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처구니없게 '절주달성'
나는 평생 알코올과 함께 할 줄 알았죠.
절주,
음, 금주는 아닙니다.
제가 원했던 건 처음부터 금주가 아니었어요.
무엇이든 그 일말의 장점만은 취하고 싶어 하는
욕심쟁이라...
그래서
더 힘들었어요.
확 끊지를 못하니 질질질, 아시잖아요.
절주는 핑계죠.
한 번 정도는 마실 수 있는 거니 닥쳐라~
내일부터 잘하면 된다.
그래서
절주 한다고 선언해도 내가 설마 성공할까 했죠.
근데 이게 웬일인가요.
절주 했습니다.
이건 노력으로 이룬 의지의 성과가 아니라
환경의 변화와 내면의 자각에서 비롯 됐다 봅니다.
가만히 생각해 봤어요. 내가 어떻게 성공했지?
세 단계를 거쳤더라고요.
▶ 1. 잔소리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나의 가족들은 내가 술 먹는 거에 대해서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하곤 했었죠.
뭐, 너무 뻔해서 귓등으로도 안 들렸었어요. 매미가 우나~~~
근데, 어느 날부터 이게 심각할 수 있구나. 내가 잘못하고 있나... 싶은 게.
잔소리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러더니 생전 처음으로 음주하는 게 눈치 보였어요.
그래서 음주선언을 남발하고 다녔죠. 새해가 밝을 때마다 일 년 다짐으로 세우고요.
그렇지만 몇 년간 절주, 금주는 작심삼일의 무한반복이었죠.
▶ 2. 몇 차례 호되게 아프며, 전에 몰랐던 체력의 바닥을 경험한다.
중년의 고개를 호되게 맛보며 누워만 지내던 반 년동안,
내 오랜 지병과 장기의 허점들이 한꺼번에 반기를 들고 농성하는 상태...
독한 신경통약과 진통제를 끼고 살다 보니 체력뿐만 아니라
소화력, 해독력, 정신력, 기억력 다 떨어지더라고요.
맥주를 한 캔 마셔도 해독하느라 허덕거리는 간이 가엾고,
어제 조금 마셨다 하면 다음날 생을 마감할 만큼의 숙취가 오고,
오만 정내미가 떨어지며, 빌어먹을 술이 무서워졌어요.
▶ 3. 무의식적인 원인을 깨닫고 나의 유치함에 실소한다.
그러면서 생각했어요. 지금껏 내가 왜 술을 마셨는가?
의식적인 폭음 행위와 절주 다짐의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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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
심
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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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작심삼일이 생리학적으로 증명된 현상이라면서요?
사람이 힘든 일을 시작할 때 아이러니하게 감정, 수면을 관장하는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이 같이 분비된대요. 그래서 힘들 일을 앞두고 오는 불안과 우울을 줄여주는데, 문제는 이 세로토닌의 분비가 72시간가량만 지속된다는 거죠. 72시간이 지나면 세로토닌 작용이 끝나 힘든 일이 더 힘들게 느껴지고 결국 작심삼일에 그치게 됩니다. 반면 목표에 성공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때 며칠 그만둔 행동을 다시 시작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게 나타난다고 합니다. 일종의 반작용으로 '의지력'이 발동하는 거래요. 그래서 그 의지력으로 목표를 달성한다... 는데...
그렇다면 나는 의지력의 문제였던가?
사전에서 의지력을 찾아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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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지
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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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일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을 꿋꿋하게 지켜 나가는 힘'
의문의 들더라고요.
무언가를 이루려고 용쓰는 의지력과 어떤 일을 하지 않으려고 버티는 의지력은 다르지 않을까?
성취를 위해 참을 때와 절제를 위해 참을 때는 다르지 않을까?
'나는 참고 견디는 게 힘든 거였다.'로 결론이 나면서 가만히 생각해 봤어요.
술 마시는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늘 작심삼일에 그쳤던 그 기저에 원인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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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의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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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오랜 기억 속에 무의식적 원인이 있더라고요.
처음 술 마셨을 때, 그 느낌,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술에 관해서는 월등하다는 [생체적 우월감]!
그 느낌이 퍽 떠올랐어요.
그래서 뭐가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그렇게 술을 찾게 됐구나.
술은 쉬우니까. 술은 내가 잘하니까. 그 기분에 의지하고 싶었구나란 생각과 함께
마감을 코 앞에 두고 컴퓨터 앞에서 원고를 쓰면서도 그렇게 한 잔씩 마시던 나의 모습에
진짜 실소가 나더라고요.
아...... 결국 또 유치하다. 그만하자.
이 세 단계를 거치며
진정으로
저의 청소년기가 완전히 종결됐습니다.
이제부터
다 큰 성인으로 살아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