을 이끌어낼 수 있다.
선택은 우리의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을 정도로 익숙하지만 낯설다. 때론 우리를 두렵게 만들기도 한다. 선택이 우리의 삶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한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되기 위해서는 섣부르고 이유 없는 선택은 지양해야 한다. 한 차례의 선택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선택들이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과거의 선택으로 우리의 여정은 선택에 맞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과거의 선택이 현재 당신이 맞이한 선택의 순간을 만들었다. 섣부른 선택이 불러오는 삶의 후퇴를 경험하기 전에 진중한 고민을 통해 선택을 하는 것도 일종의 선택이 아닐까.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히 반복될 선택의 순간들이지만 삶에 도움이 되는 좋은 선택을 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