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은 바람처럼 흩어진다. 머릿속을 흐르는 생각을 잡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건 정말 뛰어난 아이디어야! 하고 신나서 적어내려는 순간 생각은 사라지고 내가 무엇에 그렇게 광분했던가마저도 잊곤 한다. 내 머리를 탓한다. 메모지와 볼펜을 꺼내는 시간이 아까워 녹음을 택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머릿속에 흐르던 완벽한 문장은 녹음버튼을 누르는 순간 역시나 사라지고 기억 저편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이런 낭패가 있을 수 있나.
그래서 오늘도 잊기 전에 쓰려고 이렇게 노트북을 열었는데 친구에게서 전화가 온다. 전화를 받는다. 나는 또 무엇을 적어두려 했는지 잊는다. 이런... 낭패가 있나.
나는 무엇을 기억하려고 노트북을 열었을까. 나이가 듦에 따라 점점 잊는 일이 기억하는 일보다 쉬워지는 것인지, 생각할 거리가 많은 때라 모든 감각에 예민하게 반응했다가는 살아남을 수가 없는 것인지, 그저 머리가 나빠진 것인지 모르겠다. 다만,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혹은 쓰려고 했는지 잊을 때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슬픔을 조금 느끼곤 한다.
지금 막 생각난, 나의 작은 슬픔을 이겨내고 떠오른 오늘의 기억할 거리는 다음과 같다.
오늘 H와 나누었던 대화 중 일부다.
이미 M과 나누었던 대화와도 통하는 내용인데 오늘 또 한 번 비슷한 얘기를 듣고 이건 적어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H는 말했다.
"들어준 친구의 마음까지 들여다보지 말자고~"
오늘 나는 H에게 내 마음을 비우는 이야기를 했는데,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니 또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아 또 TMI를 남발했네. H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실례가 되지는 않았을까?'
얼마 전 나의 또 다른 친구 M은 얘기했다.
"넌 또 남의 감정을 먼저 생각하는구나."
그렇다 나는 늘 그랬다.
내 감정보다, 내 시간보다 늘 남의 감정이, 남의 시간이 먼저였다.
'과연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할까?'
'내 이야기는 가능한 짧게 전달해야 하지 않을까?'
사실 나는 내 기분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다. 슬픈지, 기쁜지, 신이 나는지, 화가 나는지, 분노해야 하는지 몰랐고,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지금이라고 해서 안다고 할 수도 없다.
감정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연습을 이제와 한다는 것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생경하게 들리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내게는 자연스러운 감정을 표출하는 일이 생경한 일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오랜 시간 억눌려 왔던 작업이었으므로.
그래서 나는 오늘 이렇게 잊지 않으려고 기록한다.
'들어준 사람의 마음까지는 들여다보지 말자.' 그건 그의 몫이니까.
'나는 내 마음부터 다독이자.' 이건 나의 몫이니까.
내 몫을 해내기 위해 내가 이렇게 수줍은 글들을 써 내려가는 것이 아니던가.
생각이 많은 날이었다. 결정해야 할 것과 선택해야 할 것이 많은 날이었고, 머릿속을 흘러 지나치는 생각들이 그득한 날이었다.
붙잡고 싶은 아이디어들은 찰나를 참지 못하고 우주로 뻗어나가 버리곤 하는데 고민해 봐야 소용이 없는 생각들은 끈적지게도 심장에 들러붙어 스스로를 옥죄곤 한다. 고질병이다.
오늘은 이 고질병을 이 글 속에 가두고 생각을 로그아웃하기로 한다. H의 말처럼 로.그.아.웃.
그리고 바란다. 이 고질병 말고 우주로 떠나간 나의 이야기들이 돌아오기를.
이미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 거리가 너무 멀어 보이지 않는 생각들이 내 심장으로 로그인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