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졸업(예정) 자가되었습니다.

대학교 졸업장의 의미를 다시 생각합니다.

by 엄지

유학(遊學)의 의미.


2014년 3월 고향 부산을 떠나 진주라는 도시로 유학(遊學) 길에 올랐다. 유학은 두 가지 단어가 있다. 외국에 머물면서 공부를 하는 유학(留學)과 타향에 가서 공부를 하는 유학(遊學). 나의 유학은 후자였다. 후자의 유학의 '유'는 놀다, 즐기다, 여행하다 등 공부의 뜻도 포함되지만 놀고 즐기고 여행하는 의미가 크다. 오늘날 비로소 유학의 뜻을 찾아보게 되었지만 나는 충실히 유학을 수행했다고 생각한다. 부산의 어느 사립대에 입학 장학생으로 입학이 가능했지만 타향에서 살아보고자 했던 나의 선택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진주의 국립대학이었다. 당시에는 수능을 마치고 나서 어설프게 경제적 독립을 추구했기에 유학길을 선택한 면도 있다. 입학 장학생임에도 불구하고 국립대라는 이유로 등록금이 저렴해 선택한 대학교는 나에게 경제적 이유와 독립이라는 이유 말고는 없었다. 내가 지원한 학과는 동일했기에 비교 대상은 등록금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타향에서 만난 이들과 인연을 맺고 연인이 되기도 했다. 같은 길을 걷는 동료들을 만났다. 각자의 업은 다르지만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사실은 서로 확인할 수 있었다. 7년 동안의 대학은 무의미하지 않았다. 비록 대학의 이유를 잃었지만 말이다. 훗날 그들과의 깊은 교류가 대학의 이유가 되어주었다고 할 수 있다. 여행같았던 유학길에서 만났던 이들이 나의 대학 7년 동안의 얻었던 보물이다.


대학의 이유를 잃었다.


내가 대학을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처음엔 그저 역사가 좋았다. 역사가 좋아서 '사학과'를 택했다. 사학과를 가기 위해 고등학교 정규과정의 수업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공부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하면서 꿈은 더 확장되어갔고 목표는 뚜렷해졌다. 스펙을 쌓기 위해 역사 관련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대회를 준비하며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현주소를 발견하면서 꿈은 더 뚜렷해졌다. 근현대사를 전공하여 나의 한마디가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면접에 임했고 마침내 진주에 소재한 4년제 국립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한국의 근현대사에 발을 들이게 되면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경우가 있다. 감정적이고 급진적이었던 고등학생 시절. 근현대 시민운동은 인문대학 학생들이 주도했다는 사실에 그들과 같은 소속이 될 생각이 대학 진학을 꿈꾸게 했다. 대학 진학을 위해 노력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꿈을 이루기 위해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는 시간을 늘리며 고통스러운 생활을 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과거 어르신들은 '사학과', '역사를 공부하는 곳'이라고 하면 데모의 출발점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젠 아니었다. 지금도 아니고 7년 전의 사학과도 그렇지 않았다. 새내기를 안내해주는 선배와 졸업생들은 취업에 급급했고, 보험설계사, 조선소 노동자 그리고 공무원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삶을 비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잘못된 사건에 대해 비판이라도 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입학과 함께 취업 사관학교로 전락한 대학에 흥미가 사라졌다.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자퇴? 집안의 유일한 대졸 학력 예정자였던 나에게는 불가능했다. 한낱 종이장에 불과한 졸업장을 목적으로 학교를 거닐 뿐이었다.


p.s. 어르신들 더 이상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의 자녀 또는 지인들이 가고자 하는 사학과에는 '데모'가 사라졌답니다.


결국 대학은 사람이었다.


나에게 대학은 어떤 의미일까. 2014년 1학년. 관심이 생긴 여학생을 따라 동아리에 들어갔다. 그녀를 따라 들어간 동아리는 탁구 동아리였다. 물론 탁구 못지않게 술을 좋아하고 사람들을 좋아하는 동아리였다. 2014년 동아리 회장이었던 형은 같은 부산 출신으로 옆동네 형이었다. 그저 재밌는 사람. 인생을 즐기는 사람. 책을 좋아하는 사람 정도로 알았다. 하지만 지금 그는 같은 길 위에서 나보다 몇 발자국 아니 한참 앞서있는 사람이 되었다. 감정에 솔직하고 상처 받는 것에 취약한 사람이지만 단단했다. 그는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제공하기 위해 창업을 했다. 돈을 위한 창업이 아니었다. 그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적어도 한 번은 삶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것이 그의 사업이었다. 나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바라며 창업을 했다. 그뿐만 아니라 7여 년의 세월을 함께 해온 동아리의 친구들은 먼저 사회로 나가 각자의 길을 걷고 있었다. 우리도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이다. 그래도 1년에 몇 차례 만나 삶에 대해 진솔한 얘기를 나누면서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대학시절 취하기 바쁘던 술자리는 어느새 취기를 날릴 정도의 대화가 오가는 자리가 되었고 서로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가 안주가 돼있었다. 결국 나에게 대학은 사람이었다.


대학이라는 둥지를 떠나며.


7년 동안 휴학생 그리고 대학생이라는 신분으로 온갖 배려와 존경 아닌 존경을 받아왔다. 대학생이라는 신분은 나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아직까지는 대학생이니까... 핑계를 댈 수 있었다. 이제 대학이라는 둥지를 떠날 때가 왔다. 둥지는 안정감을 준다. 돌아올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돌아와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제는 돌아올 수 있는 곳도, 돌아와야 하는 곳도 없다. 이제는 나아가다 막다른 벽을 마주한다면 그 자리에 멈추거나 막다른 벽을 무너뜨려야 한다. 나는 이제 막다른 벽을 무너뜨리기로 마음먹었다. 벽을 무너뜨리는 방법을 강구하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내가 벽을 무너뜨리는 행위의 결과는 나의 결과물을 아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나아가는 증거가 될 것이다. 이제 대학 졸업장은 한낱 종이장이 아니다. 돌아갈 곳이 없으니 나아가거나 주저앉으라는 계고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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