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도 더 전의 일이다. 새벽 러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장갑 한 짝을 잃어버렸다. 횡단보도 앞에서 휴대폰을 꺼내다 주머니에 들었던 장갑 한 짝을 흘린 것을 모른 채 횡단보도를 건너다 '아차!' 하고 깨달은 것이다. 이미 횡단보도 신호는 한 자릿수로 바뀌고 걸어온 거리보다 되돌아갈 거리가 더 멀었기에 '신호가 바뀌면 다시 건너가면 되지' 하고 일단 길을 마저 건넜다.
그리고 길을 건너 돌아서자마자 엄습한 불안감...
이른 새벽이라 사위는 어둡고, 횡단보도는 6차선(어쩌면 8차선)이라 건너편에 선 사람이 아주머니로 추정되는 것 외엔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데 그 아주머니가 무언가를 주워 올리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내 장갑으로 유추되지만 내 장갑이 아닐 수도 있는 물체를 그는 땅에서 집어 올렸고 아무렇지 않게 그것을 챙기셨다. 설마... 하며 나는 신호가 바뀌자마자 건너편으로 달려갔지만 내 장갑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아주머니를 믿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서 있던 자리를 비롯해 러닝을 했던 곳까지 되돌아가 바닥을 샅샅이 뒤졌지만 나의 장갑 한 짝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평소 손에 착 감기는 느낌이 좋아 달릴 때 애용하던 나의 장갑 한 짝은 그렇게 어이없게 눈앞에서 도둑질(?)을 당해버렸다.
아주머니를 멀리서라도 크게 불러 세웠어야 했다고 자책했다. 아주머니를 믿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그렇게 좋게만 생각하면 안 됐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새벽이라지만 그 짧은 사이에 장갑을 주워가? 버린 사람을 탓하고 잡지 못한 나를 탓했다. 아주머니를 의심하지 못한, 그래서 장갑을 되찾지 못한 나를 탓하느라 그 새벽의 기운을 탁하게 했다.
장갑에 대한 상심이 남았던 나는 집에 돌아와서도 남은 장갑 한 짝을 버리지 못하고 한 쪽 구석에 두었는데 오늘에서야 그 미련이 다 떨어져 나갔는지 드디어 쓰레기통에 버릴 수 있었다. 이 무슨 미련.... 한 짓일까.
떨어진 장갑을, 두 짝도 아닌 한 짝을 주워간 것도 이해가 안 가는 일이지만, 장갑 한 짝을 버리지 못하고 한 달을 가지고 있던 나도 이해 못 할 일이다. 세상엔 이해 못 할 일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문득 궁금해진다. 나를 사랑하고 너를 사랑하는 일은 어쩌면 이해와는 상관 없는 곳에서 발생하는 것일까.
며칠 전 나는 친구에게 바지를 하나 선물 받았는데 친구는 순수한 마음으로 내가 편안하게 입고 다녔으면 좋겠는 마음에 그 옷을 선물해 주었다. 나는 그 바지 하나에 너무도 기분이 좋아졌다.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톨스토이의 말을 의심한 적은 없지만 때로 그 사랑이란 보였다가 보이지 않기도 하는 것이라, 나같이 미욱한 인간은 사랑이 보일 때 가끔 깨닫곤 한다. 그리고 보이지 않을 때는 잊거나 의심하곤 한다. 장갑 한 짝이 무어라고(물론 내겐 소중했던 것임에 틀림없지만) 누군가를 미워하는데 내 마음을 헛되이 썼을까. 비록 길지 않은 시간이었으나 그 기분 좋았던 새벽이 장갑 한 짝으로 부옇게 흐려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러고도 의식하지 못한 한 달을 미련을 지니고 있었다니 사람이란 얼마나 놀랍도록 작은 존재인지 또다시 느낀다.
조금 거창할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이런 작은 나를 잘 느끼고 가능한 크게 욕심내지 않고 오래 미워하지 않고 살기를 바란다. 나는 작으므로 욕심 내고 미워할 수 있으나 그 시간들이 길지 않기를 바란다. 오늘의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