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이라도 다르게 바라보기. 시작은 어렵다.
문득 고등학교 시절 읽었던 책이 떠올랐다. 계기가 어찌 되었든 지금의 사고를 있게 해 준 고마운 책이기에 책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다. 고등학생이 읽기엔 대상 연령이 낮은 책이 아니냐고? 아니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함과 사회적 약속에 대해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이 없기에 가능했던 주인공의 행동들이 사회성만 과도하게 성장된 성인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다.(책의 줄거리는 각자의 방법으로 파악하도록 하자!.) 언어라는 것이 사회적 약속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필자를 비롯한 우리들은 동의한 사실이 있을까? 없다. 나는 '연필'을 '연필'이라고 부르는 것에 동의한 적이 없다. 물론 지금껏 사용하는 것을 암묵적 동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될 수 있다. 명확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동의한 사실이 없고 우리는 '연필'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새로운 이름을 명명할 수 있다. 물론 오랜 시간 많은 이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기에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은 지금까지 지속되어온 사회적 약속을 깨어버리고 새롭게 명명하고자 하는 목적이 아니다. 대상을 정해진대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의 글이다.
<프린들 주세요>의 주인공의 사고는 창업가들의 생각과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창업을 수행해가면서 발견했던 창업가들과의 공통된 특징이 떠올랐다. 창업가들은 저변에 깔려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비즈니스 모델로 삼아 창업을 이루었다. 이러한 해결방법은 사회에서 약속된 규칙을 깨거나 비틀어 해석하는 방향으로 만들어졌다. 이는 물체를 바라볼 때에도 적용된다. 정면에서만 바라보는 것보다 여러 방면에서 살펴보는 것이 물체를 이해하는 방면에서 도움이 된다. 물체의 모습을 파악하는 것은 물론 용도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도 많은 발견을 불러온다. '컵'을 그저 물을 담는 용기로만 사용하기보다는 원을 그리는 용도로 사용하는 것도 물체를 이해하는 것에서 한발 나아간 것이다.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타인이 정의한 바 그대로 적용했을 때 더 나은 해결책은 없다. 문제에 대해 한발 더 나아가 고민하고 새로운 해결책을 발견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사고의 전환이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여담이지만 필자는 '일반적으로'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세상에 일반적인 것은 누가 정한 것일까. 전 세계 모두가 다른 성격과 특징을 가지고 있기에 듣기 거북하다. "남자는 평생 세 번 울어야 한다."라는 말도 극도로 혐오한다. 필자는 수차례의 눈물을 흘렸기에 감정을 억제하도록 강요하는 문구를 혐오한다. 필자를 옥죄는 '일반적인' 사회적 통념으로 불리는 말들은 기피대상이다. 남성임에도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여성다움'도 기피한다. '여성다움'이 도대체 무엇인가. 다행스럽게도 요즈음 구시대의 산물인 과거의 통념들이 변화하는 것이 <프린들 주세요>의 저자와 같이 생각하는 이들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억지스러운 면이 있었다. 하지만 일반적이라는 단어도 사회적 약속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사고를 제한하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사회적 약속을 깨고 사고의 전환을 가져온 결과물은 무엇이 있을까. 남성과 여성의 복장을 구별하던 시대에 유니섹스(Unisex)라고 하는 '남녀공용 의류'는 어떤가. 신체적 특징이 다르다는 이유를 떠나 남성과 여성을 복장으로 구분 짓는 방식이 상식이었던 시기가 있었다고 한다.(필자는 MZ세대로서 그 시대에 발을 담갔더라도 인지할 수 없던 나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남성도 신체적으로 왜소하거나 옷의 화려함과 같은 미적 요소들을 이유로 '여성복'으로 분류된 옷을 찾기도 한다. 여성 또한 마찬가지이다. 사회적 약속이라는 통념들이 벗어나고 있다. 필자는 옷을 자주 구매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스스로 단골이라고 생각하고 옷을 살 때면 찾는 옷가게가 있다. 가게로 들어서면 손님을 졸졸 따라다니기는커녕 인사만 건넨다. 가게 벽면을 장식한 행거들은 전시회를 연상케 하는 특색 있는 의상들이 전시되어 있다. 가게의 사장부터 직원들은 같은 신념으로 가게를 꾸려나가고 있다. 매번 방문할 때마다 망치로 머리를 두들겨 맞는 듯한 충격을 얻어오곤 한다. 노란색의 옷을 처음 입어보았다. 옷은 예쁜데 어두운 색만 즐겨 입었고 짧은 다리가 들통날까 롱코트는 부담스러웠다. 노란색 롱코트를 입으며 거울을 보는 모습이 어색했다.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말하기를 "어울리지 않는 게 아니라 어색한 거예요." 무난하게 입는 경향에 지배되어 살아왔다. 마음에 드는 옷 앞에서 어울릴까라는 고민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래서 필자가 이곳을 응원하고 사랑하는 이유이다. 그들만의 색깔을 추구하고 자신들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아주 멋있다. 단발을 하고 하늘하늘한 바지를 구매하던 날 가게 사장은 실례를 무릅쓰고 필자의 직업을 묻기도 했다. 사장님과 얘기를 나누며 같은 길을 가고 있음에 기뻐했고 훗날 등장할 필자의 브랜드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들이 필자에게 제공한 유의미한 경험들이 지금의 사고를 만들고 영감을 준다.
지금껏 필자에게 통념의 벽을 깨도록 도움을 주신 분들이 있다. 시인이자 계약직 교사로 재직했던 존경하는 선생님. 20살에 처음 만나 앞장서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멘토. 비판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분법적 사고에 경고해주는 친구들. 그리고 필자의 첫 배낭여행지였던 인도에서 만난 인도인과 한국인 여행자. 필자의 소심했던 22년간의 삶의 전환점 찍을 수 있게 했다. 22년간 정해진 교육시스템 속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했던 공부들. 인문계 고등학교 졸업생으로서 당연하듯 대학에 입학했다. 성인이 되었다는 이유로 객기를 부렸다. 수능을 마치고 친구와 공장에 들어가 하루에 12시간씩 주 6일의 일을 했다. 돈이 좋았다. 돈이 주는 행복을 스스로 찾았다는 생각에 돈을 좇아 살아왔다. 등록금을 내고 기숙사 관리비를 스스로 낼 수 있었다. 생활비도 충당할 수 있었다. 내가 번 돈을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좋아 방학이면 다시 공장이나 노가다판으로 뛰어들었다. 인도를 여행하고 창업을 생각하면서 처음으로 돈을 생각하지 않았다.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그들이 경험할 순간들을 상상하는 것에 행복을 느꼈다. 여행지에서 발견한 순간에 영감을 얻어 문제 해결책을 찾아보던 그 시절이 다시금 떠오른다. 대학 강의를 듣는 와중에도 창업에 대한 생각은 그치지 않았다. 당시의 필자는 실행할 용기가 없었다. 시작하기도 전에 겁을 먹었던 것이다.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며 대학을 마칠 때쯤 다시금 창업을 했다. 필자의 생각이 머릿속에서만 그친다면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사업자등록을 하고 실질적으로 단계를 밟아가고 있다. 일상에서 발견한 순간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풀어나가고 있다. 많은 이들이 사고의 전환을 통해 소중한 나날을 보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