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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원 Aug 21. 2021

시어머니와의 생각 교환일기(13) '가장 더운 여름날'

열세 번째 이야기, 내 생애 가장 더웠던 여름날의 기억은?


시어머니 명희의 가장 더웠던 여름날의 기억


 학창 시절 작문시간을 생각하게 하는, 이번 시간에는 어떤 주제를 내실까 부풀었던 그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다.


Those were the days

여름날에 뜨거웠던 만큼 내가 선택한 삶도 뜨겁게 아니 작열(?)하게 살아왔다.

1975년 8월.

휴가를 이용해 전라북도 무주군에 있는 무주 구천동으로 여행을 떠났다. 사랑하는 사람과 둘이서. 엄마한테는 회사에서 야유회 간다 하고. 참 많이도 철없던 시절이었다.

뜨거웠던 것은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어렸지만 미래가 막연했지만 참 많이 행복했었다. 백련사를 걸으면서 뭐가 그리 좋았는지 "우리는 100년 살 거야" 하며 웃던 그 시절...


숲 속 찻집에서 차를 마시면서는 시인이 되어 있었고,

숲 속 오솔길을 걸을 때는 고독한 철학자가 되어 있었던 기억.

지금 뒤돌아 보니 뜨거웠던 여름 햇볕처럼 뜨겁게 살아왔다. 그때의 그 용기를 밑거름 삼아서 어떠한 것에도 뜨겁게 최선을 다하면서... 나의 지나온 그 시절은 아름다웠다. 미래가 불투명했지만 투명하게 만들었고, 8월에 작열하는 태양을 피하는 방법(?)도 잘 터득해서 살고 있다.


<백련사> AUG 75 의 시어머니 명희



뜨거운 것을 더운 것을 따스하게 중화하면서...

1981년 8월도 참 많이 더웠다.(?)

그 여름 나는 둘째 여식을 생산했다. 뜨거워서 숨 쉬기 조차 어려웠던 그 시절이었다. 두 번째도 여아를 생산했다고 그 누구도 반가워하지 않았다. 울고, 울고. 여름날의 태양보다 내 마음이 내 가슴이 내 심장이 더 뜨겁고 더웠다. (첫 째 낳고 불임이어서 6년 있다 낳음)

Charles-pierre 보들레르의 <악의 꽃>

악의 꽃을 머리에 새기면서 그 무더운 여름을 보냈던 그때도 잊을 수 없는 8월의 뜨거운 더웠던 기억이었다.


그때 더웠던 뜨거웠던 그 시절이 있기에 내가 존재한다. 그 무주 구천동을 동행했던 그 남자와 거의 50년째 지금도 뜨겁게(?) 살고 있다. Charles-pierre Baudelaire을 만나게 했던 나의 둘째 여식도 자기 색깔을 멋있게 발하면서 스스로의 삶을 아름답게 써 내려가고 있다. 악의 꽃이 아닌 아름다운 꽃을 나에게 선물하면서...



여름만 되면 읊조리는 詩다.

도연명의 <귀거래사>


고요한 시냇물을 지나 깊은 계곡으로 가기도 하고

거친길로 언덕을 넘기도 한다.

나무들은 무성한 잎새를 터트리고

시냇물은 조금씩 흐르기 시작한다.

나는 자연의 질서 있는 절기를 찬양하며

내 생명의 끝을 생각한다.


모든 것이 끝난다.

우리 인간에게는

그렇게 적은 시간이 허용되어 있을 뿐.

그러나 마음 시키는 데로 살자.

애를 써서 어디로 갈 것인가.


청명한 날 혼자서 산책을 하고

등나무로 만든 지팡이를 끌며

동산에 올라가 오랫동안 휘파람을 불고

맑은 시냇가에서 詩를 짓고


하늘의 명을 달게 받으며

타고난 복을 누리리라.

거기에 무슨 의문이 있겠는가.


피천득 작가가 번역한 <귀거래사>다.

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기도 하고, 나의 마음을 덥게도 해주는 마음에 드는 구절만 음미해 보았다. 여름날에 아름다운 기억으로 뜨거운 여름이면 언제나 꺼내서 나의 마음에 간직해(?) 보는 <귀거래사>다. 나도 이제 '귀거래사'(?)하고 있으므로...


Myung Hee

8月 19 木


시어머니 명희의 귀거래사 (남편 용현의 화환 문구 :)


시어머니 명희의 글 원본





며느리 채원의 가장 더웠던 여름날


 동생이랑 나란히 누워서 같이 자던 큰 방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둘 다 그다지 더위를 타지 않기도 했고, 창문을 열어놓으면 이따금 불어오는 여름밤의 바람을 즐기기도 했다. 그해, 2017년 여름은 정말 정말 더웠다. 며칠 지나면 꺾일 더위에 당장 방안에 에어컨을 달 수도 없고 그냥 보내 보자 했다. 선풍기 바람에 적당한 땀을 흘리며 쫑알쫑알 수다를 떨며 지내던 여름밤들. 그러다 바람 한 점 없이 더웠던 그날의 새벽, 더위에 겨우 잠든 코 끝에 탄 냄새가 났다. '어...?' 라며 동생과 동시에 잠에서 깼다. 둔탁한 기계 소리도 들렸다. 창 밖을 보니 당황스러운 광경이 펼쳐졌다. 집 앞 큰 도로에 아스팔트를 새로 깔고 있던 것이다. 눈으로 확인 한 순간 방안은 아스팔트의 뜨거운 냄새로 가득 찼다. 창문을 바로 닫았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내가 뜨거운 아스팔트가 된 것 마냥 따끔따끔했다.


 이해는 간다. 도로정비는 새로 해야 하고, 차로 붐비는 이 길에, 이 더위에, 낮에는 도저히 작업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 이성적으로는 이해 가지만 그 새벽의 우리는 마음과 머리 그리고 온몸이 열이 받아 거의 뜬 눈으로 지새웠다. 여름이 다가오면 그 새벽의 기억이 난다. 동생과도 가끔 미간을 찌푸리며 그리고 별일 다 있다 웃으며 회상하는 이야기.


 그리고 또 다른 무더웠던 여름날, 우리 집 강아지 막내 '모두'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첫째와 둘째를 차례로 보내고 혼자 씩씩하고 건강하게 지내던 '모두'는 귀엽고 깜찍한 외모 때문에 늙었다고 생각을 못하고 살았다. 15살이 되었어도 '모두'가 언제까지나 꼬리를 흔들며 수줍게 인사할 거라 생각했다. 점점 힘이 빠진 모습을 보이던 '모두'는 8월, 급격히 체력이 안 좋아지고 결국 병원에 입원을 했다.


자가 호흡이 어려워 산소 케이지에 있던 마지막 모습.

겁에 잔뜩 질린 표정으로 있다가

나를 마주하고는 제발 자기를 안아달라는 눈빛을 보내던 '모두'.

"선생님, 우리 '모두' 집에서 편하게 가족 품에서 보내줄게요."라며 받아 안던 그날.

그제야 평온한 눈으로 엄마와 나, 동생을 차례차례 쳐다보던 눈빛.

집에 오는 길에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끝까지 눈을 마주치던 '모두'.

집에 도착해 "엄마, 언니들 먼저 갈게요. 사랑해"라며 눈을 감았다.


굳어가는 '모두'의 몸을 어루만지며

"사랑해 사랑해, 우리 꼭 다시 만나자.

초롱이랑 두리랑 재밌게 놀고 있어. 잘 가"


'모두'를 화장시키고 돌아오는 길의 여름 햇빛은 너무 따가웠다. '모두'가 떠나는 길이 너무 뜨겁지는 않을까 걱정됐다. 겁이 많은 쫄보가 새로운 곳에서는 잘 뛰어노는지 궁금하다. 식탐 많은 녀석이 몸매 관리는 잘하고 있는지 시원하게 잘 지내고 있는지...


얼굴이 따갑도록 뜨거운 여름 햇살이 볼을 스치면 가슴 한편으로 '모두'와 걷고 있다. 강렬히 뜨거운 여름에는 '모두'가 자주 찾아온다. 잘 지내지? 보고 싶다 모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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