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콩팥팥은 진리입니다.
"후야 재활용 쓰레기 버리러 가자. 빨리 일어나. 쓰레기 버리고 과자 사러 같이 가자."
오른손에는 무거운 일반 쓰레기 20리터를 들고 있고 왼쪽에는 플라스틱, 비닐, 캔등 재활용 쓰레기 커다란 봉투 2개를 들고 문 앞에서 대기 중이다. 내일 학교 미술시간에 과자봉지 묘사하기를 하기 위해 과자한봉다리씩 준비물로 쓰여있기도 해서 같이 편의점에 다녀올 요량으로 재촉했다. 빨리 와서 뭐라도 거들라고. 쫌!
"알았어. 아 거의 끝났다. 네네 알겠습니다요."
소파에 들러붙어있는 소파귀신, 소파에서 꼴값 떤다. 또. 기다리는 사이에 슬슬 열이 올라온다. 1차 참자.
"빨리 일어나. 엄마 무거워."
"아 네네. 갑니다. 가요. 요요요."
아 열받네. 계속 기다리게 하며 인내력 테스트하나. 이탈리아까지 다녀왔으면 애미가 무거운 쓰레기 들어달라면 날아와야 할 것 아니냐 이놈아.
"엄마 무겁다고. 고만 장난쳐." 슬로모션처럼 소파에 앉았다 일어났다 이러며 행위예술을 펼친다.
"아 엄마 지금 가요, 가. 아아아 앉았다 일어났다 해서 오래 걸립니다요."
"야! 너 장난해? 엄마 무겁다고. 몇 번을 말해? 야 너 가지 마. 아 진짜 사람 열받게 눈치도 없고."
대체 몇 분을 현관에서 기다리게 하는지 열받아서 혼자 나왔다. 재활용쯤이야 혼자 해도 되지만 미래의 부인과의 양성평등을 위해 꾸준히 역할을 주며 돕도록 노력하는 중이다. 적당히 장난치다 할 일 해야 하는데 저인 간은 꼭 사람 꼭지 돌게 하는 재주가 있다. 애비가 평소에 시키지 않아도 집안일도 나서서 하고 식기 같은 것들도 밥 먹고 싱크대에 넣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자연스레 애가 해야 할 일로 여길 텐데 애비가 안 해서 애도 보고 배운 게 없는 거 같아 속상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지. 줄여서 콩콩팥팥이다. 이쯤 되면 이제 화살이 아들이 아닌 남편을 향한다.
"왜 안 와?"
"어 나 조금 더 있다 갈 거 같아. 한 30분 정도 더 걸려."
"알았어."
조금 후에 다시 걸려온 전화.
"나 출발했어. 왜 무슨 일 있어? 말 안 들어 또?"
"아 그럼 말 듣겠어? 다 너 때문이야. 밥은?"
"안 먹었어."
"아니 이 시간에 오면서 밥도 못 먹고 오면 어떻게?"
이미 밥솥까지 싹 씻어서 주방 마감했는데 남편까지 안 도와준다. 내 8자야.
"아 늦게까지 일하느라 못 먹은 걸 그렇게 말하냐."
"알았어. 지금 화나서 그래. 돈가스 먹을래? 튀겨놔?"
"나 비 와서 라면 먹을래."
그래 니 맘대로 해라.
남편 오자마자 밥 먹이며 '아빠가 집안일하는 모습을 보여 준 적이 없으니 애가 보고 배운 게 없다. 다 니 탓이다. 공부가 아니라 인성교육 먼저다.' 다다다 다다 했다.
"그런데 라면이 왜 이리 꼬들해 보이지?"
"너 눈치 보느라 덜 익었는데 갖고 와서 그런가 봐."
"푸하 어이가 없네 그렇다고 이렇게 먹으면 어떡하나 이 사람아. 국물에 면발 담가놔. 아참! 시원한 묵사발 있는데 그거 먹을래?"
남편이 같이 성질 안 내고 미안한 기색으로 나한테 욕먹어가며 꼬들거리는 라면 먹고 있으니 급 불쌍해 보였다.
밥 다 드시더니 대뜸 애한테 나오라고 하며
"후, 엄마한테 재활용 쓰레기 안 버려서 죄송합니다. 해."
아니 이건 뭐 신박한 해결책이냐. 누가 너보고 해결책을 달랬냐. 난 그냥 내 푸념한 거고 굳이 해결책을 바란다면 네가 바뀌길 원하는 거거든!
잔뜩 골나서 얼굴이 위아래로 찌부된 채로 나온 아들이 꾸역꾸역 쓰레기 어쩌고 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본인은 또 쏙 빠지고 애한테만 저러는 게 못마땅하다.
"여보가 애한테 시킬게 아니라 스스로 모범을 보여야지 애가 따라 하지. 안 그래? 보고 배운 게 없으니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게 말이되? 내 말 틀리면 말해바. 말해보라니까."
눈은 이미 성질나있고 입은 할 말 많아 보였는데 참는 게 보였다. 그 모습이 웃겼다.
"오~~~~ 업그레이드되었네. 욱하는 거 참는 거 봤어. 님 인정."
"참는 거 봤냐?"
이탈리아 둘이만 신나게 다녀와서 그런가 내가 평소보다 소리높여 뭐라고 해도 내 눈치 보는 게 느껴져서 이쯤에서 내가 봐준거다. 서로 잘하자잉!