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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랑스런 후후작가 Jul 03. 2024

사춘기 아이 공부 시키는 법

쫀드기와 밀키스 콜라보레이션

"어떻게 하라고?"

"머가? 심심하다고."

"원하는 게 뭐야?"

"아니 그냥 심심하다고."

그 속을 내가 모를까 봐. 게임하고 유튜브 보고 싶다면 거절당할까 봐 에둘러 저렇게 표현하는 너를 내가 알지.

"그냥 하고 싶은 말을 해. 말할 줄 아는 걸로 아는데? 너 옹알이 단계 아니잖아."

"어차피 안 들어줄 거잖아."

"그걸 왜 네가 판단해. 뭔가 원하는 게 있으면 협상을 제안해 봐. 어린애처럼 심심해 심심해 거리지만 말고."

"게임하고 싶어."

"게임해. 그러면. 몇 시까지?"

내가 한 수 물러줬다. 게임하라고 하면 네! 이러며 좋아할 나이는 지났으므로 다음 스테이지가 기다릴 거다.

"2시까지 하고 싶어."

"2시너무 길어. 1시 반까지 허락할 거야."

"그럼 나 안 해."

"그럼 니 손해지. 생각해 봐 2시와 1시 반차이 갭차이를. 상대가 원하는 거와 너의 욕구 차이에서 절충을 봐야지."

계속 소파에 누워서 심심해 심심해 10분 시전 하더니

"나 게임한 후에 엄마 숙제 시킬 거잖아. 나 안 해."

  한 수 물러줬는데 두 수 내놓으라네. 강적이다. 오래간만에 풀파워로 납짝궁뎅이 만들려다가 비 오는 일요일 더 이상 축축하게 보내고 싶지 않아서 더 봐주기로 결정했다.


 사춘기들이 모시는 '배짱신'중에 상위레벨에 속하는 '나 안 해'가 강림하면 한동안 아무것도 안 하려 드는 걸 경험을 통해 익히 알기때문에 관전모드로 체인지한다. 욕구가 충족되지 않자 욕구의 이동이 허기로 오는지 쫀드기를 들고 다닌다. 기회포착


"후야. 쫀드기 구워줄까? 실은 너한테 선물이 있어."

게임하고 싶지만 숙제는 하기 싫다고 어이없는 주장을 내세운 후라 선물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알고 있다. 하지만 궁금은 하지.

"뭐야? 엄마 뻥이지?"

이 인간은 순순히 받아들이면 팽팽한 줄다리기 심리전에서 지는 것 같은지 꼭 저렇게 떠본다. 기분 더럽게.

"아냐. 세 글자. 00스"

"로! 복! 스!"

미친. 게임머니 아니다 짜샤. 귓가에 유명한 래퍼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내가 웃는 게~웃는 게~ 아니야.' 나도 노력하잖아. 인간이면 알아주라고.

"아냐. M으로 시작해. 먹는 거야. 농구할 때 먹었던 거"

후의 최애음료수 밀키스! 살찔까 봐 밀키스제로를 어렵사리 구해놨던걸 오늘 풀기로 마음먹었다. 말도 안 들어, 숙제도 안 한다고 해, 뭐가 이쁘다고 엄마가 쫀드기에 밀키스 까지 주니 본인도 이상한지 어리둥절해한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해도? 이렇게 하면 어쩔 건데? 이래도 안 혼낼 거야? 위태로운 외줄 타기의 위에서 한번 더 뛰는것처럼 또 넘본다.

"티브이 보면서 먹어도 돼? 엄마 닥터플랜츠코리아 같이 볼까?"

그래 바라봐. 어차피 엉망이여.

"쫀드기 다 구웠다. 먹으며 보자."


  속마음은 닥치고 숙제했으면 하지만. 겉으로는 쫀드기까지 구워서 받치며 유튜브도 같이 봐주는 애미다. 이렇듯 겉과 속이 다른 것을 사자성어로 표리부동이라고 한다. 난 지금 유체이탈 수준 표리부동을 매일 체험 중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온갖 모략과 술책으로 뜻하는 바를 이루는 권모술수까지는 아니겠지만 나도 뜻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표정이 부자연스러워지는 부작용은 어쩔 수가 없다.


  같이 보는 시늉만 하려던 '닥터플랜츠코리아'는 고퀄에 미친 완성도로 영상 흡입력이 장난 아니었다. 과학자가 테라리움을 꾸며서 지구의 각 생물군계를 재창조하여 지형 기후대로 작은 지구의 생태계를 촬영한 것이다. 원시 지구의 생태계를 재현하며 몇 달간 공들여 촬영한 것을 보여주는데 구독자로 하여금 작은 신이 되어 관전하는 듯한 기분이 들게 했다. 태초에 물에서 플랑크톤으로 시작한 생명의 기원을 눈으로 보며 플랑크톤이 객체수가 많아지면 천적인 물고기를 넣고 또 그 물고기를 잡아먹는 가재를 넣는 방식으로 빌드업이 매우 치밀하게 진행된다. 먹이사슬을 직접 관전하는 재미가 흥미진진하다. 게다가 자연재해까지 재현해 놔서 그 작은 테라리움에 천둥 번개 태풍까지 주기적으로 장치를 통해 진행된다. 태풍의 잔해가 어떻게 정화되는지까지 보여주니 이건 자연재해 다큐멘터리가 따로 없다. 유튜브 미쳤네. 이러니 애들이 빠지지. 숙제도 안 하고 생떼 부렸는데 엄마가 밀키스에 쫀드기까지 주니 후군도 게임리뷰 이딴 거 안 보고 나름 선별해서 보자고 한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엄마가 옆에서 소리 지르며 호응하니 녀석이 거드름 피우며

"거봐 엄마도 재밌지?" 

"응 재밌네." 인정할 건 인정한다.

한 껏 공사판으로 아수라장이었던 사춘기 전두엽의 높았던 열이 좀 식었는지

"엄마 3시부터 숙제할래."

오케이! 사춘기 옆집애 대하듯 심드렁 스텐스 유지해야 맞는데 숙제 소리에 오토매틱으로 입꼬리가 실룩댄다. 표리부동 와장창 깨지는 소리 들리네.

녀석은 쿨하게 방으로 들어가 버리며

"엄마 나 3시까지 게임할 거야."

그래. 이게 너지. 그래 안 그럼 남에 집 애지.

비 오는 일요일 오후가 지나고 있다.




                                                                                          


                                                                                <커버이미지사진출처 : 닥터플랜츠코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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