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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아 Apr 13. 2022

엄마의 무거운 배낭 가방

엄마가 남해에 왔다. 2박 3일 일정으로. 미리 남해터미널에 가서 기다렸다가 엄마를 만났다. 이상하다. 엄마가 어깨에 멘 배낭끈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딱 봐도 가방이 꽤 무거워 보였다. 엄마는 남해에 오기 며칠 전에 혹시 필요한 물건이 없냐고 물어봤었다. 나는 햇빛이 강하니 엄마가 쓸 선글라스 챙겨오고, 커피가 떨어져가니 가루 커피를 좀 가지고 와달라고 했다. 그런데 가방이 왜 이렇게 무거워 보이지? 엄마한테 가방에 뭐 들었냐고 물어봤다. 엄마가 말했다. “쌀.”


내가 묵고 있는 숙소는 창선면(창선도)의 외진 곳으로 관광지와는 거리가 멀고 주변에 식당도 많지 않다. 다행히 숙소에 작은 주방이 있고 밥솥도 있어서 밥을 지어먹어야지 했다. 그래서 짐을 쌀 때 엄마한테 쌀을 좀 챙겨달라고 했었다. 엄마가 챙겨준 쌀은 지나치게 넉넉해 보였지만, 챙겨주는 게 엄마의 기쁨임을 알기에 그냥 다 가져왔다. 남해에서 일주일을 보낸 지금, 쌀은 7분의 1 정도 줄었다. 다 못 먹고 갈 게 분명하다. 그런데 엄마가 또 쌀을 가져온 것이다. 밥이 부족하면 편의점에서 햇반을 사다 먹어도 되는데 왜 그러셨을까. 아마도 내가 군소리 없이 쌀을 다 트렁크에 넣었을 때 매우 기쁘셨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기쁨을 한 번 더 느끼고 싶으셨던 것 같다. 저 무거운 가방을 메고 오늘 잘 다닐 수 있을까, 걱정이 돼서 나랑 가방을 바꿔 들자고 했더니, 나는 못 든단다. 자기는 체력이 좋아서 들 수 있지만 나는 못 든단다. 저게 다 무슨 소리인가 싶으면서 너무 마음이 아팠다. 저 가방의 무게가 내 심장에 지워진 듯 울적했다.


엄마는 외할머니가 가끔 택배를 보내오면 거의 운다. 지난번에 보낸 된장, 거의 그대로 있는데 또 보냈다면서. 감자를 왜 보냈냐면서. 서울에는 감자가 없냐면서. 택배비가 더 나오겠다면서 울분을 터트린다. 그 난리를 아주 많이도 봐온 나는 하루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가 싫어하는 외할머니 행동, 엄마도 딸들한테 똑같이 하는데, 그럼 엄마야말로 누구보다 외할머니 마음을 이해해야 하는 거 아니야?”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신 입엔 좋은 거 못 넣어도, 자식한텐 사소한 거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 고맙긴 한데, 상대방이 바라는 게 아닌 걸 주고서 배려라고 할 수 있는 건가. 나는 엄마가 더 잘 살았으면 좋겠고 더 이기적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가방 속에 나한테 줄 쌀이 아니라, 예쁜 옷 한 벌 더 넣고, 헤어롤 하나 더 챙기고, 화장품 하나 더 챙겨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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