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고장 났다.
망가진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완전히 끊어진 것 같았다.
나는 쉬어야 할 때 쉬지 않았고,
아파야 할 때 아프지 않았고,
슬퍼해야 할 때 끝내 울지 않았다.
괜찮다고 끊임없이 말했다. 괜찮을 거라고,
다 괜찮아질 거라고 믿었다.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쯤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그래서, 엄마 아빠가 죽은 뒤에도
나는 그들의 흔적을 곧장 정리했다.
물건을 버리고, 태웠다.
남겨진 것들을 지우면
이 일도 사라질 거라고 믿었다
엄마아빠일도, 끝까지 이기적이었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감정을 그냥 눌러 죽였다.
그날 이후, 나는 단 한 번도 제대로 잠든 적이 없다.
불면은 밤마다 찾아왔고, 다음날은 토끼눈이 되어있었다. 나는 그것조차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더 일했고, 몸을 혹사시켰다.
잠들지 못하는 대신 지쳐서 쓰러지기를 바란걸수도 있다. 문득 올라오는 자해충동과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은 내 몸이 보내는 신호였지만,
나는 그것마저 참아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H의 가게에서 결국 터져버렸다.
나는 점점 숨을 잃어갔고, 공황은 예고 없이 덮쳐오고, 압박은 날이 갈수록 목을 조여왔다.
그만두고 싶었다.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떠날 수가 없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결국 J에 대한 내 마음 때문이었다.
나는 계속 웃었고, 계속 일했고, 계속 밥을 먹었다.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가족들 앞에서
무너지지 않는 척하기 위해서.
나는 이미 망가져 있었고, 그걸 들키지 않으려고 버티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다 결국 병이 났다.
숨이 갑자기 가빠졌다.
가슴이 안에서부터 조여오기 시작했고, 공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숨을 쉬려고 했는데, 숨이 쉬지 않았다.
주변소리가 멀어지고,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지 않았고,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순간 알 수 없었다.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뛰었다. 너무 빠르게, 세게.
이대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가만히 서 있을 수가 없어서 어딘가를 붙잡으려 했지만
몸이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빙글빙글 돌고 흔들렸다
나는 결국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 나 이미 버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구나.'
그건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J를 만나고 천천히 금이 가고 있었고,
나는 그 위에 계속 서있었을 뿐이었다.
아픈 마음을 품고 산다는 것은
몸에 칼을 넣은 채 걷는 일 같았다.
보이지 않는 상처는 더 깊게 썩어 들어간다.
내 눈으로 본 시신과, 그 방안에 가득했던 피 냄새는
시간이 지나도 조금도 옅어지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자살로 잃는다는 것은
단순한 상실이 아니라, 남겨진 사람의
삶까지 조금씩 죽여가는 일인 것 같다.
나는 매일, 내 부모가 선택한 방식의 끝을
조금씩 나도 모르게 따라 걷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분리되기 시작했다
조금씩, 아무도 모르게.
관계는 끊어지고, 삶은 무너졌고, 나는 그 안에서
혼자 살아남아야 했다. 그 와중에 내가 사랑했던 사람과 그의 가족들은 나에게 폭력을 가했다.
나는 아무 힘이 없었다.
몸은 굳어갔고, 등은 점점 굽었고, 입은 닫혀버렸다.
말은 사라지고 통증만 남은 거 같다.
나는 오래, 혼자 버텼다.
싸운 것이 아니라, 그저 일방적으로 맞고, 또 맞았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떠나야 했고,
도망쳐야 했고,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꺼져가는 불을 혼자 붙잡고 있었다.
내 가슴에는 보이지 않는 피가 계속 흘러내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침 5시 30분, 몸을 일으켜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릇을 떨어뜨렸고,
음식의 간을 맞추지 못하고, 집안에서 쓰러졌다.
이석증으로 바닥에 넘어졌다.
출근을 했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고, 퇴근시간이 지나도 나는 가게에 남아있었다.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 모습을 본 J는 정신과치료를 권유했다.
진료실 문을 열자마자 나는 무너졌다.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말을 해야 했지만, 한 번도 누군가에게 내고통을 말해본 적이 없어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입을 열려는 순간, 몸이 먼저반응했고, 속이 뒤틀리고, 비릿한 냄새가 올라왔고, 엄마의 피냄새가 그대로 되살아났다.
H얼굴,
J얼굴
그 가족들의 얼굴이 겹쳐지면서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근육이 튕기고, 숨이 끊어지는 것만 같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한참을 울고 나서야 겨우 한마디를 했다.
"눈을 뜨고 감는 게 무서워요. 내일이 오는 게 무서워서 눈을 못 감겠고,
눈을 뜨면 아직도 살아 있다는 게 너무 싫어요.
저는 계속 노력하는데
사람들은 더 노력하래요 부족하대요
저는.. 조금 쉬고 싶은데 쉴 수가 없어요 쉬지 말래요
우울하면 더 바쁘게 움직이래요
부모님이 죽도록 미워요
그래서 저도 똑같이 죽고 싶어요.."
그들이 남기고 간 죽음은
내 안에서 아직도 숨을 쉬고 있었다.
엄마가 죽은 날, 집은 절반이 무너졌고
아빠가 뒤 따른 날, 남은 절반도 사라졌다.
그 이후로 내 마음속에는 폐허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진료가 끝나고, 나는 밖으로 나왔다.
J가 앉아있었고,
나는 눈물을 닦고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왜 기분이 안 좋아 보여?"
그는 웃지 않았다.
그는 말했다.
"난 한 번도 기분이 좋았던 적이 없어 행복했던 적도 없고."
"그럼 난 뭐야?"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말했다.
자기가 더 빨리 지쳐서 포기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너무 힘들다고.
왜 내가 정신병원에 와서 이러고 있는지 이해가 도무지 안 간다고.
억지로라도 웃어달라며, 괜찮은 척해달라고
내 손을 잡고 간절하게 말했다.
그의 미래를 위해 내가 버텨주기를 바라는 목소리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침묵이 흐르는 동안 약이 처방되었다고 했다.
그 말은 치료의 시작이 아니라, 내가 완전히 망가졌다는 시작, 그런 확정 같은 거였다.
처방받은 약은
아티반정, 잘레딥캡슐, 라믹탈정, 리단정, 아고틴정, 쎄로켈서방정 50mg, 3000mg
별 다른 이야기를 한 것도 없는데
처방된 약의 양은 왜 이리 많은지.
이 작은 알약들로 내 삶이 설명될 수 있을까
약을 삼키고 나니 몸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흐트러져 있던 감정들이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오랫동안 나를 흔들던 불안이 잠시 숨을 고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견딜 수 없을 것 같던 하루가
조금은 버틸 수 있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이게 정말 효과라는 걸까?
아니면, 잠시 빌린 평온일까.
아주 희미하지만, 어딘가에서
용기 같은 것이 조용히 자라고 있었다.
그게 무엇이든 나는 그 미약한 감각을 놓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 작은 변화를 일단 믿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