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라고요?

우연이 겹칠 때

by 목요

요새 매일 모르는 지역 번호로 계속 전화가 왔다. 귀찮아서 안 받았다. 그리고 며칠 전엔 문자가 왔다. 역시 같은 지역 번호로 시작하는 문자였다. 귀찮아서 제대로 읽지 않았다. 그런데 또 같은 번호로 전화가 왔다. 이번엔 잠시 마음의 틈이 열린 상태였던지 전화를 받고 말았다. 케이블 TV 지점에서 온 전화였다.


기존의 셋톱박스를 신형 셋톱 박스로 무상 교체해 준다는 내용이었다. 집에 있을 시간도 없고 셋톱박스를 교체할 만큼 불편하지도 않아서 나중에 필요하면 전화드리겠다 말하고 통화를 종료했다.


금요일 저녁, 집에 돌아오니 케이블 TV가 작동하지 않았다. 콜센터에 전화해서 확인해 보니 건물 밖 신호는 이상이 없다고 한다. 아무래도 인터넷 공유기에 문제가 생긴 듯싶었다. 다행히 토요일 AS출장이 가능하다 하여 시간을 예약하였지만 선약이 있어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하고 나가야 했다.


AS출장일, 친구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다. 약속시간보다 늦을 것 같다는. 속으로 럭키를 외쳤다. 누군가에게 부탁하지 않고도 AS를 확인하고 갈 시간이 생겼다. 게다가 기사님은 예상보다도 더 일찍 오셨다. 럭키!


역시 공유기가 고장 난 상태였고 새로운 기기로 교체했다. 그와 동시에 그렇게 내게 프로모션 전화를 통해 알리려 했던 셋톱박스 교체 이야기를 기사님이 꺼내셨다.

아... 오늘은 토요일이고 AS를 신청했고, 나는 집에 있다. 기사님은 셋톱박스 교체가 바로 가능하다고 하신다. 나는 셋톱박스 교체 또한 신청한다.


공유기가 금요일 저녁에 고장 난 것은 우연인가 필연인가, 바로 다음 날인 토요일 AS가 가능했던 것은 우연인가 필연인가, 나의 약속이 미뤄지고 셋톱박스를 교체하게 된 것은 우연인가 필연인가.


케이블 TV 지점 직원은 며칠간 여러 번 통화시도를 했을 때, 문자를 보냈을 때, 내가 전화를 받았지만 교체를 신청하지 않았을 때, 알고 있었을까?


이렇게 쉽게, 예상치 못한 순간에 본인이 원하던 바가 이루어질 줄 말이다.

이것은 그녀의 노력에 대한 하늘의 보상이었을까 그저 우연이 만들어낸 해프닝일까.


우리 삶은 때때로 내 노력을 배신하지만 또 어떤 때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노력을 보상해주기도 한다. 그래서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한다. 얄밉게도 말이다.


얄궂은 인생. 좋은 결과도 그다지 좋지 못한 결과도 내 탓이 아닐 때가 많다. 가끔 그 사실을 잊고 지내서 우리는 더 힘들어하고 슬퍼하고는 한다.


가능한 잊지 말고 살아야지. 내가 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케이블 TV 지점 직원은 자신의 일을 했을 뿐이고 나는 내 선택을 했을 뿐이다. 나는 그녀를 거절하지 않았고 다만 셋톱박스 교체를 거절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셋톱박스 교체를 했다.


삶은 정말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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