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보물
“댕~”
정오를 알리는 보신각의 종소리가 서울 도심으로 울려 퍼진다. 보신각 타종은 새해에 유명인들만 하는 건 줄 알았다. 찾아보니 신청만 하면 누구나 평일 오전에 할 수 있는 타종 체험이 있었다. 누나와 방학을 맞은 조카 둘과 함께 열두 번의 타종을 했다.
“종 치면서 어떤 소원 빌었어?”
“엄마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해달라고 했어요.”
말을 정말 예쁘게 하는 보석 같은 둘째 조카. ‘보신각 동종’은 대한민국의 ‘보물 2호’. 서연이와 서훈이는 내 보물 1, 2호다.
“다운증후군일 확률이 1/5입니다.”
첫째를 가졌을 때, 누나의 양수검사 결과였다. 산부인과에서 처음 조카를 만난 날.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다행히 별다른 이상 없이 첫 조카가 태어났다. 서연이는 또래보다 언어 발달이 늦은 편이었다. 때마침 내가 질병 휴직을 하던 때라 재활병원도, 언어센터도 부지런히 따라다녔다. 그사이 여러 해, 신촌의 벚꽃이 피고 지고, 연신내에 눈이 내리고 쌓이길 반복했다. 흥이 많은 서연이는 예방주사를 맞으러 가서도 엉덩이춤을 춰서 병원 사람들을 모두 웃게 했다. 요즘에 제 엄마와 말싸움할 때면 어찌나 야무지게 말을 잘하는지, 아기 때의 모습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다.
둘째 조카 서훈이는 태어났을 때 폐에 물이 찼다. 일주일간 대학병원 인큐베이터 신세를 졌다. 누나가 순산한 걸 보고 가족들과 집에 왔는데, 새벽에 문제가 생겼다. 긴급하게 대형 병원으로 이송이 필요한 순간. 보호자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세 명 다 연락이 안 됐다. 부모님은 잘 때 휴대폰을 꺼놓고 나는 무음 상태였다. 아무도 전화를 받지 못했다. 직장 때문에 서산에 있던 매형이 서울로 올라오는 동안, 혼자 초조하게 불안에 떨었을 누나를 생각하면 지금도 너무나 미안할 뿐이다.
직장생활로 바쁜 매형 대신 내가 누나의 육아를 돕는 시간이 많다. 첫째가 어릴 때는 베이비 페어와 벼룩시장에 가서 육아용품도 얻어오고, 걸음마를 떼고는 공연과 전시를 보러 돌아다녔다. 둘째가 클 때는 코로나 때문에 외출을 많이 못 해서 아쉬운 마음이 크다. 조카들 덕분에 평소엔 못 해본 경험도 하고, 아이들이 아니면 안 갈 곳들도 가보며 견문을 넓히고 있다.
나종호 작가의 책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중에 나온 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살면서 좋았던 일이 기억 안 난다는 화자. 그런데 딱 한 번 생각나는 장면이 삼촌이 목말을 태워줬을 때. 너무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이걸 본 후 둘째와 만날 때마다 목말을 태워준다. 나를 보면 내 앞으로 우다다 달려가 두 팔을 벌리며 무등을 태우라는 둘째. 시간이 지날수록 어깨 위로 무게는 더해가지만, 입가엔 절로 삼촌 미소가 지어진다. 두 조카를 양쪽 허벅지 위에 앉혀서 꼭 안아주고 있을 때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다.
제주도에 출장을 갔을 때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조카가 보고 싶어서 주말에 여행을 하지 않고, 토요일 아침 비행기로 집에 올 정도로 유별난 조카 바보 삼촌이다. 하지만 ‘품 안의 자식’이라고 이제 조금 있으면 부모님과 나보다는 친구들이랑 노는 게 더 재밌겠지? 엄밀히 말하면 누나 자식이지만, 그래도 나랑 구성 성분이 절반은 같은 내 분신과 같은 조카 둘. 외탁이 심한 둘째는 같이 다닐 때마다 사람들이 내 아들로 착각할 만큼 무척 닮았다. ‘낳은 정보다는 기른 정’이라는 말처럼 내 마음으로 낳은 아이들이라고 여긴다. 누나와 함께 전우애를 불사르며 매일 육아 전쟁을 치르고 있다.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