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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랑스런 후후작가 Jun 02. 2024

요가하는 수학자

볼빨간 삿춘기 

  남편이 오랜 해외출장을 마치고 귀국했다. 금요일부터 슬슬 몸살이 오더니만 토요일 정점을 찍고 일요일에는 열이 38.4도까지 치솟았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열과 기침 콧물. 

두 달 동안 멀쩡했던 몸이 남편의 귀국과 함께 열병을 앓기 시작했다. 코로나 독감 검사도 해보고 엑스레이도 찍었는데 결과는 깨끗하다. 목이 너무 아파서 목소리가 갈라지고 진통제와 항생제 효과가 떨어지면 다시 열이 오르고 몸이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상태다. 증상은 딱 코로나인데 검사결과 음성이니 대체 왜 아픈 게냐?  '당신 아들 혼자 키우느라 나 힘들었어요.' 알아달라는 듯 온몸으로 씩씩대며 아파하나 보다.


그런데

왜?

엄마 몸 안 좋으면?

더 지랄하지?


"엄마, 나 영어과외 가기 싫어."

"아 왜 또?

"나 1:1로 하는 거 싫단 말이야."

"그동안 신나게 전기세 내주고 영어학원 다녔으면 양심 좀 챙겨."

엄마가 하는 말이 뭔 말이지? 못 알아듣는 듯 잠시 멈칫하더니 자기 욕이구나 싶어서 반박한다. 

"나 암튼 여기 싫어 안 갈 거야."

인간아 짜증도 엄마 몸 상태 봐가면서 해야지 눈치도 없다. 결국 우기기 모드 들어가다가 나한테 발차기 한대 시게 얻어맞고 영어 과외로 떠났다.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콧바람 불면서 아빠차 타고 학원으로 출발.

재는 금방 저렇게 화재가 전환이 되나? 뇌가 있겠지? 뇌가 가볍나? 용량 부족인가? 별에 별 생각 다하며 감기약을 먹고 정말 푹 푹 푹 잤다. 


아비가 있으니 아들이 순해졌다. 

더 기분 나빠. 

4학년무렵 우스갯소리로 장난치며


엄마는 똥파리

나는 벌 

아빠는 닭


이라고 노래 부르며 놀던데 이때부터 나를 똥파리 취급했나 보다. 아빠가 제일 윗계급이고 나랑 자기는 비슷비슷한데 왠지 똥파리는 기분 나빠.


평소 같으면 엄마 수학하기 싫어. 나 대충 할 거야. 나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만 할 거야. 온갖 타령 잡타령 다해가며 들들 볶을 텐데 아비한테 혼날까 봐 자기 방에서 하는 척이라도 한다. 

그래도 그게 어디냐며 기특해서 방에 가보니 세상해 요가 선생님이 우리 집에 오신 줄 알았네.

 

"대체 왜 이런 자세로 하는 거야? 엄마가 멀쩡한 책상 의자 다 사줬는데?"

"아 나는 이게 편하다고요."

"와 눈 나빠지겠다. 스탠드 갖다주까?"

"응."

정말 마음에 안 드는 것 투성인데 그래도 공부하겠다고 노력하는 게 기특해서 온갖 비위 다 맞춰준다.


잠시 후...


엄마의 촉. 다년간 경험을 통해 예상가능한 행동범주를 파악하고 있는 엄마의 위대한 촉은 대단하지.

여보 애가 조용해. 이상해.  

살금살금 방에 가보니 이것이 만화 그리고 놀고 있네. 그러면 그렇지. 

와.... 

수학하며 요가하며 만화까지. 넌 참.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서 좋겠다. 

미술을 유치원때부터 초4까지 줄기차게 다녔는데 그림은 죄다 졸라맨 사촌들이네.

공중분해된 내돈. 내 노후자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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