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티아 Jun 13. 2022

혼자가 아니면 한달살기도 아니야

옆방 언니가 내일 한 달 살기를 마치고 떠난다. 내가 떠나는 날은 삼 일 뒤다. 교정하고 있는 원고도 적잖이 쓸쓸한 내용이라 이따금 울컥하는데, 그리 친하게 지내지 않았으면서도 언니가 떠난다고 생각하니 겨울날 살짝 열린 문틈으로 찬바람이 들어오듯 마음이 썰렁했다. 맞은편 방에 사는 사람도 나와 같은 쓸쓸함을 느꼈는지 오늘 저녁에는 셋이서 다 같이 밥이라도 먹자고 했다. 밤이 되자 모임은 식사로만 끝나지 않고, 펜션 테라스에서 가볍게 맥주를 한잔하게 되었다.


우리는 꽤 오래 같은 곳에 머물렀지만 교류하기보다는 서로의 시간과 리듬을 흩트려놓지 않으려 애써온 것 같다. 그리고 그 노력에는 '내 시간도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의미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등산하러 숙소를 나서는 길에 별달리 할 일이 없어 보이는 언니를 만났어도 "어! 마침 잘 됐어요. 같이 등산 갈래요?"라고 묻지 않은 것이다. 혼자 가고 싶어서,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하지만 오늘 밤, 언니는 사실 그때 같이 가고 싶었었다고 말했다.


"나도 산 타는 거 좋아하는데, 네가 너무 씩씩하게 훌쩍 가버리는 거야. 그래서 말을 못 했어."

"아, 저는... 언니가 등산 가는 거 한 번도 못 봐서 산 타는 거 안 좋아하는 줄 알았어요."


내 말은 반은 진실이고 반은 거짓이었다. 언니는 "나 산 타는 거 좋아해!"라고 못 박았다. 때때로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나도 한 번쯤은 언니를 따라서 고사리를 따러 가보고 싶었는데, 물론 내 쪽에서 확실하게 의사를 표현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언니도 내게 같이 갈 거냐고 물은 적이 없었다. 지레 짐작, 허리 굽이고 고생하는 농사일을 하고 싶지 않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 셋이서 딱 한 번 같이 한 활동은 갯벌 체험이다.


가족 단위로 한 달 살기를 하는 경우도 많지만, 어떤 사람들에게 한 달 살기는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곳에서 살아보는 경험이면서 동시에 익숙한 사람들에게서 떠나는 경험이기도 하다. 그래서였을까, 내가 언니에게 남해 한 달 살기 어땠냐고 감상을 물었을 때 언니는 이렇게 말했다.


"아, 한 달 살기 아니야! 중간에 언니가 두 번이나 왔잖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혼자가 아니었기에 한 달 살기도 아니었다는 말은 논리적으로는 전혀 앞뒤가 맞지 않지만, 우리는 그게 무슨 말이냐고 의미를 되물을 필요가 없었다. 그 의미라면 우리야말로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니까.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혼자됨을 멋대로 방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동시에 나 자신의 혼자됨 역시 방해받지 않으려고 경계했다. 우리가 남해에서 함께 보내는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밥을 먹고 술을 마신 건 절대 우연이 아니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마지막 날이 되니, 조금 더 함께 시간을 보낼걸, 한 번쯤은 같이 산에 가자고 해볼 걸 그랬다는 후회가 든다.

이전 26화 긴 여행은 나를 돌보는 법을 배우는 과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